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수필,시

[스크랩] ◇ 아버지로 산다는 것

이원아 2013. 4. 30. 11:55

 

◇ 아버지로 산다는 것 

 

 

 

                               “이제부터라도 아비의 등 뒤에 박아 놓은 빨대를 과감히 빼버리고 독립하여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줄 아는 자식들이 많아지게 돼 건강한 가정, 건전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풍조가 이루어진다면 자본주의의 병폐에서 생긴 아버지를 홀대忽待하는 것에서부터 벗어나는 길이 ........,”                                                         2013.04.18

 

  <아버지가 가는 길을 아들이 자꾸 잡아 댕기며 무엇을 요구하는 걸까?>

 

 

    2013년 4월 18일, 오늘 아침, 소설가 박범신(1946년 전북 익산 출생. 소설가. 아동문학가. 교수)은 이 시대의 아버지에 대해 많을 것을 시사하는 내용을 가지고 KBS아침마당 프로에 출연해 강의를 한 시간 정도 했는데, 출근 전 꼭 이 프로를 애청愛聽하는 한 청취자로서, 또한 동시대의 아버지로서 마음 새겨야 할 내용들이 많아 공감共感하는 바도 많았지만, 어쩐지 강의를 듣는 내내 씁쓸한 마음도 함께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은교’라는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소설, ‘소금’이라는 책 내용을 소개하면서 아버지의 등에 빨대를 박고 사는 젊은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현실과 오로지 가정을 위해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돈만 벌어다 주었던 아버지가 이제 늙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 바를 모르고 구석방에 쳐 박혀 나오지 않고 나날을 무료하게 보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이야긴데, 이제 남성들도 90세를 산다고 보면 60의 나이에 정년停年 후 앞으로 30여년을 그렇게 보내야하는 아버지들이 많다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아버지들이 퇴직을 하고 나면 그 가족들이 먼저 감싸 주고 위로慰勞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무능한 아버지요, 남편으로 취급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자본주의의 병폐가 가정에까지 끼친 영향이 크다는 현실 지적이었다. 이제 젊은이들이 아버지에게 여생餘生을 보람 있고 활기차게 사시는 방법을 알려주어 새롭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함께 공유共有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에 가서는 정말 공감이 가는 그 다운 멘트였다.

아버지의 등에 붙어 의지하려고만 하며 무력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자식들이 있다면 이제는 빨리 빨대를 뽑고 아버지를 가정에서부터 인정받으며 노후를 살 수 있도록 되돌아볼 시점에 왔다는 것이다.

 

  또 아버지들도 그 많은 날들을 주눅 들듯이 움츠려 살지만 말고 보다 적극적인 생활을 배우거나 익혀서 가족들이나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소금’이라는 소설-[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家出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자본의 폭력적인 구조가 그와 그의 가족 사이에서 근원적인 화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 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아버지들에게 돈만이 아닌 정신적으로도 결코 편하지 않은 삶을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정말 가정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젊어서는 내가 버는 돈이 내 돈이요, 늙어서는 내가 쓰는 돈이 내 돈’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돈을 쓸 줄 모르고 살아왔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아니 내가 쓸 돈이 없어서일 것인지도 모른다. 돈이 있다한들 자식들이 성장해도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하려 하지 않고 아버지 등에 붙어 빨대질만 하고 있는 자식들에게 온 삶을 고스란히 내주고 살아왔기 때문에 정작 나이 들어 쓰려고 해도 내가 쓸 돈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나야 어떻게 되든 가족을 잘 부양扶養해야 된다는 의무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야말로 헌신해 온 삶이었다는 걸 인정해 주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오히려 불현 듯 정년을 맞고 가정에 들어 앉아 수입 없이 세 끼 밥을 얻어먹는 삼식이 신세가 됐으니 오히려 아내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현실에 맞닥뜨릴 때 어깨를 짓누르는 무력감을 자식들이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내가 아는 지인知人은 고위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할 당시 퇴직금을 연금年金으로 하지 않고 일시금一時金으로 수령하였다가 자식들에게 시나브로 흘러가는 바람에 운신運身의 폭이 좁아진 채로 지내고 있는데, 일테면 경조사에도 잘 나오지 못할 정도로 소외된 생활을 하고 있어서 화려했던 옛날의 직함만큼이나 이름값을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외로워지는 게 사실이다. 자식들도 의례적儀禮的으로만 대해 줄뿐 부모의 속마음까지는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노릇이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의지하려고만 하지 이런 부모에 대해 그 입장을 쉽게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이럴수록 경조사 같은 외부행사에 얼굴을 내밀어 지난 시절 동료들과 옛정을 나누며 근황을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서 존재감存在感이 솟아나고 소외됨으로부터 생기는 외로움을 떨쳐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함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본인이 더욱 활력 있는 관계개선에 나서서 앞서가는 삶에 동승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늘그막에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며 점 점 더 관계가 소원해 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물론 지갑이 비어 있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간만에 만나자는 요청에 대해 거절하기 시작하면 결국 그와의 관계는 단절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두 번 부킹을 거절하면 다시는 그에게 골프 약속을 하지 않게 되는 이치와 같은 맥락脈絡이다.

 

  그가 먼저 나에게 프러포즈를 했을 때는 그가 나를 그리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상대를 먼저 이해하게 되면 그의 부름에 얼른 나가주는 등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야기가 빗나간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야기 하자면 아버지의 위상을 가정에서부터 치켜세워 주지 않으면 그가 밖에 나와서도 주눅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빨대로 빨아 먹을 때만 아버지가 아니고, 가장家長이 아니며 경제력 없고 힘없는 아버지일지라도 집안의 어른으로서 대접해 주지 않으면 다른 쪽에서 해방구를 찾으려 한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집을 나와 같은 처지의 부류에 섞여 공원을 배회하면서 동질감으로 속마음을 채우려 들고, 노숙자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백년해로百年偕老니 해로동혈偕老同穴이니 하는 것은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절, 부부로 연을 맺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같이 하얗게 되도록 살다가 죽을 때는 함께 묻히라고 하는 옛 말씀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장수시대에도 이 말들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경제력이 없다고 해서 무능하다고 소외시한다면 해로는커녕 어디 가서 당장 의지할 곳조차도 없게 된다.

안에서부터 가족들이 잘 대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서 가정과 사회의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밖에서는 아무도 해답을 주지 못한다. 밖에서는 나와 경쟁할 쟁쟁한 상대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시 추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좌절하게 되고 궁극에 가서는 살자가 아닌 자살 같은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노후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 온 이 시대 아버지들이 초상인 것이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들이 주도主導되는 사회가 된 요즘, 나도 남자로서 부권夫權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상대적으로 아버지들의 위상이 땅에 떨어 질만큼 안팎으로 도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아버지들이 설 곳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의견을 같이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50대 이상의 재혼율도 높아졌다하지만, 비교적 신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결혼 4년차의 이혼율보다 황혼 이혼율이 처음으로 앞질렀다고 하는 보도가 있는 걸 보면, 이 시대를 사는 가정의 불안 정도를 넘어 아예 무너지고 있다는 감마저 드는 것은 나만의 사유思惟일까?

이 시대는 가장이 혼자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扶養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안팎으로 맞벌이를 열심히 해도 아이들 교육비다 뭐다 하다보면 우선 경제적으로 팍팍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생활이 된 시대이다.

 

  지금 거리에 나와 방황彷徨하고 있는 아버지들도 나름대로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던 듬직한 아버지요 남편들이었을 것이다. 가장이라는 명목으로 그 무거운 등짐을 혼자 짊어지고 살아왔던 우리 아버지들! 퇴직 후까지도 뼈골을 자식들에게 다 빼앗기고 쭈그러진 몰골로 구석방에서 주눅 들며 움츠리고 있는 아버지들을 가정에서조차 대접을 해주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 아버지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많은 날들이 막막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존재감 없이 늙어 간다는 세월이 얼마나 초라하고 지루하게 살 것인가? 고전적인 생각인지 몰라도 산업사회가 된 지금의 가정이라도 농경사회의 가장과 같은 리더는 필요한 것이고 그 리더를 중심으로 목표하고자 하는 꿈을 이루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멀리 가려면 누구와 함께 가라는 말과 같이 의기소침한 아버지와 함께 그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길이 가정의 행복을 추구해 가는 먼 길을 함께 가는 방법일 수도 있다. 작가의 말과 같이 이제부터라도 아비의 등 뒤에 박아 놓은 빨대를 과감히 빼버리고 독립하여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줄 아는 자식들이 많아지게 돼 건강한 가정, 건전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풍조가 이루어진다면 자본주의의 병폐에서 생긴 아버지를 홀대忽待하는 것에서부터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아버지들이여!

지금껏 어떻게 살아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퇴직 후의 삶이 점점 길어지는 세상일수록 남은 인생 주눅 들지 말고 자신 있게 살아가야할 자신감自信感을 갖고 사는 일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자기 자신을 굳게 믿는 신념信念이야말로 나만이 가지는 고유한 힘이며 내가 살아있다고 하는 존재의 가치가 있는 의미 있는 사유이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강의를 계속 시청하고 있으니 나도 옛 아버지와의 서먹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울컥 가슴이 먹먹해 진다. 1968년, 제4차 대통령하사특별장학금 전달식에 당신은 남루襤褸한 차림으로는 극구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하시어 당혹케 하시더니 흰 고무신을 신고 꾀죄죄한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신 채로 학교를 어렵게 방문해 주셨던 나의 아버지, 나를 보자 멋쩍은 얼굴로 미솔 띄며 “큰 맘 먹고 왔다.”며 처다 보시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창피하게 생각하여 몸 둘 바를 모르고 대충 기념촬영을 마쳤던 나의 어리석음.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몰라도 너무 몰랐었다는 생각이 들고, 생전에 진즉 아버지 앞에 용서를 빌었어야 했었는데 하는 자책감이......,

7남매 자식들의 버팀목이 돼주시던 아버지는 다년 간 중풍을 앓다가 오래 전에 유명幽明을 달리하셨고, 이제 나도 늙어 아버지에 대한 노심老心만 애틋하게 앞서니 오늘 따라 강의를 듣는 내내 아버지를 보고 싶은 그리움과 함께 송구스런 마음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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