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수필,시

◇ 어버이날의 회한悔恨

이원아 2011. 5. 24. 10:35

어버이날의 회한悔恨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식과의 관계를 어쩌지 못하고 자나 깨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게 인연의 끈을 붙들어 매놓고 신경 쓰면서 살고 있는데, 자식들은 부모의 무한한 내리 사랑에 비해 부모에 대한 효심이 부족한 것 같아 내 자식을 보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2011.05.11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이렇게 저렇게 공휴일이 많은 달이다. 이번 어버이날은 공휴일과 겹쳐서 결국은 쉬는 날이 됐다. 외국에도 이런 날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실 어버이날은 쉬는 날이 아니고 깊은 마음으로 부모님께 고마움을 전하자고 약속한 날이다. 젊은 날 직장생활 하던 때에는 노는 날이라 하여 좋아했던 아련한 추억뿐이다. 아마 당시는 어버이날이 쉬는 날이 아니었으니 이 핑계 저 핑계대고 부모님께 전화 한 통 한 것으로 어버이날을 대신했을 나였으니 그래도 이런 날이 있음으로 해서 이미 고인이 되신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契機도 돼서 좋은 점도 있지만, 한편으론 자식들에게 공연히 신경 쓰이게 하는 것 같아 마음 편하지 않은 날이기도 한 것 같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양생송사養生送死라. 살아서는 부모님을 잘 보살펴 봉양하다가 죽어서는 극락왕생極樂往生하도록 잘 보내드리는 것이 자식이 부모에 대해 효도하는 기본일진대, 부모 자식들 간, 형제들 간, 아님 아내와의 사이에 부모를 모시는 갈등 때문에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가정의 달을 무색케 할 정도로 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9일, 서울에서는 노모老母를 모시는 문제로 시누이와 올케가 다투다가 올케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에 따르면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살고 싶어 했는데 아내가 반대해서 갈등이 있었다는 아들의 말에 따라 노모를 모시는 문제를 놓고 다투다가 홧김에 시누이가 올케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연히 아들이 모셔야 했던 지난 시대에서는 이런 문제는 사회화 되지 않았었는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런 문제는 도처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문제인 것 같아 나도 몇 년 전 어머닐 모시는 문제를 놓고 형님 댁과 동생들, 나와 내 아내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었을 때가 생각나 났지만, 부모를 앞에 놓고 사람을 상해해서는 되겠는가?

  농경시대 같으면 누구든 부모님을 모시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또 우리 전통사상에서는 부모님을 모시는 일이 효의 근본이었었는데, 요즘 노인들은 그 때보다 월등히 오래 살고 있어서 오랜 기간 누가 모시느냐에 따라 자식들 간에 갈등이 더욱 심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씁쓰레한 기분이다.

  또 얼마 전엔, 저를 키울 때 코를 들이대면서까지 똥냄새를 맡아가면서 기저귈 갈아주며 키웠을 텐데,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대변냄새 난다고 때리고 방치해 결국 돌아가시게 한 패륜아悖倫兒가 있었고, 시어머니 생신 날 가서 말다툼하다가 시모媤母를 살해하는가 하면 용돈 안 준다고 아버지를 살해하는 등 세상이 미쳤다지만 가정의 달에 이런 기사가 요즘 너무 많아 뉴스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부모님을 죽이는 것은 오역죄五逆罪에 해당되는 중벌이다. 오역죄는 원래 불교의 가르침이다. “아버지를 죽이는 것(殺父)과 어머니를 해치는 것(害母). 부처님 몸에 피를 내는 것(出佛身血)과 승단의 화합을 깨뜨리는 것(破和合僧). 경전과 불상을 불사르고 깨뜨리는 것(焚燒經像)이 오무간업五無間業이다. 위 다섯 가지 중 하나라도 죄를 짓게 되면 오역죄에 해당되어 무간지옥無間地獄-옥졸이 죄인의 가죽을 벗기고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수레에 실어 훨훨 타는 불 속에 죄인을 집어넣어 몸을 태우며 야차들이 큰 쇠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지는 형벌을 일겁一劫 동안 받는 곳-에 떨어지기 때문에 불교도佛敎徒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아버지, 어머니, 부처님, 승단 경전과 불상들인 것이다.

  이것들을 해치는 것을 일반 불교에서는 큰 죄악으로 생각해서 무간지옥에 들어갈 조건이 된다고 하였는데, 그런데 유교儒敎에서는 조금 다르다. 유교에서는 오역죄를 임금을 살해하는 것과 아버지, 어머닐 살해하는 것.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이다. 유교는 생활종교라서 그런지 혈육을 살해하는 것에 더 비중을 둔 것 같은데, 요즘은 워낙 많은 수의 인간들이 한데 엉겨 살고 있어 별의별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이지만, 종교의 이념을 떠나 나를 낳아 길러 주신 부모인데 이런 저런 사유가 있다하더라도 부모를 살해하거나 상해傷害하는 일이 있어서야 될 일인가?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라는 말은 부모를 죽인사람과는 같은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는 원수, 즉 그가 어디에 있던 하늘아래 원수라는 말이다. 남이 제 부모를 죽인 사람을 끝까지 찾아내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뜻인데, 자식이 제 부모를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는 작금의 세태世態가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지만 천륜天倫을 죽음으로까지 모는 황당한 일이니 남의 일이지만 참으로 할 말이 없다.

구징咎徵이 있어 하늘의 뜻대로 천벌天罰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가해자는 그가 누구이던 간에 그가 죽어 무간지옥에 가기 전이라도 현행법에 의한 중벌을 받겠지만, 내가 하늘나라의 법관이라도 부모를 상해하거나 살해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중죄인에게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은 채 그냥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밀어 떨어뜨리는 엄벌을 내리고 싶다.

  방송을 듣다 보니까 “괜찮다. 나는 괜찮다. 그만 두어라.”하는 부모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고 하는 멘트가 있었다. 부모님 생각이 그게 아니다라는 뜻이다. 속으론 갖고 싶고 먹고 싶어도 당신의 입으로 차마 자식들에게 직접 말하기가 쉽지 않은 부모님의 사려 깊은 생각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 하니 자식들이 잘 새겨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 이제 효도 한 번 제대로 하고 싶으나 부모님이 기다려 주지 않으니 후회스럽기만 한 것이다. 천수天壽를 다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다보면 언제나 부족한 자식임을 죄스럽게 생각하고 있는데, 당해봐야 안다고 내가 이 나이 들어 부모님을 생각하니 잘 한 일은 생각나지 않고 부족한 점만 자꾸 뇌리를 스치며 지나가서 어버이날을 맞는 마음이 편하지 않고 오히려 보고 싶은 간절함만이 더욱 거세게 다가온다.

  얼마 전, 미국 남동부에서 토네이도tornado가 기록적으로 수 백회나 발생하여 수 백 명의 목숨과 재산을 잃은 이재민이 발생하였다는 보도가 나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이제 미국의 기상상황까지도 신경써가면서 살아가야 하니 걱정이 되어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는 차에 아들 가족이 사는 곳에서는 “폭풍우와 낙뢰 등 기상악화는 있었으나 다행이도 아무 탈이 없었다.”고 하는 아들의 전화를 늦게 받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무탈無頉하다니 그냥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끊고 나서도 어딘가 모르게 답답한 생각이 가슴을 떠나지 않는 것은 왜 일까? 그런 대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당연히 멀리 고국의 부모님이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들 입장만 챙기고 있으니..........,

  늦게라도 전화해 줬음이 고마울 뿐이었다.

  사람마다 사는 방법은 달라도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길은 오직 외길뿐이라 해서 그런지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식과의 관계를 어쩌지 못하고 자나 깨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게 인연의 끈을 붙들어 매놓고 신경 쓰면서 살고 있는데, 자식들은 부모의 무한한 내리 사랑에 비해 부모에 대한 효심이 부족한 것 같아 내 자식을 보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부모님 생전, 자식이 먼 길 안전하게 잘 오는지가 걱정이 되어 의문지망依門之望하시며 동구 밖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며 내다보셨다던 어머님의 모습이 선하게 들어오는데, 내 자식은 내 곁을 후딱 떠나 가볼 수 없는 먼 거리에 있고 부모님 돌아가셨으니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맞는 올해 어버이날이 가슴이 멍멍 해 오는 건 외로움일까 나이 탓일까?

  명심보감에서 태공은 효어친孝於親이면 자역효지子亦孝之하니 신기불효身旣不孝면 자하효언子何孝焉이라고 했다. 즉 어버이께 효도하면 자식 역시 나에게 효도하나니 이 몸이 효도 하지 않았다면 어찌 내 자식이 효도 하리오. 그렇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내가 아무리 부모님 생전에 자주 찾아뵙고 부모 자식 간 천륜天倫의 정을 나누며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의 속마음 모두를 헤아려 효행할 수 있었겠는가?

  부모님 마음까지 헤아려 효를 행하지 못한 당시의 내 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자식들이 나에게 효행孝行하라고 나무라기에는 자신이 없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저 것들이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올핸 아무도 찾아 주지 않으니 한편엔 이렇게 서운한데 생전에 어머니, 아버지께서도 이럴 때 많이 서운해 하셨을 그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어버이날이라고 하니 자식들에게서 금세라도 걸려올 것만 같은 벨 소릴 듣기 위해 전화기에 눈길 보내며 지내는데, 큰길가에 자동차 세워 놓고 사람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더 지루했었지만, 어쩌겠나?

에구구! 이럴 때 할 수만 있다면 천상天上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 전할 때 거기서 “둘째구나!”하는 어머님의 반가워하는 목소리라도 한 번 생생하게 듣고 싶은 부질없는 생각에 잠기는 어버이날이다.

  “곧 성묘하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