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놈의 정 때문에
그 놈의 정 때문에
“몸 정은 마음의 정보다 미련의 정도가 크기 때문에 많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잊혀 지지 않고 불쑥 욕정이 솟아 헤어질 때의 감정을 잊고 다시 옛 애인을 찾아 똑같은 전철轉轍을 밟게 되는 수도 있어서 다시 사랑의 상처로.....,” 2010.02.24
사람은 오욕칠정五慾七情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동물이다. 곧, 오욕은 재물욕·색욕·식욕·명예욕·수면욕睡眠慾을 말하고 칠정은 희喜·노怒·애哀·락樂·애愛·오惡·욕欲. 또는 희·노·우憂·사思·비悲·경驚·공恐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불교에서는 희·노·우·구懼·애·증憎·욕으로 구분해 놓고 중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무리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평상심平常心을 갖는다는 것이 어디 보통사람들이 갖는 마음이고 생각일까? 평상심은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인 본심本心이다.
본심은 생각과 갈등의 뿌리이기 때문에 마음먹기에 따라서 오욕칠정이 생겨나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형상形象으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상황 하에서도 초연超然할 수 있는 것이 평상심을 잃지 않는 것인데, 다양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 어찌 목석木石같이 그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비교적 단순한 하등동물과 다르게 여러 형태의 복잡한 감정으로 표출되는 것이 인간이다.
깨달음을 터득하려는 선가仙家의 사람들도 평상심을 갖기 위해 화두를 정하고 그 많은 나날들을 기도하고 참선하는데, 부료선사不了禪師 소릴 듣지 않으려고 일반인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기하면서 정진精進하지만, 그들도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내가 여기서 종교적 의미의 오욕칠정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 말할 수 없지만, 남녀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색정色情과 애정愛情에 대해서 나의 한 생각을 두고 말해 보고자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정을 뗀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특별한 관계에서 생겨 난 정분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가는 삶에 대한 근본적 생각이고 마음인데, 범상凡常한 우리들은 부정, 모정, 애정, 우정 등은 잘 알고 있지만, 남녀관계에서 생겨난 몸 정. 즉, 육정肉情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서로 사귀던 사람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해보자. 그렇게 나만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원망과 한탄을 해봐도 그것을 잊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이 흘러가야 한다.
세월이 약인 셈이다. 세월이 가다보면 점차 내 기억 속에서 대부분 사라져 잊힌다.
그러나 겨울눈이 소록소록 내리거나 봄비라도 촉촉이 내리는 날, 혼자 침대에 뒹굴고 있으면 마음은 뒤숭숭한데, 그리워지는 것은 헤어진 옛 애인과의 추억이 떠오른다. 포난사음욕飽煖思淫慾이고 인생대한人生大閑이면 즉별염소생則別念所生이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음욕이 생기고 사람이 너무 한가하면 딴 생각이 슬그머니 일어난다는 말이다.
아마도 옛날 사람들도 그랬었나보다. 좋았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생각난다.
함께 철 따라서 명소 찾아 관광하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식사하고. 손잡고 걸으며 서로의 체향體香을 맡던 날. 근사한 카페에서 와인 향을 맡으며 미소 짓던 모습하며 쉴 새 없이 조잘대는 예쁜 입모양이 보이고.......,
그러나 상대의 아름다운 미소나 다정했던 말투, 나를 장중보옥掌中寶玉처럼 대해주는 매너 등 마음의 그리움을 잊는 시간보다는 그의 탄탄하고 드넓은 가슴팍 속살. 우람한 팔뚝 근육질의 남성미. 아름다운 목 선, 길고 윤기 나는 머리결의 여성스러움. 아름다운 젖가슴과 하얗고 부드러운 속살결 등 몸의 형상이 훨씬 늦게까지 잊혀 지지 않는 것은 서로 상대의 몸에 흠뻑 배어서 생기는 육정이 깊고 모질기 때문이다.
혈기 왕성한 젊은 몸뚱이에서 그런 좋았던 날들이 비온뒤 하수구에서 역류하는 빗물처럼 불현듯 솟아오르는 것은 옛 애인과의 연정戀情이 아직 남아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좋았던 지난날들이 그리워지다가도 결국 귀착歸着되는 생각은 섹스 하던 생각만 남게 된다.
어차피 헤어진 사이인데도 몸만 멀어져 있지 아직도 상대에 대해 미련이 남아있다는 것을 ‘다 하지 못한 사랑’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점점 온갖 좋았던 자질구레한 추억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내 몸을 떠나지 못하는 기억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섹스에 대한 추억인 것이다.
사이과이물사事已過而勿思라. 이미 일이 지나갔거든 생각하지 말라는 채근담의 가르침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을 달리 먹어도 그럴수록 더 몸이 먼저 느끼는 것은 몸은 머리보다도 몸 자체에 새겨진 듯 일부러 떠올리지 않아도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섹스에 대한 기억은 곧 몸에 대한 기억이다.
색정보다 육정肉情이라는 것은 좋았던 생각과 같이 세월이 지난다 해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외기外氣가 쉽게 변해도 늦게 영향을 받는 바닷물처럼 몸은 마음보다 천천히 반응하고 한 번 입력되어 습관화된 후에도 늦게 순응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정에 비해 끈끈하여 잘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옛 애인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랑하는 좋은 추억보다 아직도 몸에 남아 있는 육정이 남아서다. 육정은 몸에서 생기는 정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생각은 있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몸 정을 나누지 못하면 내 마음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사랑보다 정이 더 모질다.’는 말이나 ‘그 놈의 정 때문이다.’라는 말도 있다.
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아도 될 사안事案에 대해 다시 되풀이하는 경우를 말한다. 즉, 정 때문에 뭘 하고 싶어도 어찌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온전한 사랑이란 정신적인 애정도 중요하겠지만, 육정도 매우 중요하다. 애정은 육정과 상호 보완적이긴 하나 애정은 육정이 있음으로서 완전하게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세계적인 미국의 유명 프로골퍼인 타이거 우즈라는 사람이 섹스중독 때문에 유명세만큼이나 세계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아직도 선수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는 외신을 볼 때, 육정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몸에서 부추기는 육정肉情이 쉴 새 없이 욕정欲情을 불러와 관계를 끊지 못하고 반복해서 여체女體를 찾아 중독에까지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몸에 직접 새겨진 몸 정이란 어느 면에선 이렇게 쉽게 끊을 수 없는 마치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성욕性慾도 평상심을 갖지 못하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것이 문제다. 성폭력범을 보면 한결같이 한 두 번이 아니고 파렴치하게도 여러 차례의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발표를 볼 때마다 정情도 없으면서 계속해서 성을 유린하는 것은 성도착증性倒錯症에 의한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내가 이야기 하는 몸 정과는 조금 다르다.
‘헤어지려면 몸 정부터 떼라.’는 말이 있다. 많은 사유로 인해 서로 사랑하던 사람끼리 정을 쉽게 잊는 방법은 새로운 연인이 생겨날 때까지를 한정限定으로 보면 된다. 사랑하던 사람끼리 애정을 갖고 바람직한 관계를 마르고 닳도록 이어가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는 것이 남녀관계의 사랑이기 때문에 꼭 헤어지기로 작정作定했다면, 몸 정을 빨리 뗌으로써 미련未練을 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순서다.
‘정 때문에 나는 어떡해!’하지 말고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 정은 마음의 정보다 미련의 정도가 크기 때문에 많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잊혀 지지 않고 불쑥 욕정이 솟아 헤어질 때의 감정을 잊고 다시 옛 애인을 찾아 똑같은 전철前轍을 밟게 되는 수도 있어서 다시 사랑의 상처로 길게 남는다.
그래서 육정은 모질게도 잘 떨어지지 않는 남녀 사이의 몸 정인만큼 ‘그 놈의 정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는 갈등을 불러오는 오욕칠정 중 색정色情의 또 다른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