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수필,시

◇ 한 여름 밤의 고향故鄕 시

이원아 2011. 8. 16. 11:41

 한 여름 밤의 고향 시

                        

                 천막속이라 불편한 자리임에도 누구는 누워서 누구는 앉아서 도란거리는 형제들의 이야기 소리는 그간의 살아 온 삶의 찐한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각본 없는 한 편의 가족 드라마가 되어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되어 공감하는가 하면, 고민 되는 부분에 가서는 대안代案과 함께 격려나 위로하는 사이 한 여름밤의 더위는 저 멀리 달아나 버린 채 강 주변의 밤 분위기와 어우러져 밤새는 줄 모르고 써내려가는 한 편의 고향故鄕 시가 된다.”                                                 2011.8.10

 

< 호탄강 둑에 친 천막:직접 잡은 민물 매운탕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어느 경우에도 산 사람은 그래도 살 아야 한다. 전국이 수해가 아직 복구 되지 않았는데, 설 상가상雪上加霜으 로 제9호 태풍 무 이파가 북상한다하여 걱정은 됐지만 이미 약속한 날짜에 우리 형제자매들이 휴가를 한 곳에 모여 친족 간 우애를 다지는 연례행사를 미룰 수가 없었다. 한 쪽에서는 수해복구와 태풍대비로 인해 휴가를 엄두도 못 내고 있는 판에 미안함은 있었지만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지금. 피붙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얼굴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피서철에 강이나 계곡에 모여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피를 나눈 형제들이 본시동근생本時同根生임을 확인하면서 애틋한 형제애를 나누는 의미 있는 자리인 것이다.

  작년(08.13-15)에 이어 이번(08.05-07)에도 금강의 상류인 호탄강- 이 강은 덕유산에서 발 원하여 대청댐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특이하게 북쪽으로 흐른다.-가에 천막을 쳐놓고 있으면 각자의 사는 곳에서 곧 들이닥칠 동생들을 기다리는 마음은 명절 때마다 의문지망依門之望하시며 외지의 자식들이 어서 돌아오길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으로 채비하는 마음은 즐겁기만 했다.

  한 자리에 모이면 한 핏줄들이라 그런지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형제부터 생각이 나 그리움이 벅차오른다고 다들 아쉬워한다. 천막 속이라 불편한 자리임에도 누구는 누워서 누구는 앉아서 두런거리는 형제들의 이야기 소리는 그간의 살아 온 삶의 찐한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각본 없는 한 편의 가족 드라마가 되어 듣는 이로 하여금 공감되어 감동하는가 하면, 고민 되는 부분에 가서는 대안代案과 함께 격려나 위로하는 사이 한 여름밤의 더위는 저 멀리 달아나 버린 채 강 주변의 밤 분위기와 어우러져 밤새는 줄 모르고 써내려가는 한 편의 고향故鄕 일기가 된다.

  일찍 고향을 떠나 생활한 나는 동생들의 세세한 부분을 잘 알지 못하고 성장했기 때문에 가끔씩 만단정화萬端情話하는 중에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동생들이 어렵게 자란 부분까지 알게 되는 계기도 되고, 어릴 때 오빠나 형인 나를 끔찍이도 생각했던 그들의 연정戀情이 가슴을 메이게 하는 때에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실감나 해마다 듣던 이야길 또 듣더라도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아직까지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남동생은 올 해가 아주 의미 있는 해이다. 첫 손녀가 생겨나 식구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까만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려가며 꼬무락거리는 손녀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며 연신 웃음 짓는 이 동생은 우리 모임의 주동적主動的 역할을 한다. 해마다 날짜를 정하는 일이며 각자의 역할을 분담시키는 일 등 모든 계획은 그의 생각에서 나온다. 사촌들, 조카들이나 생질들을 옵서버로 불러 모으는 일도 그의 몫이고, 예산의 집행은 물론 행사를 주관하면서 틈나는 대로 그물질이나 투망을 쳐 한 끼 정도는 꼭 민물 매운탕을 먹을 수 있도록 물고길 잡으러 부지런히 물가 여기 저기 살피며 넘나들기를 자처하며 준비한다.

  이 동생은 숨은 장기도 있다.

  작년에는 천둥, 번개가 치 면서 밤비가 세차게 들어치 기 때문에 어디로 피하지 도 못하고 무섭기도 한 때. 천막 속에 무료하게 누워있 는 형제들에게 보여 줄게 있다면서 소지하고 다니는 하모니카를 꺼내들더니 멋들어지게 불어대는 그의 하모니카 연주소리에 감동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앙코르 또 앙코르........,

 

  숨은 재주에 여름밤이 즐거웠었다.

  작년에는 30여 미터나 되는 그물망을 허리까지 잠기 는 강물에 들어가 어렵게 쳐두었다가 이웃의 금산지 방에 밤새 내린 폭우로 인해 그물이 떠내려가는 바람에 낭패狼狽를 보았었는데, 올 해는 어항에 고기가 잘 들지 않는다고 투덜대면서도 기필코 하루 늦게 도착한 막내 매제妹弟와 함께 투망을 쳐 먹을 만큼의 꺾지, 피라미, 마주 등 물고길 잡아와 도시에서 먹는 그런 맛보다 열 배나 맛있는 매운탕을 끓여 먹게 했다.

 

 

  특히 여동생들은 이 행사의 주역들이다.

  부모 밑에 7남매로 자라면서 내 위로 누님과 형님을 여의고 이제 남은 5남매 중 여동생 셋이 있는데, 이들이 나름대로 역할을 잘 해주어 2박 3일의 일정을 마칠 때까지 화목한 분위기의 주역主役을 단단히 해주고 있다.

  서울에 사는 제일 큰 여동생은 손재주가 좋아 뜨개질을 아주 잘한다. 작년에는 “딸이 이모들과 외삼촌들 주라고 하기에 가져왔다.”며 모자와 여름용 홑이불을 선물하더니 올 해는 부엌 용 생활용품을 가져와 나를 포함 형제들에게 일일이 내민다. 평소에도 가끔 모자나 장갑, 손가방, 액세서리 등을 손뜨개질하여 제 동생들에게 나눠 주는 모습을 보기도 했었지만, 올핸 함께 타고 온 제 오빠 자동차 속에서 뜬 것이라며 내미는 소품小品이니 얼마나 값진 일인가! 값으로 치면 얼마 안 되는 물건일지 몰라도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며 한 뜸 한 뜸 뜨개질을 하여 만든 소품이라 그런지 갸륵한 이 동생의 마음은 자못 나를 감동케 한다.

  몇 년 전에 외손外孫을 보긴 했어도 언제나 팽팽한 얼굴이었으면 했는데, 그녀도 이제 곧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테가 얼굴에 많이 보이니 초승달처럼 예쁘다고 할머니께서 자랑하시던 그 예쁜 얼굴 다 어디로 갔는지 얼굴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 여동생 농장에서 호박따는 일 을 거들고 있다

 

 

  고향 마을에서 비닐하우스 시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둘째 여동생은 한 마디로 농사의 달인이며 요즘 여인 같지 않게 억척스럽기 그지없는 농촌 여인의 표상表象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 전 젊은 나이에 남편을 사고로 잃고 홑 시어머닐 모시고 어린 아이들을 양육해야만 하는 고난은 물론 그 많은 세월을 고침한등孤枕寒燈으로 지내며 철철이 혼자 그 많은 농삿일하는 중에도 오몰 조몰 밑반찬이나 식혜 같은 음료들을 만들어 내는 일은 이 동생의 자처한다.

  형제자매들이 모두 객지에 살고 있으니 기본적인 야영野營 준비나 갖가지 식재료, 식사 도구 등을 준비하면서 모두 만나기로 한 날짜가 기다려진다는 그녀가 만들어 주는 보리밥 맛은 생전 어머님의 손맛 같은 그런 정성으로 밥을 짓기 때문에 여러 형제자매들이 매우 기다려하는 주 메뉴이기도 하다.

입이 넓적한 양푼에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푹 퍼진 보리밥에 갖은 양념과 참기름을 듬뿍 넣고 열무를 섞어 쓱쓱 비벼 퍼주는 이 동생의 손맛에 반해 나는 보통은 두 그릇 이상을 생각 없이 퍼먹고 과식過食하여 불룩 튀어 나온 배를 주체하지 못해 쩔쩔매기 일쑤다.

  또 밤 시간이 이슥해 배가 출출해지는 때 제철인 애호박을 넣고 끓여 주는 칼국수의 맛은 어떠며, 땡초를 조금 넣고 부치는 호박부침개는 또 어떤 맛인가? 깊어 가는 고향의 여름밤 강가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무슨 이야긴 줄 모르며 그저 좋아라며 조잘 대는 중에 먹기에 안성맞춤인 밤참의 맛이며 일하다 먹는 고향의 새참 맛이고 찐한 형제들 우애의 정 맛, 바로 그 맛인 것이다.

  매번 먹거리 장만을 주관하는 것은 물론 형제들과 열악劣惡한 야외 천막 속에서 짧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 비벼대다가 헤어짐을 늘 아쉬워하는 듯 손수 농사지은 애호박이며 풋고추 등을 몫몫이 싸 차에 실어 주며 “아이구! 우리 또 언제 만날까?”하면서 벌써부터 내년에 또 만나자는 무언無言의 압력으로 배웅해 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내 여동생의 마음 씀씀이가 자식을 멀리 보내는 부모의 마음인 것 같이 이 동생한테서 느끼는 애잔한 마음이라 헤어지고 돌아서는 내 눈에서 아득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자꾸만 뒤돌아보게 한다.

  올 해는 마침 형제자매들이 모이는 날에 맞춰 갖가지 준비를 하는 중에 시모媤母 상을 당하여 상주 역할과 우리들 모임을 위한 준비 등으로 애를 너무 많이 썼는데, 그녀와 함께하지 못한 이번 모임이 너무 아쉬웠다.

 

  청주 근교에 살고 있는 막내 여동생은 아무리 잘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날씬한 몸매를 갖고 살림을 똑 소리 나게 잘한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현재 모 학교의 영양사營養士이기도 한 그녀의 성품답게 직접 만들어 내놓는 밑반찬이나 식음료는 맛이 담백하면서도 특이한 점이 있다. 작년에는 쑥떡과 망개떡을 정성껏 만들어와 떡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나를 즐겁게 해 주더니 올해는 이른 봄철부터 온 동네 산야山野를 누비며 채취해서 손질해 온 것이라며 옻, 두릅, 오가피, 엄나무 순 등으로 여러 가지 밑반찬을 만들어 내 놓으니 모두들 보약이 따로 없다는 듯 그 쪽으로 젓가락손이 가 맛있게 먹기도 했다.

 

  동생들이 많으니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어 좋기만 한데, 가난하기만 했던 옛 시절을 회고하건대 내 부모님은 많은 자식들을 낳아 양육으로 인한 고통을 치르셨겠지만, 한 부모 밑 같은 뿌리에서 태어나 어른이 다 된 지금 이렇게 많은 형제들과 지내도록 부모님이 고향에 게실 때처럼 형제자매들과 구심점求心點을 이어가 소통하는 자릴 만들어 지내는 바람에 우애를 다지는 기회를 갖고 있으니 다시금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이어 가는 여름행사가 즐겁기만 한 것이다.

  헤어짐이 아쉬워 꼭 잡았던 손 흔들며 돌아오는 길, 정표情表라면서 여동생이 실어 준 애호박과 풋고추 냄새가 차 안 가득 풍기는 때, 짓궂은 한 줄기 소나기가 여름임을 확인하듯 차창을 때리고 지나가 고속도로를 적시며 고향의 냄새를 지우려 든다.  혹시 제일 연장자年長者라고 아래 동생들에게 군림하며 위엄만 지키려고 거들먹거리지나 않았는지, 또 내 역할을 잘 했는지 조금은 두려움도 없진 않으나 동생들의 과분한 대접이 있어 마음만은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각자의 삶에서 비록 넉넉한 살림살이를 하고 있진 않더라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랑스러운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런 모임을 통해서 서로 자두연기煮豆燃箕하지 않고 우애 있게 정을 나누며 잘 지내도록 하는 역할을 내가 솔선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 본다.

  집에 돌아와 방금 전까지 고향 강가에서 있었던 형제들과의 정겨운 추억을 가슴에 듬뿍 담고 느끼며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는 형제자매들에게 신의 무궁한 가호加護가 있기를 빌며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사랑하는 동생들아! 짧지만 긴 시간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 건강 챙기며 잘들 지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