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강지부불하당糟糠之夫不下堂이라
◇ 조강지부불하당糟糠之夫不下堂이라
“가정에서부터 가장의 입지를 지키는 일이 힘든 세상에 살고 있는 현실에서 아버지의 등이 태산泰山 같게만 하던 위상은 점점 작아지고 그 역할도 뒤 바뀌는 것 같아 머지않아 이 땅에 조강지부불하당糟糠之夫不下堂이라고 고함치며 다니는 간 큰 아버지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10.11.15
효자불여악처孝子不如惡妻란 말은 아들 선호사상이 극에 달하던 시대에도 있었던 말로써 악처가 효자보다 낫다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가 들면 손자 재롱떠는 재미에, 며느리가 따뜻한 밥 해 주는 재미에 그럭저럭 살았지만 요즘은 많이 배운 며느리가 밖에 나가 돈을 벌기 때문에 어림없는 일이 되었다. 더 이상 자녀가 울타리가 됐던 시대는 지났다는 이야기이다.
반쪽이라고 여겼던 아내와 남편이 노년에는 전부가 되어야 할 텐데 ‘메모로 대화하는 노부부’가 법원으로부터 황혼黃昏 이혼의 허락을 받아 파경破鏡 되었다는 기사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다.
미국의 심리학자 존 카트맨은 이혼의 네 가지 지름길로 비난․방어․경멸․담쌓기를 꼽았다. 배우자끼리 욕을 하기 시작하며 상대 탓으로만 돌리려 하다가 경멸하고 급기야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상태인 ‘담쌓기’의 수순에 따라 이혼을 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부부간에 싸움을 안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긴 해도 상대가 남보단 못한 경우까지 막 간 경우에는 정말 한 집안에서 얼굴만 부닥뜨리면 땡감 씹은 얼굴처럼 상을 찡그리며 대하기 싫어질 것이니 물론 말조차 하기 싫어지게 될 것이다.
경험해 보아서 알겠지만, `말 안하기'는 부부싸움 과정에서 자주 사용되는 수법手法이다. 다투고 나서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지내고, 필요한 대화는 메모나 휴대폰 문자로 주고받는다. 그러나 이로 인해 대부분의 부부들은 애정이 있기에 곧 서로 말문이 트이고 부부싸움도 곧 화해로 결론이 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만약 부부가 한 집에 살면서 7년간 말을 섞지 않았다면......, 그리고 필요한 대화는 메모로만 진행했다면......,
오죽 서로 미웠으면 말문을 닫고 한 집에 살까마는 이쯤 되면 `말 안하기'는 최악의 경우인가 보다. 실제로 76세의 할머니와 80세의 할아버지가 한집에 살면서도 메모지를 통해서만 대화를 해 온 노부부가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으로부터 이혼판결을 받았다.
기사 내용으로만 봐서는 할아버지가 매우 경제관념이 투철하고 권위적權威的이며 가부장적인 성향으로 할머니를 통제해왔고 “두부는 비싸니 찌개식으로 하지 말고 몇 점만 넣으라.”는 식의 가정사 모든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간섭하였던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사사건건 소위 말하는 좀생이 짓으로 그의 아내를 통제해 왔고 급기야 어느 날 밥상에 깻잎 반찬이 안 올라왔다는 이유로 다툼 중에 폭행이 가해져 급기야 할머니가 병원 신세를 짐으로써 할머니 측의 이혼 청구소송으로 법원의 이혼판결이 난 그런 내용이다.
내가 생각해도 할머니 입장에서 보면 남편이라기보다는 참 피곤한 영감탱이와 여태껏 참고 함께 살아 온 것이 이해되지 않을 일이기도 한데 요즘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성 류의 전형적 모델 같기도 하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왜 하필 깻잎 반찬 때문에 다퉜을까를 생각하면서도 이제 파란만장한 세상 사는 맛 다 본 두 노인네가 그 길만이 최선의 선택 이었나도 생각해 보면서 여러 가지 단상單想이 떠오른다.
그까짓 깻잎반찬 하나에 화를 내고 급기야 싸움으로 시작되었을까? 아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다. 그 내면에 누적된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져 있는 참에 그 반찬이 안 올라왔다고 구실이 되어 시비가 시작됐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이 간다. 기사를 읽거나 방송을 들은 많은 수의 사람들은 이들 노부부가 처한 이런 상황은 간과 한 채 할머니 쪽에 손을 들어 준 법원의 판결에 대해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듯했으나 나는 정 반대의 의견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거안제미擧案齊眉하면서 40여 년을 함께 살아 온 부부사인데, 왜 하필 깻잎반찬을 상에 올려야 하는 때 그걸 올리지 않고 싸움의 단초를 제공했을까하는 데는 고려하지 않고 할아버지의 가부장적家父長的 남성 우월주의에 의한 아내에 대한 폭행만을 나무라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내가 여기서 절대적으로 할아버지를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를 풀고자 한다. 이 기사에서 “가장이요 세대주의 밥그릇이 복지개 따로 밥그릇 따로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남편을 섬기지 못하고 피곤하게 하는 여잔 이젠 싫다.”는 등 권위주의적인 내용이 담긴 메모지도 계속 전달됐다는 기사도 있는데, 외곬스럽고 깐깐한 할아버지의 성격도 문제지만 그런 할아버지의 성격을 이해해 주지도 않는 할머니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일방적 생활태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구의 잘잘 못 없이 서로 상대하기 싫기 때문에 모든 것이 미워져 ‘평생웬수’가 되었을 것이다.
이 정도인데도 악처惡妻가 효자보다 더 나을까?
어느 사람은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가 유명해 진 것은 그의 부인이 악처이기 때문이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악처와는 한 시라도 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이다. 흔히 배우자가 있어야 노후가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배우자도 그 나름 아니겠는가? 그 말은 총론적인 이야기이고 각론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남들은 나를 좋아하는데 왜 상대는 나를 미워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려 들고 생트집일까? 본인은 그렇게 완벽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정말 땅바닥에 침 한 번 안 뱉고 살 정도로 완벽한 것인가 물어 보고 싶다.
채근담에서 치인외부痴人畏婦요 현녀경부賢女敬夫라고 태공이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내를 두려워하고, 어진 여자는 남편을 공경한다고 했는데, 어디 똥이 무서워서이겠는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지. 부부관계를 절장보단節長補短하지 않고 어느 한 쪽이 우월적인 지배의식으로 다른 한 쪽을 통제하려 든다면 당하는 쪽에서 보면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짜증나고 소름끼치는 일 일 것이다.
기사의 내용대로라면 이 노부부가 더 이상 부부로서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재판부에서 결정한 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그렇더라도 어느 한 쪽의 일방적 몰아붙이기식의 돌팔매질도 해서는 안 된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세상에 둘도 없이 금슬이 좋은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집안에 들어 와서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는 부부를 가리켜 ‘가면부부假面夫婦’라고 한다. 그러니까 마치 밖에 나갈 때 가면을 쓴 것처럼 겉과 속이 다르게 사는 부부를 말한다고 하는데, 우리 사는 사회에도 적지 아니 있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나는 오히려 밖에 나가면 가면을 벗고 집안에서는 가면을 쓰고 사는 데, 이 경우도 해당되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부부관계라는 것이 다 알고 사는 것 같아도 또 모를 일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후한서에서는 조강지처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이라 했다.
술지게미나 쌀겨로 연명하듯이 아주 어렵고 가난했을 때의 아내, 즉 본처를 저버리거나 내 쫒아서는 결코 안 된다는 말인데, 이 말을 요즘 시대에 사는 우리 사회에서는 잘 맞지 않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이 가장家長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했던 농경사회 시절엔 상대적으로 여성의 역할이나 입지가 미약했기 때문에 조강糟糠이나 누룽지를 먹으면서도 감히 어쩌지 못하고 가장에게 순종하는 것이 사회적 윤리요 여성의 미덕이었을 것이고, 반면에 가장은 그렇게 고생하면서 가장의 체통을 지켜 준 아내를 집 밖으로 쫒아 낸다는 것을 부덕不德한 경우라고 알면서 가정을 지켜왔던 것이 우리네 전통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누룽지야 맛맛으로 먹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조강을 먹으려는 여성은 없는 대신에 남편이 경제권이 없으면 능력 있는 여성이 밖에 나가서 일하는 소위 ‘워킹 맘Working Mom’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또 이 사회는 그런 가정에 대해 여러 가지 제도적 혜택을 줘가면서 도와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경우와 같이 조강지처가 아니라 조강지부糟糠之夫도 있는 것이 요즘 시대인 것이다. 조강지부가 됐건 지처가 됐건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젊은 나이도 아닌데, 이 할아버지와 같이 다 늙어가지고 조강지부가 된 신세로 하당下堂된 꼴이 된 셈이라 세상은 요지경이 된 것 같아 씁쓰레한 기분이다.
점점 교육받은 여성들이 늘어나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부권夫權을 주장한다고 다 들어 줄 아내도 드문 세상이 됐다.
따라서 가정에서부터 가장의 입지를 지키는 일이 힘든 세상에 살고 있는 현실에서 아버지의 등이 태산泰山 같게만 하던 위상은 점점 작아지고, 그 역할도 뒤 바뀌는 것 같아 머지않아 이 땅에 ‘조강지부불하당糟糠之夫不下堂!’이라고 고함치며 다니는 간 큰 아버지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