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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금을 긋고 살 것인가?

이원아 2011. 1. 3. 10:49

 

 

 

 

            “어떻게 금을 긋고 사느냐하는 것은 순전히 자기 판단에 의하는 일이긴 해도 어떤 사회든 보편타당한 윤리적 규범의 선이 있기 마련이므로 이 선을 넘을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새로 금을 글 것인가 하는 부분에 가서는 행위자行爲者가 분별하여야 할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2010.12.30

 

 

 

 

 

 

  우리 사는 삶에서는 그냥 대충 사는 것 같 아도 자신도 모르게 정말 많은 수의 금을 긋고 사는 것 같다. ‘금을 긋다.’는 말 은 어떠한 사안事案을 분명히 하기위해 긋는 유무형의 선線을 말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바와 같이 나라 사이에는 국경선이 있고 바다에는 수평선, 바다와 육지의 경계면엔 해안선海岸線이 있으며, 뭍에서는 지평선이 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아무렇게나 날아가는 것 같아도 비행기만이 다니는 항로航路라는 선이 있고 바다에 떠다니는 배도 뱃길 즉 항로라는 선을 따라 운항되는 것이다.

  '금이 가다.'는 말도 있다. 벽이 갈라지고 술잔 등이 깨지거나 둘 사이에 관계가 악화되면 금이 간다고 말한다. 또 전쟁 중에는 피아간彼我間에 전선이라는 금이 그어져있고 이 선을 사이에 두고 생과 사를 위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한다.

  금을 어떻게 긋고 사느냐에 따라 줄이 되기도 하고 윤리와 법이 되기도 하며 담이 되어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고 금이 가면 되돌릴 수 없는 이념을 말하기도 한다. 또 권력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힘과 약속이 되기도 된다.

  옛날 동네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대문이나 출입문 쪽에 금줄을 처 놓는 일이었다. 새로 아기가 태어났다는 것을 동네방네 알리고 함부로 출입하여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제한구역을 표시해 아이의 안전을 기리고자 했던 조상들의 지혜의 줄이었다.  또 커다란 당목에도 금줄을 두르고 의연하게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새로 담그는 된장독 같은 부정不淨을 타면 안 된다는 곳에는 어김없이 금줄이 처 있지만, 그깟 달랑 새끼 몇 발의 줄이라 해도 안과 밖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주술적인 의미의 역할을 충분히 했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나 지켜야 할 선도 많다.

  어릴 적 친구들과 놀다가 불리해 지면 얼른 금을 그어 놓고 “이 선을 넘어 오면 내 새끼!”하면 그 선을 넘지 않고 해제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던 친구들의 순진한 마음이 있었다. 이 선은 친구들 사이에 지켜지는 약속이었다.

  사귀고 있는 청춘남녀가 어떠하다 혼전에 한 방에 들면서 여자가 하는 말이 꼭 있다. “오빠! 여기 이 선을 절대 넘어 오지 마. 알았지?” 몇 번을 다짐시키며 요위에다 손끝으로 쭉 그으며 하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금이라도 남자가 넘어야 할 선과 여자가 지켜야 할 금이 극명하게 구분된다. 이런 선은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선일지도 모른다.   이 선은 여자의 내숭이거나 어느 정도 남자 친구의 인내심을 가늠할 수 있겠지만, 넘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 연인사이의 애정행각 수순일지라도 흑심을 품고 잘 못 넘었다간 금이 가 거래가 끊길 수도 있다.

  선 긋기를 잘해야 하는 공부가 있다.

  지금이야 모든 선들이 자동으로 그려지는 자동제도기법 프로그램(Computer-Aided Design)에 의한 기술이 개발, 상용화常用化되어 완벽한 건축 설계도를 그려내는가 하면, 설계도가 완성되기 전이라도 3D 영상으로 고객 앞에서 완공 후의 모습을 직접 시연해 주는 시대가 되었지만, 내가 건축을 공부하던 때 처음 공부했던 것이 아마도 선 긋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하얀 겐트지에 굵기별로 연필을 다듬어 자를 대지 않고 똑바로 일정하게 금을 긋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건축과에서 이 후리핸드로 그리는 선긋기는 생소하기도 했지만, 처음엔 정말 자를 대지 않고 바르게 긋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학기 정도 열심히 연습하고 나면 누가 봐도 마치 자를 대고 근 선들처럼 바르고 정연하게 할 수 있다. 선 긋기는 건축제도建築製圖의 가장 기본에 속하는 과정이고 이를 기초하여 구상을 드로잉하고 건축설계를 완성하는 기술로 연결된다.

  하루 종일 서서 건축제도를 하는 시간에는 과제를 완성해 제출하면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요령껏 쉬어가면서 공부를 하는데, 학생들이라는 것이 자율로 하는 공부가 지루하기 때문에 몰래 나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친구도 있고, 장기가 있는 친구들이 앞에 나가 끼도 발휘하는 시간이며, 다가 올 소풍이나 행사 등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를 하기 위해 갑론을박甲論乙駁하는 시간이라 늘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 학교 공부의 추억이 많이 남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건축가는 선을 경험에 긋는다고 한다. 건축설계는 선을 연결하여 공간空間을 만드는 과정이며 따라서 함부로 긋거나 실수로 그은 선은 그 결과에 있어서 엄청난 결과물로 나타나기 때문에 경험에 의하지 않는 선을 글 때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일반인들이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고뇌의 작업을 거치는 것이다.

  줄을 타고 노는 사람들이 있다. 남사당패에서 줄을 타는 사람. 즉, 어름사니들이다. 보통 약 2.5m의 높이로 외줄을 매 놓고 부채 하나로 균형을 잡아가며 외줄 위에서 온갖 묘기를 부리며 노는 광대들이다.

대개는 바닥에 앉아 장단과 추임새를 하며 함께 노는 고수鼓手와 한 패를 이루는데, 가장 흥미 있게 관람했던 줄타기놀이는 ‘왕의 남자’에서 세계줄타기대회 최고기록 보유자인 명인 권원태 선생에게 직접 사사私事받은 배우 감우성은 실제 촬영에서 5미터 상공에 매달린 외줄 위에서 능숙하게 걷는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준 때였고, 이 영화가 사극史劇이면서도 현대인들이 가장 고민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省察이라는 화두를 던졌던 2005년도의 작품에서 왕을 능멸하려 했다는 이유로 어름사니를 죽이려는 연산군의 화살을 피해 뛰어 오르는 광대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다.

  지켜져야 할 선이지만 반드시 지워져야 할 선이 있다.

  우리 민족에게 그어진 가장 큰 선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남과 북에 그어진 선-NLL이던, 38선이던, DMZ던-을 그어 논지 어언 60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의 부단한 평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 한 발짝도 지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요즈음은 그 선의 두께가 더 커진 듯한 느낌이다. 최근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피폭사건 등 끊임없는 크고 작은 북의 도발로 인해 상처의 골이 깊어진 대한민국은 그 선을 지키기에 급급하고 평화적으로는 또 그 선을 지우기 위한 국력에 쓰는 에너지는 국운國運이 달려있을 만큼 국가안보의 최대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은 이념도 경계를 지운다.

  민주와 공산이념으로 양분되어 이념의 벽을 허물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고 통일을 이루기 위한 남북간의 노력도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겹쳐 더욱 힘들게 된 상황같이 보인다.

  얼마 전 모 목사 한 사람이 이 선을 불법으로 넘었다하여 구속된 사건이 있었지만, 이 사람은 아마 새가 되어 자유롭게 넘나들고 싶은 높은 장벽이었을 것이다.

  2007년. 세계의 이목耳目이 집중된 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차 북을 방문하는 길에 길바닥에 임시로 표시해 그어진 노란색의 국경 아닌 국경선을 국가 원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걸어서 넘는 장면은 분단국가의 비극을 보는 듯해 국민 모두는 긴장된 채 숨죽이며 장도壯途를 바랬었다. 까짓 그 선 하나 넘는데 절차도 많고 말도 많게 모든 과정을 힘들게 마치고 넘어야 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선의 두께를 실감하는 참말로 비극이었다.

  옛날 교통이 불편했던 그 시절엔 산을 두고 골과 강을 두고 말씨와 생활풍습이 달랐는데 남과 북처럼 선을 사이에 두고 이념은 물론 말도 달라 보이지 않는 선을 두고도 변하고 있으니 선은 선이 아닌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은 덩샤오핑(1904-1997. 중국정치가)이 1970년대 말부터 취한 중국의 경제정책이다. 검은 고양이던 흰 고양이던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이론인데, 쥐만 잡을 때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요즈음 흑백논리로만 단정해 버리는 사회적 이념이 곳곳에서 불거지는 걸 볼 수 있다. 태화위정太和爲政하지 않고 나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당동벌이黨同伐異하면서 따돌리고 뜻이 같다고 뭉치는 선을 그어 놓고 편을 갈라 내부에서도 자중지란하거나 지도자 없이 쩔쩔매는 오합지졸烏合之卒들처럼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 꼴불견이다. 내부에서 지켜야 할 선이 금이 가면 조직이 무너질 수 있다.

  자기에게 관심 좀 주라고 떼거리로 뭉쳐 다니며 정치인은 막말을 해대고 그에 따라 사사건건事事件件 시비를 거는 정치인들을 볼 때,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그들의 행동거지를 보면서 이 또한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선을 넘은 행동들이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슨 낯으로 교육을 말할 것인가? 참으로 한심한 작태들이다.

  사람 사는 곳에서 나와 연결되어 있는 선을 끊고 살 수는 없다. 나와 선이 어떻게 그어 져 있느냐에 따라 관계는 결정될 것이고 그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한 금을 새로 그을 때는 확실하게 그어야 할 것이다. 함부로 긋는 선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남이 함부로 그어 놓은 선도 넘지 말아야 한다.

  어느 한 쪽에 편향偏向된 생각으로 쏠리면 그 속에는 새로운 정보와 지혜가 접근하기 힘들고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처럼 사슴만 쫒으려는 편견 때문에 숲과 나무를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열릴 수 없으며 군맹무상群盲撫象이라. 맹인들이 코끼리를 만져 보았자 자기가 만져 본 부분만 알고 이야기 할 것이니 코끼리의 온 모습을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남북간에 그어져 있는 선들은 하루 빨리 지워져야 하겠지만, 허물없이 지내던 연인사인데 내용도 모른 채 ‘이제부터 선을 긋겠다.’고 문자 메시지가 떴다면 그 선은 금이 가 절연絶緣을 의미한다. 더 이상 선을 이으려하지 말아야 한다. 설사 억지로 이어졌다 해도 원래의 선과 같이 매끄러운 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남녀관계에 맺어진 선에서 어정쩡한 선은 긋지 말아야 한다. 관계만 유지하고 속정을 주지 않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 매너나 배려가 없는 선은 하루 빨리 끊는 게 좋다.

  친구 사이의 선은 항상 유지관리를 잘해야 한다. 마치 산길과 같아서 찾아주지 않으면 잡초만 우거진다.

  ‘도시都市는 선이다.’라는 말이 있다.

  도시는 도로라는 선을 따라 기획되고 건설되며 도로를 따라 발전한다. 다른 신도시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해운대에는 신시가지가 있다.  당시 졸속한 선을 그어 개발되었기 때문에 지금 인구만 밀집되고 제대로 된 시민 휴게 공간 하나 없는 숨 막히는 밀집형 도시로 발전되어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애초에 잘못 그어진 선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져 있음은 분명하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지만, 개선되어야 할 도시의 선이 또 있다. 도시마다 쏟아 붓듯 건설되는 고층 아파트 때문에 Sky Line은 사라진지 오래고 길을 따라 무분별無分別하게 늘어 선 전봇대와 전기, 통신 등의 선들을 정비해야 한다. 도심의 미관과 안전을 해치는 가장 보기 싫은 모습들이다.

  줄도 잘 대야 한다. 나의 허물을 벗기 위해 줄을 댔다가 그것이 화근禍根이 되어 오히려 대지 않은 경우보다 못한 경우나 승진을 위해 청탁을 했다가 그로 인해 오히려 좌천左遷된 경우나 사고수습을 위해 줄을 댔다고 안심하다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업무방해로 징계를 당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금을 긋다.’는 말은 이와 같이 상황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갖는 함축성含蓄性있는 말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금을 긋고 사느냐하는 것은 순전히 자기 판단에 의하는 일이긴 해도 어떤 사회든 보편타당한 윤리적 규범의 선이 있기 마련이므로 이 선을 넘을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새로 금을 글 것인가 하는 부분에 가서는 행위자行爲者가 분별하여야 할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