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하면 지는 것
“부러움을 긍정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내가 목표로 하는 상황이나 상대를 대할 때, 그 같은 생각을 가짐으로써 자신이 더욱 노력하여서 그 꿈을 이루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부러움을 빌미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났으니 부러움을 이기기 위한 동기부여動機附輿가 되는 것이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게.........................,” 2013.05.09
이 나이까지 살아오는 중에 가장 부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세무완복世無完福이라 했으니 나에게 부러웠 든 점은 다른 쪽에서 그만큼 남에게 없는 복을 누리고 살아왔지 않은가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뒤돌아보면 여러 면에서 부러움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미련이 남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첫째가 부지런한 여성을 보면 정말 부럽다.
주변에서 아주 근면한 여성들의 삶을 보고 있으면 공연히 부럽고 존경심이 생긴다. 남편을 위해 참으로 헌신적으로 존경하며 활기차게 살고 있는 다른 부인의 부지런한 행동거지를 보고 있으면 아내와 비교되는 것이 사실이고, 솔직히 말해 저 여자처럼 부지런한 여자와 한 번 살아봤으면 하는 부러운 생각을 갖는 때가 많으니 상대적으로 아내에 대한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조강지처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이라는 말은 술지게미나 쌀겨를 먹고 함께 살아온 아내는 쫒아 내서는 안 된다는 옛말인데, 이 말에는 한 가지 전제하는 것이 있다.
즉, 먹을거리가 없어 하잘 것 없는 술지게미나 쌀겨 같은 것들을 먹으며 살아준 아내, 즉 어려운 생활을 함께한 아내는 쫒아내지 말고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인데, 그런 여자를 누가 쫒아내려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요즘에는 이 말이 맞는 말만이 아니라는 게 나의 사유思惟이다. 정말 누가 나보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이상한 남자라고 말할지 몰라도 거꾸로 말하면 배부르고 등 따시게 함께 산 아내는 좆아 내도 상관없다(?)는 말도 된다고 억지 해석을 하고픈 것이다. 왜냐하면 함께 고생한 아내는 쫒아내지 말라고 했으니 고생 안하고 함께 산 아내는 쫒아내도 된다는 억설臆說이 성립되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냐하면 남편이 정년이후 수입원이 없으면 아내가 그런 남편을 위해 위로는 물론 뭣인가 해보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득달하여 밖으로 내 모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히려 남편을 하당下堂시키는 형국이다. 어디 지아비만 가족을 부양할 의무가 있다는 법은 어느 나라 법인가? 농경사회農耕社會였던 필자의 유년 시절만 해도 부부가 함께 들에 나가 그 어렵고 힘든 일을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있었다.
현모양처賢母良妻라고 해서 아내는 집안에서 살림 잘하는 엄마요 아내 노릇을 잘 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에는 이것이 통했을지 몰라도 요즘 산업시대에 남자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 참 잘못된 생각이다. 얼마가 됐던 수 십 년을 벌어다 주는 돈으로 호의호식好衣好食은 못했어도 최소한 배곯고 궁핍한 생활은 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여유를 누리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은 않고 당장 생활의 불만을 남편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여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데서 불공평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적절한 예가 되는지 잘 모르겠으나 근 40년 가까이 되는 때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처음 나가보니 자연스럽게 여 동창들의 얼굴 모습에 눈이 갔는데, 그들의 얼굴에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걸 보고는 얼굴은 그 사람의 건강상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살아온 삶의 흔적들이 그 얼굴에 그대로 보이는 것이었다.
수 십 년 전에 기억하고 있는 어릴 적 모습은 다 어디가고 삶에 찌든 얼굴과 함께 오버랩 되면서 살아온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이해하는 모임이 되어서 나름대로는 의미를 두었던 동창회가 되었다.
부언附言하자면 공직자나 은행원 같은 월급쟁이를 남편으로 둔 친구들의 얼굴은 상대적으로 주름살이 적고 피부도 곱게 늙어 가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그 삶의 무난無難함의 정도에 따라 깊게 패인 얼굴들로 변해있어서 같은 또래 연륜의 할머니들이지만 생활에 대한 살아 온 이야기는 얼굴 주름의 깊이만큼이나 진솔했었다.
내가 왜 이 대목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처음부터 부부가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서로가 부양하겠다는 책임의식 아래 함께 고생해온 가정의 부인들은 남편의 수입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않는데 반해, 매달 기계와 같이 월급을 통장으로 꼬박꼬박 내려 받아써온 아내들은 통장의 잔고에 비례해서 위기의식을 느끼며 돈 벌어 오라고 남편의 등을 밖으로 돌려 세우려 하는데서 문제가 발생된다.
그것이 단순히 보수가 적어도 소일消日 삼아 일하는 의미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으나 아내의 씀씀이를 충족하기 위한 등 떠밀림이라면 당하는 쪽에서의 심리적 갈등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못해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아내들의 속성이란 좀처럼 편안해 지려고 하는 남편들을 그저 가만두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횟집 주인은 수족관에 상어를 다른 고기와 함께 넣는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다른 물고기들은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긴장하여 오래 산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 사는 물고기는 주인이나 좋아할지 몰라도 상어와 함께 하고 있는 다른 물고기들은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일일까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땅한 일거리라고 골라서 할 수도 없는 일이니 더욱 더 하기 싫고 짜증이 날 것이다. 왕년에 잘 나가던 생각을 하면 더욱 초라해 지는 자격지심自激之心이 일게 마련이니 한 마디로 죽을 맛일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카피 말대로 여성들도 이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요즘시대에 가정의 문제를 남편의 등짐에만 지우지 말고 그가 좀 쉴 수 있도록 아내의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가정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예부터 수신修身은 개인의 역량에 따른다 하더라도 제가齊家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 했다. 이를 이루지 못하면 치국治國이니 평천하平天下니 하는 말은 공연불이 되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제가는커녕 안 쫓겨나면 다행인 세상이 되었다.
부권夫權이나 가부장家父長의 권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생각할 필요 없이 아내 쪽에서도 여권女權을 이용해 부지런을 좀 떨어서 열심히 일해 준 가부장의 어깨를 좀 가볍게 해주어 그가 기피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자는 말을 하고픈 것이다. 정말 열심히 사는 여성들을 볼 때마다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보다 못함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남편의 무능함을 탓하며 편안함에 길들여진 부류의 여성들이 일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경멸하고픈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필자도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하면 서 자랐음에도 다른 것은 다 차제하고서라도 돈 버는 일에 유독 무관심했었다. 생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억지 핑계를 대보지만, 경제적으로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하는 부러움은 아직도 남는다. 이제 필자도 망칠望七의 나이가 돼 노인이 돼가니 지난날 내가 직접 챙기지 못한 잘못을 후회해 본들 다 지나간 일인데, 어려웠던 공직자시절이었지만, 살림하는 아내 쪽에서 좀 더 노후대비를 생각하는 지혜를 갖고 대비해 줬더라면 하는 아쉬움만 남는 것이다.
둘째는 목표를 갖고 도전하는 그 정신이 부럽다.
즉, 열심히 자기 개발을 하는 아들놈의 도전정신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아들 자랑 많이 하면 팔불출八不出이라고 했지만 이 기회에 아들을 격려해 주고 싶다. 손자가 작년에 중학교에 들어갔으니 아들이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들어 간지가 어언 13 년째가 되는가보다.
부산의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뜻하는 바가 있어 미국에 들어가 박사과정을 마치고 싶다고 했다.
결혼까지 했던 신혼시절, 손에 가진 것도 없는 데 나 같으면 언감생심焉敢生心 낯설고 물 설은 외국에서 공부할 생각을 꿈도 못 꾸었을 일인데도 무슨 배짱으로 그런 결정을 하고 제 와이프와 아이를 데리고 떠났는지는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세월이 그만큼 흘러갔다.
필자가 상급학교로 진학하여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망에 부모님 몰래 시험을 치르기 위해 가출을 시도하지 않았으면 오늘의 내가 없었던 때와 다르긴 해도 타국으로 가서 큰 꿈을 갖고 잘 살고 있는 아들놈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
미국의 조지아 주에 살 때 그 주에서 네 번째로 빌딩에너지관련 자격을 취득했을 당시까지만 해도 아들놈이 큰일을 했구나 하면서도 과소평가過小評價했었다. 그러더니 작년에 근 7년여를 걸쳐 미국의 건축사면허를 따내 공부의 어려움을 익히 알고 경험한 바 있는 나로서는 “우리 아들 장하다.”고 한 말밖에 아비로써 축하해 줄 말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기술사에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바쁘시더라도 모교에 가서 학부, 석사, 박사과정의 성적 증명서와 졸업증명서를 발급해 학교장 명의로 보내주시라.”는 이메일 연락이 왔다. 캠퍼스를 찾아 들어서니 마침 축제기간인지라 온통 여기저기서 체육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함성이 들리고, 곳곳에서 발랄한 젊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녀 축제를 즐기는 분위로 넘쳐나 마치 나도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듯 했다.
본부의 민원실에 들러 모든 서류를 발급받아 즉시 특급우편으로 보내고 나니 자못 흥분되기까지 하는 기분이 들면서 무얼 보나 이 아비보다 더 낫다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해 교정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젊음은 무얼 목표로 하고 그걸 해 내려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차근차근 제 목표를 향해 자기 스펙을 쌓아 경쟁하며 타국他國에서 잘 살아보려고 하는 노력과 도전정신이 부러운 것이고 한 편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왕년에 건축사 자격을 얻기 위해 그야말로 열심히 노력한 끝에 목적은 이뤘으나 건축시공기술사는 단 한번 도전 했다가 중도에 포기했던 생각이 났다. 서울 가서 하루 종일 시험을 치러야 하는 때, 손가락이 부어올라 도저히 글씨를 쓸 수 없는 상황이라 3교시 째부터는 그만 시험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 왔었다. 굳이 핑계가 있다면 평생 그렇게 볼펜을 잡고 쉬지 않고 오랜 시간 글씨를 써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부어 오른 손가락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실은 부실한 준비가 원인이었다.
그런 후 지금까지 항상 마음속에 그때 그 시험을 포기했던 일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는데, 아들이 나의 이런 꿈을 알기라도 하듯 도전해 보겠다고 하니 나의 꿈은 아들을 통해서 기필코 이루어 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미국의 시험제도에 맞춰 공부를 해야 하는 아들놈에게도 이 말은 통하는 말이다. 영어로 된 기술서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으니 열심히 노력하는 아들놈의 목표가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이 아비는 그에게 격려를 보내는 것이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 했는데 아비보다 훌륭한 아들놈의 도전이니 부러워도 당연히 아비가 져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장한 내 아들, 파이팅!
셋째 공무원으로서 고위직에 도전해 보지도 못하고 공직을 물러난 점은 정말로 아쉬우며 높이 올라간 동료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동료들이 나보다 높게 올라가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내심 부글거리며 부러워했던 것이다.
직위에 걸맞지 않은 것 같은데, 유난히 출세(?)했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꼭 있게 마련이어서 어떤 경우는 그런 사람 때문에 조직에서 물의物議를 일으키는 바람에 직장이나 기관의 기강을 망치게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데 한직의 자리에 보직시켰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일수록 직원들을 하대下待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사람이 나보다 윗사람이니 불평은 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조직의 생태인 것이다.
공무원 재직시에는 근본적으로 건축직의 고위자리가 없는 것이 승진할 기회가 적어진 원인이기도 했었고, 그나마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승진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술고시를 패스한 서울대학교 출신 젊은 사무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보임補任되기 때문에 나로서는 실망이 컸지만 역부족이었다.
관운官運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누구는 쉽게 운이 따르고 누구는 찾아 온 운을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응시 자격이 되자마자 상위 직위에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여러 차례 기회를 줬어도 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업무능력과 상관없이 말이다.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 치면서 기회를 엿보며 공부를 하다가도 응시조차 할 기회가 없으니 그럴 때마다 실망만 늘어 갔었고 전직이나 이직移職을 고려해 보기도 했었다. 가장 존심 상하는 일은 동료가 먼저 상위 직에 오르는 것은 그런대로 참고 지낼 수 있었지만 나보다 젊은 동료가 먼저 상위 직에 올라 거드름 피는 꼴은 속에서 천불이 났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상위 직에 오르기 위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음을 불만이나 하기보다는 건축인의 꽃이라고 하는 건축사 자격시험을 따내 승진하지 못함에 대한 보상을 얻기 위해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주로 저녁 시간대를 이용해 남몰래 틈틈이 공부를 했다.
나이 들어 하는 공부라 힘이 들었지만 뭔가 보여 줘야겠다는 일념으로 약 2년여를 열심히 공부해 결국 자격을 얻고 나니 한층 올라간 나 개인의 스펙이 자랑스러웠다.
국가가 인정하는 공인자격으로 나의 실력을 인정받고 나니 많은 동료 선배들로부터 격려가 있었지만, 그래도 승진에 대한 미련은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던 차 새로 생긴 컨테이너부두 관련 국영기업의 간부로 자리를 옮기니 공직의 위치에서 한 단계 내려간 기관에서의 근무는 공직으로부터 벗어난 해방감 때문이라 그런지 한결 마음이 편했다.
한창 중동 붐이 일 때에 이직의 유혹도 여러 번 있었지만 공직을 천직으로 알고 한 자리에서 승진하면서 꿈을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근근부생僅僅扶生 해야만 했던 공무원생활에서의 고위직에 오르고 싶었던 꿈은 내 실력과 상관없이 무산되었으니 지금까지도 아쉬움이 남는다.
가진 재산은 물론 줄도 백도 하나 없고, 거기다 수단까지도 없었던 시골 빈농가貧農家 출신인 나의 승진의 꿈은 여기까지였지만, 그저 성실함 하나로 버티다 2% 부족한 채 대신 산하기관에서 고위직으로 마쳤으니 공직 당시 전직이나 이직 등 변화의 시도를 해보지 않고 안주해 온 것에 대해 용기와 결단이 없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
필자도 어떤 상황에서 생겨난 말인지는 잘 모른 채 평소 상항에 따라 자주 사용하는 말이긴 해도 정확한 그 이유가 있다고 단정해 말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얼굴이 부럽다고 의술을 이용해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고 해서 속마음까지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어느 대상에 대해 맹목적으로 부러워함으로써 추종追從하는 경우, 또는 부러움의 대상과 같이 되지못할 경우에 자신이 스스로 느끼게 되는 심리적 결핍감이나 패배의식 등이 가져다주는 일종의 조소적嘲笑的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부러움을 긍정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내가 목표로 하는 상황이나 상대를 대할 때, 그 같은 생각을 가짐으로써 자신이 더욱 노력하여서 그 꿈을 이루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부러움을 빌미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났으니 부러움을 이기기 위한 동기부여動機附輿가 되는 것이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게 된다.
소부유근小富由勤이라했다. 작은 부자는 근면함에서 생긴다는 말처럼 오래 동안 열심히 일해 생활의 달인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가정의 부를 일궈 나가는 부지런한 여성들의 모습에서, 어려운 환경에서 자기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도전정신에서, 동료들의 승진을 부러워했었지만, 연하지 않고 자신의 변화를 시도함으로서 다른 쪽에서 남에게 부러움을 사게 하는 일...........,
세상사는 삶 자체가 남과 비교하며 사는 일이니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어느 것 하나 안 부러운 것이 없을 정도로 많기도 한데, 자기에게만 있는 다른 쪽에서의 복을 갖고 분수를 지키며 그냥 살고 있거나 부러움을 극복해가며 세상살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 마냥 부러워하고만 있어서는 항상 뒤 처진다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슬 받게 된다.
발상發想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상황에 걸맞게 도전하고 노력하여 부러움을 극복함으로서 오히려 남이 나를 부러워할 수 있는 입장으로 바꾸려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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