빛나는 이름 석 자
“예로부터 호사유피虎死留皮요 인사유명人死留名이라고 했는데, 호랑이가 아니라 가죽을 남길 필요는 없겠지만 이왕 시작한 전문직이니 평생 건물 한 동이라도 내 혼과 노력이 담긴 설계를 훌륭하게 하여 주춧돌에 이름 석 자 새겨 놓고 싶은 욕망은 있는데 마음대로 안 되니 그저 욕심이 앞선다는 생각만 든다.” 2011.01.10
전문가專門家는 어느 한 길을 가는데 있어서 많은 노력을 하고 결국 목표를 이루고 나서야 비로소 해탈解脫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택한 사람 들이지만, 보통사람들이 그런 삶을 택하여 살기란 매우 힘 드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고시공부를 한다고 모두가 판․검사가 되는 것은 아니며 노래를 잘한다고 전부 가수가 되지 않는다. 스님이 참선정진參禪精進만 한다고 모두가 선禪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많은 시공간時空間을 따라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면서도 무명無名의 세월과 설음을 이겨내야 이름난 가수가 되는 것이고, 인고忍苦의 고행을 치루고 나서 득도得道하지 않고는 선각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볼록렌즈를 갖고 불을 내기 위해서는 렌즈의 초점焦點으로 빛을 모으는 노력을 하지 않고는 목표로 하는 불을 낼 수 없다. 선택한 부분에 대하여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전문가로 가는 길이다.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을 보라!
세계에서 최고가 되기까지 그들이 흘린 땀방울이 얼마며, 그로 인해 얻어낸 값진 영광의 메달은 단순히 순위를 가리는 상징만이 아니고 그 방면의 달인이자 최고의 전문가라는 증표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회의 지도층의 부류部類에 속한 삶을 살기 희망한다면 남과 똑같이 살면 절대로 그 꿈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해 왔다. 그야말로 궁둥이가 썩을 정도의 공부와 자길 이기는 힘을 배양培養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세상 어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있던가?
긴 인생여로를 놓고 볼 때 목표를 이루려는 어려운 순간은 잠깐이지만 노력한 결과대로 꿈을 실현하여 열매를 따 먹는 기간은 길고 따라서 부와 명예는 물론 권력 같은 것들이 부수적附隨的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고 했고,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도 그래서 있는지 모르지만, 참고 노력하여 그야말로 꿈을 이룬 시점에 가서는 캄캄한 각고의 터널을 벗어난 해방감과 함께 전문가가 되어 탄탄한 인생길이 열리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지도층에 있거나 성공한 사람들을 면면히 살펴보면 그 인생의 성공스토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歸勘이 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저 지도자나 전문가가 된 것이 절대 아닌 것이다.
또 생활의 달인達人에서 보듯이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수 년 간을 손발이 부르트고 팔다리가 성할 데 없이 한 눈 팔지 않고 자신이 하고 있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해 온 결과로서 그런 칭호를 얻게 된 것이지 어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절대 아닌 것이다. 옛날 자동화되기 전. 동네 어른들이 담배제조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들이 쭉 늘어 앉아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쉼 없이 나오는 담배를 정확하게 20개비씩 손으로 집어 포장을 하는 모습을 보고 와서는 “정말이지 기계도 그렇게 못할 정도”라며 그 정확하고 빠른 손놀림에 찬사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설마 어른들이 거짓말한다고 넘겨버렸지만, 바로 그들이 요즘 말하는 생활의 달인이 아닐까?
생활 속에 수많은 달인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곳곳에서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제품이면 제품, 음식이면 음식 등 질 좋은 제품이나 맛있는 음식들이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고 볼 때 그들은 당연히 대우받아야 마땅한 전문가들인 것이다. 나는 외적外的으로 보면 국가가 공인公認해 준 전문직 건축사이다. 그렇다고 남 앞에 내가 전문직이다라고 내놓을 만한 실력이 못 된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서 모두 다 가수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건축설계를 한다고 모두 다 전문직 건축사가 아니란 말은 나와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85년도에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여 자격취득을 하고 나서도 시공관련 업무와 공사감독 등을 수행하는 공직업무. 즉 공사관리만 했었지 면허免許에 걸 맞는 건축설계 활동을 전문으로 하지 못하고 공직이라는 철밥통을 지키기 급급했기 때문에 실력향상이 되지 못하여 퇴직 후 영업등록을 하고서도 여전히 그런 기회가 잘 오지 않아 상대적으로 실력부족을 실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랍시고 허울 좋게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도 못하고 있어서 자아실현에 대한 괴리감만 더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한 편으론 숙제를 풀지 못해 끙끙대는 아이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전문가는 누가 뭐래도. 어떤 상황이 닥쳐도 내가 전문으로 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올곧은 철학과 해밝고 폭 넓은 지식으로 정확하고 분명한 해답을 줘야 하는데, 누가 나를 보고 전문가라고 할 것인가?
삶에 대한 정답은 없는 것이고 연습할 기회도 없는 생방송 같은 것인데, 내가 남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曰可曰否할 처지가 못 되듯이, 누가 나에 대한 삶을 잘못 산 삶이라고 뭐라 말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젊은 시절 지금의 나를 생각할 겨를 없이 내 달려온 삶들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것이고, 남은 인생 정말 어떻게 살 것인가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는 것이다.
나는 현재의 상황을 안분지족安分知足하려 하는데. 남들이 저렇게 제 나일 잊고 날 뛰듯 열심히 사는 걸 그저 처다만 보고 있는 것이 내 분수에 맞게 마음의 부자로 사는 일인가? 마음만 부자면 또 다 되는 것인가? 이 방면에 전문가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만 뒤숭숭해지니 정말 헷갈린다.
지금부터라도 전문가가 되려고 그럴싸하게 사무실 꾸려 직원들 우르르 모아 놓고 한 번 실력발휘 해야 되는가? 죽을 때까지 그냥 허송세월虛送歲月할 것인가? 개념 없이 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 동안 제대로 살아왔는지, 혹시 나로 인해 상처를 받고 한을 가진 사람은 없는지, 베풀면서 살아왔는지도 성찰省察해야겠지만, 앞으로 전문가로서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곰곰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름은 곧 자신이고 자기는 곧 이름으로 불리어 진다. 그래서 예로부터 호사유피虎死留皮요 인사유명人死留名이라고 했는데, 호랑이가 아니라 가죽을 남길 필요는 없겠지만, 이왕 시작한 전문직이니 평생 건물 한 동이라도 내 혼과 노력이 담긴 설계를 훌륭하게 하여 주춧돌에 이름 석 자 새겨 놓고 싶은 욕망은 있는데 마음대로 안 되니 그저 욕심이 앞선다는 생각만 든다.
나는 나름대로는 건축기술 하나를 갖고 평생을 살아 온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설계를 등한시 해 건축가로서의 전문가 반열에 오르지도 못했고, 부富와 명예名譽도 얻음 없이 그저 생구불망生口不網하지 않으려고 근근득생僅僅得生하면서 생각 없이 살아왔으니 사람으로서 죽으면 내 이름 석 자 누가 기억해 줄 것인가?
채근담에서는 보신자피명保身者避名이라고 했다. 내 몸을 보호하려거든 이름을 억지로 내지 말라고 했으니 좋은 핑계 하나 얻은 셈이라 위안도 된다. 수주受注하기 위해 열심히 뛰지도 않고 물량도 없어 전문가로서 이름을 남기는 일이 쉽지만은 아닌 일이니 애당초 전문가가 되기는 글렀는가 보다. 솔직히 나이가 드니 그럴 용기조차도 없다.
현역시절 3, 4년에 걸쳐 큰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고 나면 법에 의해 사람들의 눈에 잘 띠는 적당한 어느 장소를 정해 준공 표지석標識石을 세우도록 되어 있다. 일종의 공사실명제 같이 그 곳에는 사업개요부터 시공사나 감리사는 물론 발주처의 공사감독 이름까지 자세히 새겨놓는데, 그 곳을 지날 기회에 처다 볼 때마다 당시 바다를 메워 고생하면서 건설한 결과로 부두가 역동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점에 대해 감회는 있어도 내 이름 석 자는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것은 시공사의 노력은 간과看過한 채 감독이라는 우월적 지위에 있기만 한 사실만을 가지고 빛나는 훈장勳章처럼 그들과 나란히 내 이름 석 자를 새겨 논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그저 주어진 임무만 충실하려는 노력과 밥통을 지키려는 처신만 해 왔음으로 인해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 채 퇴직. 엉겁결에 전문가 집단에 속하고 나니 애로사항이 많은 그야말로 무늬만 전문가가 된 셈이다.
당구풍월堂狗風月이라. 서당 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대안을 놓고 토론 시에도 실력 차일 감추느라 내심 말도 않고 눈만 깜박이며 아는 체 하다 돌아오곤 하는 전문가이며, 업業 쪽으로 돌아와서도 건물다운 설계는커녕 호구지책糊口之策도 하지 못하고 있는 전문가라서 내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전라도 어디 가며는 의로운 개에 대한 동상과 표석標石도 있다고 하다만, 역사적으로 나라를 빛내 존경하여 이름 석 자가 남아있는 위인들이나 의인들이 많이 있겠지만 서울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용맹스런 모습이나 인자하고 근엄하게 앉아 있는 세종대왕 같은 동상을 보라. 그들의 이름처럼 얼마나 위풍당당하고 인자하게 잘 표현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슴에 담아두고 존경하는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자긍심의 표상表象인 것이다.
나 같은 보통사람이 제 이름 석 자가 뭐 대단하다고 일부러 남기려 할까마는 결국 이름 석 자를 남긴다는 말은 사람으로서 모두가 긍정하는 업적으로 인해 유명을 달리해도 자연발생적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할 때 이름 석 자가 남아 세월이 가더라도 그를 잊지 않고 빛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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