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 흑룡의 해를 보내며
◇ 2012, 흑룡의 해를 보내며
“다가오는 2013 새해는 뱀띠 계사년癸巳年이다. 새해에는 내 개인적으로는 가족들과 함께 더 건강한 해가 돼주었으면 하고, 문인으로서의 창작활동과 취미생활을 더욱 알차게 하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또 국가적으로는 새 대통령을 맞는 대한민국의 국운이 융성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만방에 떨쳐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2012.12.29
역술가曆術家들은 2012년 임진년은 60년 만에 돌아온 ‘흑룡의 해’라고 하여 그것이 상징하는바와 같이 상서祥瑞로운 동물의 해라서 길일이 많다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해를 넘기지 않고 택일을 하여 결혼식이나 아이를 많이 낳는 등의 통계적 기록들이 많았던 해라고 한다.
세모歲暮가 곧 닥아오는 즈음 이 해를 넘기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흑룡의 해는 어떠했을까?
<1>
나는 여름휴가를 떠나는 중에 서울의 친구가 악환惡患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문상도 못한 그 상심으로 인해 고인에 대한 미안함이 컸었는데, 이 달 초에는 서울에서 오랜 기간을 투병 생활하던 중에 있던 부산의 또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남으로 해서 한 해에 두 친구를 잃은 해가 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 흑룡의 해인 임진년은 황당하고 슬픔 한 해로 기억되는 해가 된 셈이다.
둘 다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듣고 있다가 창졸간倉卒間에 두 친구가 각각 저승사자의 부름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말로 표현 못하는 애석함과 인생의 삶에 대해 다시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매체를 통해 악환惡患인 암으로부터 투병을 잘해 극병克病함으로서 완쾌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마다 한 가닥 희망을 걸어 보았지만, 모두의 바람을 저버리고 그렇게 빨리 유명을 달리하는 걸 보면 의술이 발달된 지금도 역시 아직은 어쩔 수 없다는 절망감이 앞섰다.
사람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순리대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일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다른 사람은 치료가 잘 되는 병도 나에게는 안 낫는 병이라 생각하면 의술의 한계라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의 결정이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나는 사생유명死生有命이라고 하는 운명론을 들고 나온다.
즉 죽고 사는 일은 운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제 고인이 된 두 친구의 죽음은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사람이 생명을 부지하면서 한 세상 사는 일도 그렇지만, 특히 죽는 일만큼은 내 마음대로 그 시기를 알 수 없는 일이니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죽으면 만사휴의萬事休矣다. 모든 일이 끝났으니 어떻게 달리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이미 죽는 날이 정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일 테고 그리고 형제자매나 가족 중 혈육血肉을 잃는 것일 것이다. 그 다음은 누구일까? 아마도 친구가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같은 죽음일지라도 나이 많아 먼저 죽는 일은 순서에 의한 것이지만 친구는 또래로서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할 영원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더 낫다.’고 했는데, 저세상으로 먼저 가서 흑룡의 정기를 받으려고 그렇게 일찍 이승을 떠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해는 남아있는 다른 친구들이나 유족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애통함이 있었던 해가 된 것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어려운 시절 같은 반에서 함께 건축을 공부한 절친들이 한 해에 공교롭게도 먼저 세상을 떴는데, 고인의 친구로서 그가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지켜보는 일도, 그의 유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는 일도 살아있는 자의 배려라고 생각해 부산 친구의 빈소는 나흘 내내 지켰었다.
“모든 것 놓고 먼저 가시게나, 모두 곧 뒤따라 갈 것이니.” 부산 친구 N의 부음 소식을 접한 카페의 어떤 회원의 댓글 조사弔辭가 한 해를 보내는 즈음이라 그런지 더욱 나를 서글프게 한다.
두 고인故人에 대해 삼가 명복을 빌며.........,
<2>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가 보다.
전자는 친구를 잃은 것이고 얻은 것은 수필隨筆로서 문학계에 등단登壇한 일을 꼽을 수 있다. 지난 6월 계간청옥문학 여름호에 수필부문 신인으로 당선된 것을 계기로 나 자신 엔지니어로서 문인들과 교감하면서 문학생활을 경험한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문학을 이야기하면서 문학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은 이 해에서 얻은 가장 보람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친구들 중에는 나와 같이 건축을 전공했음에도 오래 전부터 시나 수필로서 등단하여 국내 굴지의 일간신문에 기고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들로부터 많은 조언은 물론 <한결모임> 카페를 통해 현재까지 450여 편이나 되는 방대한 내 졸필拙筆들을 읽고 댓글로서 격려해준 회원들 덕분에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점을 큰 힘으로 믿고 용기를 냈던 것이 등단의 계기가 됐었다.
내가 등단한 청옥문학회 회원들과 함께한 무주구천동에서의 ‘찾아가는 시낭송회’와 내가 속한 가산문학회의 제주도(3박 4일. 추자도, 횡간도) 문학기행 중 ‘귀양살이 체험’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생소한 사람들과의 또 다른 사귐이 되어 활동 영역이 넓어진 점과 내 수필의 문학적 소재가 되었던 점은 또 다른 경험이 되었다.
아직은 감히 문학을 이야기하기가 일천日淺하여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만 문학은 겉이 아닌 속으로부터 분출되는 내면의 세계를 이어주는 소통의 수단이 된다는 점과 각기 추구하는 다양한 장르의 표현기법을 통해 그가 전하고자하는 순수성을 배우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엔지니어가 체험하기 어려운 유익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돈이 드는 일도 아니며 그저 의욕과 시간만 있으면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 현재 생각으로는 최소한 고희古稀를 맞을 때까지 계속하여 나의 생각들을 글로서 남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3>
나는 일간풍월一竿風月하면서 낚시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다. 낚시장대 하나 들고 낚시터에서 독조獨釣하거나 다른 꾼들을 조우釣友삼아 떡붕어를 낚고 있으면 하루해가 언제 지는지조차 모르도록 심취하면서 세월을 즐겁게 보내고 있으니 강태공도 부럽지않은 것이다.
이 해가 저물어 가는 즈음 가만히 뒤돌아보니 아마도 내가 살아오는 동안 여태껏 낚시질을 제일 많이 다닌 해로 기록 되었다. 통계를 보니 일수로는 100여 회를 넘는 날을 낚시터에 앉아 세월을 낚았으니 연 중 1/3의 날들을 떡붕어와 씨름을 한 셈이고, 그 중 절 반 이상을 낚시터에서 자고 먹으며 밤낚실 했다. 이 정도면 나도 낚시 마니아임에 틀림없다.
올 봄 처음으로 떡붕어 낚시를 배우기 위해 새로운 채비와 장비를 구입해 놓고 시조試釣하기 위해서, 또 다른 장르의 조법釣法을 배우고 익히려는 욕심과 내 생각대로 낚시에 걸려드는 떡붕어 손맛의 매력에 빠져서 그렇게 많은 날들을 낚시터에서 세월을 보낸 것이다. 그간 사귄 조우들로부터 내가 제일 많이 낚시기술이 늘었다고 평해주는 걸 듣고 생각해 봐도 요즘은 자칭 이 낚시의 마니어가 돼 그 매력에 푹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법이나 조술釣術이 매우 늘었다.
성탄일인 25일 전날은 부산에도 -7℃의 날씨라 매우 추웠음에도 망설이다 낚시를 갔었는데, 저수지 가득 얼음이 얼어 낚시가 불가능할 것 같아도 상대적으로 얼음속의 수온은 외기보다는 따뜻하므로 떡붕어가 가끔씩 입질을 해주었기 때문에 종일토록 즐거운 낚실 할 수 있었다.
물론 주인과 함께 두꺼운 얼음을 깨내는 수고를 했지만, 물 가운데 잔교위에 텐트를 치고 단단히 무장을 하고 덤벼드는 조사釣士들에게는 추위가 생각보다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떡붕어 중층낚시에서 문제가 되는 일이라면 비나 추위보다는 바람이 더 문제가 된다.
특히 동절기엔 바람 자체로 체감온도를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채비를 다룰 때 일정하게 투척할 수 없어 불편하고, 또 물결이 이는 관계로 찌를 보고 읽을 때 더욱 신경 써서 집중하지 않으면 미세한 입질을 놓치기 일쑤기 때문에 조과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 낚시터의 주인은 낚시도 고수이지만 이런 엄동기에 찾아 온 조객釣客들을 위해 따끈한 커피나 음료를 텐트 속에 던져 주고는 조황을 확인하면서 기법을 훈수해 준다.
낚실 잘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전례 없이 낚실 많이 다녔던 만큼이나 나의 즐거움도 많이 있었을 것이니 누가 뭐라 해도 그로 인한 나의 심신도 한층 건강해졌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욕심 같지만, 지금같이 건강만 잘 유지된다면 평생 조합釣樂하려고 하는데, 이 낚시터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 내가 최고령最高齡 낚시꾼이 될 수 있길 기대하면서 채비 손질을 하고 있으니 성탄일에 마리수로 재미 봤던 떡붕어의 손맛이 또 생각난다.
아, 또 하고 싶다.
낚아 내는 손맛, 놓아 주는 떡붕어 사랑!
<4>
나라에서는 지난 4월 11일, 19대국회의원 선거와 이달 19일, 18대 대통령 선거를 치러 한 해 두 번씩이나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던 상관없이 국민들은 선거판에 신경을 써야하는 국가적 대사를 치러야 했다.
특히 이번 18대 대선에서는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고 박정희(5~9대 대통령. 1917-1979) 전 대통령의 큰딸인 박근혜 여성후보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와 치열하게 경합競合하다가 지지율이 과반을 넘는 표차로 당선되는 바람에 부녀지간에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최고의 여성 권력자가 된 점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박 당선인은 내년 2월, 새 정부가 들어서기 위한 사전 단계로 지금은 대통력직인수위원회 인선에 장고하고 있는 중인데, 국민들은 그 많은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끝나지 않게 국민적 역량을 모아 주는 일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선거의 속성 상 패자와 승자를 가려야 하는 것이 본질이지만 백성들을 편하고 잘 살게 해주려는 후보를 뽑아 나라는 물론 개인이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단단한 국가안보를 바탕으로 부정부패 없고 사심 없이 공명정대한 정책을 펴는 사람을 나라의 살림꾼이 돼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사상 처음 여성후보인 박 후보를 선택했다.
그러나 양갱수미중구난조羊羹雖美衆口難調라 했다. 아무리 양고기 국이 맛있다고는 하나 뭇 사람들의 입맛을 고르게 맞추기는 어려운 노릇일 것이다. 또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단지 국민들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현재 경제는 물론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있을지라도 당선자의 성향으로 보나 그녀의 전력으로 보나 여러 모로 부친의 성향을 닮은 것으로 보아 지금까지의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는 깨끗하고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이 되어 대부분의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되길 바라는 국민적 기대가 큰 것이다.
<에필로그>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는 잠시 내려서 자기가 달려온 길을 돌아본다고 한다. 그것은 달리는 말이나 사람이 피곤해서가 아니고 너무 빨리 달려왔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못 쫒아올 것 같아 그런 의식을 치른다는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꼭 영혼이 따라 오는가 본다기보다는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잠시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재충전하여 다시 열심히 달리라는 말일게다.
숨 가쁘게 살다 저무는 임진년의 끝자락에서 뒤돌아다본 세월들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보람된 일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위의 내용대로 희로애락喜怒哀樂 하는 가운데 그저 소사무난小事無難하게 보낸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다가오는 2013 새해는 뱀띠 계사년癸巳年이다.
새해에는 내 개인적으로는 가족들과 함께 더 건강한 해가 돼주었으면 하고, 문인으로서의 창작활동과 취미생활을 더욱 알차게 하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또 국가적으로는 새 대통령을 맞는 대한민국의 국운이 융성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만방에 떨쳐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거년막추去年莫追요 내년물거來年勿拒라. 가는 년 막지 말고 오는 년 거절말자.
송구送舊, 임진년! 영신迎新 계사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