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하노이, 하롱베이)문학기행
베트남(하노이,하롱베이)문학기행
<부산청옥문학협회문학기행>
Prologue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읽는 독서다'라는 말이 있다.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역시 여행은 재미난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말로 서문을 쓰려고 한다.
2018.4.17~4.21까지 필자가 속해 수필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부산청옥문학협회(회장 최경식)의 회장을 비롯한 이수일, 이석락 부회장-이 세분은 작년 황산 여행을 함께했던 분이다-그리고 정예담 회원 부부를 비롯한 게스트 회원 1명. 합계 7명으로 구성돼 베트남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인, 하롱베이(下龍BAY)를 다녀왔다.
4.17일, 새벽 6시.
날씨는 흐려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일교차가 심한 날씨다.
부산 김해국제공항 주차 빌딩에 들어서니 이미 만차 가까이라 헤매다 어렵게 한 자릴 찾아 주차해 놓고 나중을 위해 주차 사진을 찍어놓고 대합실에 들어갔다.
대합실은 이미 베트남으로 떠나려는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뜬 마음으로 웅성이며 여기저기 그룹 지여 모여 있었다.
함께할 일행들을 찾아 인사를 하고 (주)홍성트레블 여행사 카운터에 모이니 담당자가 주의사항과 당부 말을 전하면서 항공기 탑승권을 나눠주는 것으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은 항상 기대하는 바가 커서 들뜬 기분이다.
1964년도부터 공병을 담당한 비둘기부대, 의무를 담당한 십자성부대의 파월로부터 시작한 월남전에 우리나라 군인들을 파견해 월맹군과 전쟁을 했던 나라, 베트남!
현재 잘 알다시피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 잘 알고 있지 못하는 나라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하면서 우리와 비교도 해보고 배울 것은 배워 사고의 폭을 확대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 때 적국이었던 사회주의 국가라 약간은 긴장되는 점도 있겠지만, 여행을 하고 나면 아마도 상대국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일이기 때문에 일면 기대하는 바가 큰 것이다.
사실 필자는 2016년 9월(3박 4일간), 베트남의 남부 경제중심 도시인 호치민시-베트남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을 때 남베트남의 수도로 발전했던 사이공은 북베트남에 의해 통일 되면서 호치민(胡志明. 1890-1969. 베트남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인 본인의 이름을 따 호치민시로 바뀐 도시-를 여행한 바 있어 이번이 두 번째 여행이다.
이때는 학교 옛 친구들과 7순 기념여행 겸 월남 전적지 탐방이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한 곳인데, 특히 구찌(久芝)지방의 지하 땅굴을 둘러 볼 때는 좁고 긴 터널에 숨어서 정글 속을 누비며 얄궂은 농기구 같은 병길 들고 신출귀몰 공격해 오는 베트콩을 섬멸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던 월남전의 상상이 현실처럼 다가 왔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항공여행을 갈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출국수속은 절차가 번거롭고 엄격하다는 점에서 첫 출발의 기분을 긴장되게 했다.
아침 8시 이륙하는 하노이항공 소속의 항공기를 탑승하기 위해 여행가방과 함께 출국수속을 줄지어 마치고 나니 일행들은 조금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 보였다.
부산에서 하노이까지는 2시간의 시간차가 있으니 시간상으로는 모두 4시간 반의 거리이다.
그러니까 하노이 노이바이국제공항에 도착하면 10시 35분 경이된다. 위도 상으론 2시간이 젊어지는 셈이다. 보딩시간이 되어 기내에 오르니 출국이 실감났다.
기내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비행기 뒷부분에 자리하고 나니 언제나처럼 출발 전 안전에 관한 교육이 있었고, 정해진 시각에 출발. 항로가 안정되자 승무원들이 카터를 밀고 다니며 음료 등을 팔러 다녔다.
대부분의 항공사에서는 거의 충분할 정도의 음료와 약간의 주류를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어 이런 모습이 오히려 필자에겐 생소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쨌거나 필자는 새벽부터 설쳐대서인지 졸려 이제 잠 좀 자야할 시간이 된 것 같아 눈을 감았다.
대부분의 승객들도 같은 생각에서인지 눌 자릴 잡는다.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멘트에 잠을 깼다. 얼마간 단잠을 잔 것 같아 개운했다.
국내서도 이렇게 전면 광고하는 것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혹시 하며 이곳저곳 다른 나라의 광고판은 없는가를 둘러봐도 없는 걸로 봐 삼성이 이 공항청사의 광고를 독점하고 있는 것에 대해 모두 가슴 뿌듯해 하는 눈치였다.
오래 동안 간판을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우리나라의 삼성은 이 나라의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일종의 국력의 상징이고 커다란 자부심이라고 할까 뭐 그런 감정들이 일었다.
인구 약 8백 만 명의 베트남 수도 하노이, 이곳 하늘도 흐려 있어서 생각보다는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27° C 정도니 여행하기 좋은 날씨라고나 할까?
공항 대합실은 마중 나온 사람들로 약간 복잡했다.
우릴 맞는 하노이 여행사 측 가이드가 패킷을 들고 우릴 반겼다.
가이드 주변에 모인 함께 여행할 팀은 부산, 울산, 김해 등지에서 온 인원과 합쳐 모두 18명이었다.
조금 있으니 우리 일행들과 여정을 함께할 리무진 버스가 도착했다.
빨간색의 버스였는데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중고로 보였지만 새 차처럼 굴러다니는 것이 재삼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여행 가방들은 모두 현지인 가이드 두 명이 챙겨 화물고에 실어 주는 서비스를 받고 버스에 오르니 한국인 가이드가 인사를 하며 설명을 해준다.
이름이 외자인 전 창씨는 전두환 전대통령과 같은 항렬의 이름이라고 설명하면서 여행 스케줄에 대해 안내를 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중고차로 들여 온 그대로 베트남의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대형차는 대부분 현대자동차가 주로 많고 모닝, 마티스 등 소형차는 이 나라 국민들 체구에 맞아 많이 수입되어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부언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일행들이 타고 날라 온 비행기도 좌석이 크지 않아 불편했던 것도 다 이 나라 사람들의 체형에 맞게 제작되어서 그렇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바딘광장(호치민 영묘靈廟와 생가, 한 기둥 사원)
4월 17일. 원래 금요일은 이곳이 휴관일이기 때문에 일정 을 바꾸어 첫날 이곳을 관람키로 계획을 수정했다.
<바딘광장>
하노이 관광에서 이 바딘 광장을 빼놓고서는 이야길 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명소라고 했다.
광장을 들어서니 우선 시야부터 확 트였다.
흐린 날씨였지만, 넓은 도심 광장에 가지런하게 잘 정비된 푸른 잔디밭 한 쪽에 우뚝 서있는 호치민 의 영묘靈廟가 처다 보기엔 압도적인 모습이었고, 그 반대편에 국회의사당이라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영묘 주변으로 가까이 걸어가니 영묘의 커다란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금지선 앞에 하얀 제복을 입은 무장 군인들은 영묘를 지키는 경비병이라 했다.
1969년.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정작 그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지만, 이곳 국민들은 그의 영웅적 지도력을 기리기 위해 박제되어 이곳에 안치해 놓고 그를 추앙하고 있다고 한다. 국부國父로서 섬기는 성역인 곳이다.
건물 자체는 북한 김일성의 금수산 궁전, 모택동 궁전 등 공산당 주석들의 영묘를 연상하게 했다.
남부 호치민시에도 시청 광장에 그의 동상이 손을 높이 들고 서있는 걸 본 적이 있었으나 이곳 주석궁에 생가와 영묘, 집무실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주석궁에는 당시 그가 살던 생가와 집무실은 영묘 뒤편에 있는데, 고목들이 울창한 숲 속에 소박한 모습으로 있었다.
공개된 집무실을 들여다보니 큰 권력을 가진 통치자의 사무실이라기에는 매우 검소함을 볼 수 있었다.
집무실과 가까이 있는 생가가 자신에게 과분하다 하여 말년엔 전기 기술자의 집으로 이사를 하여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 안내의 말에 가서는 그가 얼마나 소박하고 애민愛民하였지를 알게 되었다.
호 할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원래 공산당 출신이었지만 통일 된 후 그의 정치 철학은 온통 국민을 위한 정치가 기본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정치 지도자가 한 나라 국민들을 위해 어떻게 통치하여야 하는 것인가를 배우는 곳이기도 됐다.
<일주사원一柱寺院>
광장과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가이드는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망고 파티를 해주어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한 마디로 이 바딘광장은 호치민을 위해 잘 조성된 광장이라는 점과 아직도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많은 국민들이 찾고 있는 국민적 성역이 된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옌뜨국립공원/자이완사원
옌뜨국립공원은 10여 개의 사찰과 수 백 개 의 사리탑이 곳곳에 있는 베트남의 오랜 전통을 지닌 불교성지 라고 한다.
엄숙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옌뜨산은 세 명의 왕이 부처가 되어 산을 지킨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베트남 북부의 명승지 중 하나로서 이 공원을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 우리 일행들은 차창을 살피기에 바쁜 모습들이었다.
어딜 가나 커다란 열대과일 나무인 야자수라던가 바나나 나무가 눈에 자주 띠는 걸 보니 과일을 특히 좋아하는 필자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노이는 대부분 산이 없는 곳이지만 베트남에서 제일 높은 옌뜨산은 하노이와 하롱베이의 중간에 있는 산이다.
이곳에서는 이 공원에 있는 10여 개의 사찰 중 1000년 고찰인 자이완사원 있어서 매우 더욱 영험한 산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도시를 벗어나 산길을 굽이굽이 달리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의 모습은 나무가 그리 울창하지 않아서인지 마치 우리 강원도 어디 산비탈도로를 굽이굽이 달리는 기분이었다.
얼마를 달리다 주차장에 하차, 대기하고 있는 전동차에 옮겨 타고 5분여를 더 올라가야 했다.
이곳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다.
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도보로 4시간 정 도지만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쉽게 오른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천년사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케이블카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모양이 좀 달랐지만, 작고 앙증맞을 정도로 빨간색을 한 예쁜 모양이었다.
카 안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의 모습은 이름 모를 열대 산림들로 빼곡히 들어 차 있어서인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여기도 과일가게가 있었다.
가이드는 한 쪽에 미리 세워 둔 나무 지팡이를 한 사람에게 하나씩 건네준다.
수백 개의 계단이 부담스러우니 잘 이용하고 공용 지팡이이니 버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500여개의 사리탑이 있다는 영험한 사원을 보기 위해서는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숨고르길 하며 계단을 오르니 부처님 사리탑이 먼저 눈에 들어 왔다.
주위에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치성탑에 현지인들이 향을 피워 기돌 하는 모습들이 이채로웠다.
자꾸 더 오를수록 지팡이를 의지하게 되었는데 계단을 오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중국의 그것은 디딤판의 폭이 좁아 불편했는데 이곳은 넓게 만들어져 있어 걷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자이완사원>
경내는 주재하는 스님들은 볼 수 없었으나 참배하는 현지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 일행들은 대충 절간의 부처님을 향해 목례를 하고 다시 계단을 빨리 내려왔다.
하롱베이로 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케이블카에 올라왔던 곳에서 전동차를 5분여를 다시 타고 내려오니 휴게소에는 많은 한국관객들로 북적여서 마치 한국의 관광지 어딜 온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 가는 길목에서는 빨간 아오자이 옷을 입은 남녀 악사가 전통악기로 우리 음악을 자기들 노래보다도 더 잘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점심은 쌀국수 같은 현지식으로 제공되는 식살 맛있게 먹고 나와 이 악사들과 어울려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오전 관광을 마쳤다.
전신마사지
저녁시간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남았으므로 베트남 전통 마사지로 오늘 옌뜨국립공원의 계단을 오른 몸의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숍에 들렀다.
사람마다 다 느낌이 다를 테지만 필자는 1시간 반 코스(팁4불 이상)로 몸의 피로를 풀기에 적당한 강도로 주물러 대니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늘 18일의 관광은 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인 하롱드림 호텔로 들어와 쉬었다.
전통수상인형극
극장 안으로 들어 서니 음악소리가 크 게 들려오고 조명의 색깔부터가 아름답게 휘황찬란했다.
객석은 이미 와있는 관객들로 자리가 대부분 차있어 맨 앞 빈 좌석에 자릴 잡고 앉으니 가이드가 옮기라고 한다.
혹시 물이 튀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인형극은 원래 논두렁에서 즐기던 놀이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물위에서 연기하는 인형들의 모습이 아주 리얼리티하게 만들어져 서민들의 삶을 진솔하고 코믹하게 구성하여 보여주는 수상 인형극인데, 11세기경부터 시작된 아주 오래된 전통 극이라고 했다.
말은 알아듣지 못했으나 인형들이 섬세하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고길 낚는다든가 모를 심는 모습, 물장굴 치는 모습, 용이 하늘로 물을 뿜어 내뱉는 모습 등은 그 연기가 아주 섬세하고 리얼했다.
배우들이 물밑에서 인형을 움직이며 연기한다는 데 그 연출 기술이 또한 놀라울 정도였다.
이 수상극장 옆에는 하롱베이에서 제일 부자라는 개인 저택이 있는데 화려하게 장식해 놓고 수상인형극을 보러 오는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이 극장의 소유주라고 했다.
우리 일행들은 곳곳의 진귀한 보석이나 나무, 분재들, 석조물, 조명기구, 조각품이나 도자기, 고급 가구 등을 보거나, 소파에 앉아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오늘 18일의 관광은 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인 하롱드림 호텔로 들어와 쉬었다.
하롱베이(下龍Bay)
4월19일.
호텔식으로 아침식사 로 배를 채우고 나니 오늘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하롱베이로 출발하는 아침은 버스에 오르는 마음부터 부터 가벼웠다.
이제 대망의 하롱베이를 향해 출발했다.
국내에서 이곳의 그림은 TV를 통해 여러 번 본적이 있었지만 기대가 되었다.
중간 휴게소서 잠시 쉬고 가더라도 하노이서 약 4시간여를 달려가야 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에 가득한 열대과일과 푸르른 벼를 심은 들판 사이로 풀 뜯는 소들의 모습과 어울려 정말 부러울 정도로 넓어 풍요롭게 보였다.
남부에서는 3모작까지 이곳 북부에선 2모작이 가능하다는 쌀농사는 커피와 함께 주요 수출품이라는 점이 이해되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하롱베이(下龍Bay)의 ‘하’는 내려오다, ‘롱’은 용, ‘베이’는 만․항구란 뜻의 합성어라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베트남에 적이 쳐들어왔을 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적을 물리치고 입에서 뱉어낸 여의주가 섬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영화 '인도차이나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고 007영화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단다.
1964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베트남 북부 여행의 백미인 곳이 바로 하롱베이이다.
두 시간 여를 달리다 휴게소에 들렸다.
휴게소에서는 이 지역의 특산물, 즉 커피나 노니 등을 잘 정리해 놓고 팔고 있는데, 온통 한국 관광객들이라 하나도 낯설지 않게 들락거리며 쇼핑을 했다.
한 쪽 코너에 낯익은 한국산 과자들이 전시되어 팔고 있었지만 우리 일행들에겐 별 관심 밖이었다.
차창 밖의 자연이 주는 복 받은 나라의 모습을 감상하며 자다 깨다 하는 동안 하롱베이에 들어왔다.
시골 도시 모습을 한 하롱베이 시내는 한적했다.
오늘 저녁 묵을 호텔로 가는 시내 투어를 하는 동안 눈에 보이는 것은 길옆으로 같은 규격의 건물로 지어진 야간 주점가들, 놀이공원, 한창 건설 중인 건물과 도로 공사 등이 우리 70년 대 개발 붐을 타던 시대에 온 것처럼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가이드는 말했다.
“10년 후에 다시 여길 올 기회가 생긴다면 아마 그땐 잘 모르게 될지 모른다.”고.
하노이와 달리 시내는 관광지치곤 시골이라 그런지 한적한 모습이지만 밤의 야경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하노이처럼 오토바이 행렬도 적었고 사람들도 북적이지 않아 무리 없이 호텔에 여장을 풀고 본격적인 투어를 나갔다.
투어 버스가 선착장 입구 투안차이국재여객 터미널에 도착하자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항구가 그리 크지 않은 곳이지만 온통 작은 소형유람선들로 꽉 찰 정도로 많이 정박해 있는 모습들이 놀라웠다.
이 배들이 거의 한국 관광객들을 싣고 선상투어를 하는 유람선들이라니......,
대기하고 있는 선박들 중에 우리 일행이 타고 투어 할 선박에 오르니 선원인 듯한 아가씨가 우릴 반겨 맞는다.
현지 가이드가 한 사람씩 손을 잡아주며 승선시켜주는 모습들이 매우 친절해 보였다.
배는 서서히 항구를 벗어나면서 먼발치 구름같이 올망졸망 보이는 저 많은 섬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폰으로 인증 샷을 날리면서도 입으로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세계 7대 절경 중 하나인 하롱베이!
해무가 낀 속으로 크고 작은 3000여개의 섬들이 하롱만에 둥 둥 떠있는 그림 같은 풍경들, 바다와 섬의 환상적인 조화. 이 섬들이 파도를 막아주기 때문에 바다임에도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을 따라 수상관광을 즐기게 해준단다.
정말 바다 같은 느낌보다는 어디 호수위에 떠있는 것 같이 조용히 운행되기 때문에 멀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문학을 공부하는 우리 일행 같은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시상詩想이 떠올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줄 연서를 끄적이게 될 정도의 자연경관이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가이드는 이곳은 파도와 갈매기, 바다냄새가 없는 3무지역이라며 설명을 해 준다.
섬이 많아 파도가 없고 섬이 가파르기 때문에 서식지로서 적당하지 맣아 갈매기가 없고 높은 습도 때문에 바다 냄새가 공중으로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설명을 듣고 나니 정말 그랬다. 여느 바다가 아니었다.
필자가 본 첫 인상은 중국의 장가계와 비교되었는데, 장가계의 경관에다 바다를 끼게 한다면 하롱베이 같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물이 없는 장가계 풍경과 바다 위에 솟은 듯이 떠 있는 수많은 하롱베이의 섬들, 어찌 보면 둘 다 석회암이 침식되어 만들어 낸 신의 걸작임이 분명했다.
투어 유람선의 앞뒤를 돌아보며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보일 때마다 가이드는 설명하기에 바빴다.
키스바위, 사자바위, 코끼리 형상의 바위 등 등.
좀 커다란 크루즈 급 선박들이 드나들고 있었는데, 신혼부부들이나 가족단위 여행을 온 사람들이 이용하는 데 편리하도록 배 안에서 숙식을 하며 섬의 곳곳을 본다고 했다.
<항루원Hang Luon>
항루원으로 가기 위해서다.
거기까지 가는 길에 마치 롤러스케이틀 타는 것처럼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선장의 운항술로 인해 고함을 질러 댔더니 목청이 다소 아파왔다.
가이드는 더욱 더 소릴 크게 질러야 한다며 독려했다. 골탕 먹이려는 것은 아닌 듯 늘 상 해온 짓인가 보다.
그래야만 선장이 더 스릴 있게 배를 흔들어 준 다나 어쩐 다나. 어쨌든 입과 목청 운동을 하면서 즐겁게 가는 사이 또 부선교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무동력 목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5분 정도 가는 가까운 거리인데, 이번에는 가이드가 선수에 우뚝 서서 배를 울렁이게 하면서 동굴 속 같은 항루원 입구까지 들어서니 거기 또한 별천지가 나타났다.
바다 가운데 섬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호수가 있는 듯한 모습인데, 만조시에는 입구가 막혀 들어 갈 수 없다고 했다.
여기가 ‘007네버다이’ 영화를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이미 이곳에는 선착한 다른 관광객들이 구경하고 나오며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모습들이 이채로웠다.
특히 자생하는 원숭이-처음 암수 2마리를 입식했으나 지금은 그 수가 많이 늘어났다고 하며 항루원을 ‘원숭이 섬’이라고도 불린다 함-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원내를 돌아보는 느낌은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3천 여 개의 섬을 다 돌아본다는 것은 물리적이나 시간적으로 불가한 일이라 아쉽긴 하지만, 이런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관광의 부를 누리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의 천상의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베이를 벗어났다.
<석회동굴(띠엔꿍Thien cung)>
내부 길이가 약 130미터 정도로 종유석이 만들어낸 하롱베이의 석회동굴이다.
입구가 매우 낮아 키 큰 사람들은 이럴 땐 고갤 숙이고 들어간다고 해서 ‘수그리 관광 코스‘라 불린다 했다.
석주와 석순이 어마어마한 크기였지만, 아기자기한 맛은 없었다. 그것들이 모두 죽어있기 때문이라 그런지 그냥 형상만이 그 옛날 석회동굴이 어마 어마하게 발달된 증표만이 보여 줄 뿐이었다.
규모가 엄청 크고 대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 보아서 그런지 조금은 심쿵했어도 섬에 이런 수중 동굴에 오래 전에 생성을 멈추어 물이 없다는 점은 신기했다.
하롱베이의 여행 중에 점심은 선내식이다.
여기서는 옵션에 따라 차등되는 식사-다금바리 회와 바닷가재, 새우 등-가 제공되었다.
돌아오는 내내 한국식 노래방기기가 설치된 선내에서 가무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티․톰섬에 다다랐다.
<티․톱섬>
전망대에 23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러시아의 우주비행사인 티․톱이 이 섬을 구경하고 나서 너무 아름다워 자길 주라고 했더니 섬은 못주고 대신 그의 이름을 딴 섬으로 명명해줬다는 이 티․톱섬.
그의 요구대로 하롱베이의 많은 섬들 중 유일하게 백사장 해안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줬고, 그의 동상은 아름다운 하롱베이의 모든 섬들을 주시하도록 백사장 입구에 우뚝 서있었다.
힘들게 올라 전망대에서 다시 한 번 아래를 내려다보니 옅은 안개 속에 묻혀 있는 비경의 모습들이 마치 여러 장의 산수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하롱파크>
하롱베이에 있는 아주 유명한 공원인데, 이곳은 옵션에 따라 정해진 곳이라 이곳을 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곳을 관광해야 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2 장의 인증서가 걸려 있다.
건물은 외관적으로 일본의 오사카성 건축양식을 닮았는데, 아마도 일본 사람이 설계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갔지만 알 수는 없었다.
이곳에 올라 모노레일 주행이라든가 여러 가지 놀이기구들을 타고 시간을 보내는 중에 날이 어두워지자 야경을 구경하니 하롱베이의 또 다른 보습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TV에서 보던 대로 아름다운 섬들과 바다의 조화는 하롱베이의 전설대로 신이 아니고선 이런 그림을 어찌 인간이 흉내를 낼 것인가!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고 그냥 아름답다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가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적 자연관광지인 하롱베이, 우리 일행의 절정이다.
이제 하노이로 다시 돌아가면 호안키엠호수가 있는 하노이 구시가지(36거리)와 마사지 서비스를 한 번 더 받고 시내 우뚝 서있는 65층 롯데빌딩 전망대를 둘러보는 것으로 모든 우리들의 관광 일정은 모두 끝난다.
하노이 까지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외길이기 때문에 교통 혼잡이 있었지만, 갈 때 들렀던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는 그냥 하노이로 돌아왔다.
아디오스. 하롱베이!
4월 20일.
호안키엠호수/구시가지36거리
<호안키엠호수還劍湖>
원래 여행 첫날 관광키로 했던 곳이다.
호수가 많기로도 유명한 베트남의 여기 이 호수는 하노이 의 심장부로
전설에 의하면 15세기 여 (黎) 왕조를 세운 레 로이 가 호수에서 건진 검으로 명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베트남을 지켰다고 한다.
전쟁에 승리한 후 보트를 타고 호수를 순회하는 중 황금색 거북이가 호수 아래에서 올라와 검을 물고 돌아갔는데, 이후 거북이가 그 검을 호수의 주인에게 돌려줬다[還劍湖]고 하여 호안끼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호수 중앙에는 13세기 몽골군을 물리친 쩐 홍다오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지만 먼발치서 먼 산 보듯 하고 돌아왔다.
<구시가지 36거리>
가이드 말로는 없는 것 빼곤 다 있고 다 만들 수 있는 그야말로 만물상의 집결지 같은 곳이라 했다.
걸어서 둘러보기는 너무 복잡하여 우리 일행은 전동카를 타고 복잡한 골목을 누비며 수박 겉핥기식 아이 쇼핑하는 것으로 호수와 구 시가지를 관광하였다.
65층 롯데빌딩/전망대
이 건물에는 롯데의 모든 종류의 상 품과 내용들이 집합적으로 입주해 있 는 고층 빌딩이다.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는 하노이 시내 모습은 우리나라 서울 롯데빌딩 전망대서 보는 것과는 그 모습들이 매우 다르게 보였다.
이곳의 모습은 오토바이의 에서 비치는 불빛이 서울의 밤거리 자동차 불빛과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전망대에는 유리바닥을 해 놓고 그곳에서 기념사진들을 찍도록 마련 해놓고 있었다.
전 구간을 야경으로 빙 둘러 본 뒤 이제 부산으로 돌아갈 때 사 갈 선물들을 준비하기 위해 아래층 롯데 몰에 들어가 각자 필요한 선물들을 사고 나와 투어버스에 올랐다.
자, 이제 베트남 하노이의 여행일정은 모두 끝났다.
Epilogue
현지시각 새벽 1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중 버스에서 가이드는 마지막으로,
“잘 협조해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는 인사말에 우리 모두 박수로서 답하며 작별을 아쉬워하며 고마워했다.
필자는 가만히 눈을 감고 나니 일행들과 함께한 3박4일간의 길다하면 긴 하롱베이 문학기행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바다에 떠있는 듯한 아름다운 하롱베이의 수많은 섬들. 가까이서보다는 먼발치서 바라보는 모습들이 더 아름다운 섬들과 섬들 사이로 오가는 수많은 유람선들…….
그밖에 하롱베이이 다양한 모습들이 기억으로 자릴 잡는다. 소화해낸 여행지들을 곱씹으며 여행을 정리했다.
신짜오. 하노이!
여행에서 날씨만큼 영향을 끼치는 일이 없는데, 마침 이번 여행 중에는 날씨가 좋아 한 몫을 해 주었고, 또 중국 음식과 달리 향이 없어 매끼 부담 없이 즐겨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세계에서 오토바이가 가장 많을 것 같은 하노이 시내 거리의 역동적인 모습, 농수산물 등 자연자원이 풍부해 절대로 배 골지 않을 것 같은 나라..........,
필자가 느끼는 베트남 사람들은 확실히 잘 살아보려고 하는 모습들이 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근면성에 자본과 선진 기술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선진 경제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고 느끼고 온 것이다.
필자가 병역시절 베트남 파병을 지원하려다가도 혹시 죽으면 어떠하나 하는 두려운 생각으로 포기했던 그 시절도 회상되었다.
이제는 적성국가가 아닌 상호 이해하면서 함께 잘 살아야한다는 경제적 글로벌시대에 작년 베트남의 경제적 수도인 남쪽 호치민시와 그리고 이번 북쪽 베트남 수도인 하노이시를 돌아보고, 이 나라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 남국 베트남 여행에 의미를 뜻 깊게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 이번 문학기행을 마치고 나면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 여행으로 얻은 추억과 경험들이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잠자며 날아오는 사이 부산국제공항에 도착한다는 멘트에 잠을 깼다. 모두들 긴장이 풀리는 기분으로 여장을 챙겼다.
21일 아침 07시 경이었다.
아무 이상 없이 구경 잘하고 온 여행에 대해 감사해 했다.
대합실에서 여행 가방을 찾아 든 우리 일행들은 무사히 잘 마친 이번 베트남문학여행에 대해 서로 추억하며 다음 여행 때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우리들은 특히 문학을 공부하는 문학인으로서 각자 공부한 장르에 따라 문학적으로 표현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