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몸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
“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라, 꽃이 많이 피는 시기는 비바람이 많은 것과 같이 꽃과 비바람이
서로 시기하는 것 같아도 아마 서로 꼭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2014.11.20
그러고 보니 ‘나뭇잎이 떨어지니 그것이 세월임을 알았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실감나는 계절이다.
세월이 또 속절없이 흘러갔으니 내 나이도 비켜가지 않았으리라.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TV광고의 멘트는 실버보험 들라는 노 탤런트 이 모 씨의 목소리와 장례를 주관하는 상조회에 가입하라는 광고이다.
마치 보험에 안 들면 암에 걸릴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과 망자를 편히 모시겠으니 자기 상조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효막급不孝莫及한 자식처럼 말하는 멘트를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나 아무리 재미있는 TV프로라 하더라도 시청 중에 이런 광고가 뜨면 여지없이 채널을 돌려 버린다.
필자도 살만큼은 산 나이라 이 두 부분에서 피해갈 수 없겠지만, 아직은 건강을 자신하면서 큰 병 없이 지내온 터라 기본적으로 남이 사는 만큼은 여생을 늘리고픈 마음이 꿀떡 같은데 괜스레 머릿속은 이런 장삿속 문구나 방송멘트가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이런 카피들이 나와는 직접 상관없는 일이라 개념 하지 않고 나만의 건강수칙에 따라 섭생에 유의 하면서 꾸준히 운동도 열심히 하는 등 매사에 자행자지自行自止하면서 즐거운 삶을 이어 가고 있는데, 어디 내 삶이라고 내 마음대로 되던가?
11월 13일, 이 날은 필자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 온 비운의 날이다.
0.8mm 크기의 갑상선 상 유두암 판정을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현실을 받아 드려야 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왼쪽 목 아랫부분이 약간 신경이 쓰일 정도로 부자유스러워 동네 병원을 찾아 증세를 말하니, 나이 지긋한 의사는 이곳저곳 육안 검사와 내시경 검사를 반복적으로 해 봐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1차 진료를 받았었다.
두 차례의 약물 복용으로 훨씬 목안이 부드러웠지만, 이참에 확실히 하고 싶으니 CT촬영을 해 보자고 요구했다.
“안 해도 되는데요, 환자의 요구가 있으니 그럼 확실히 확인해 보기 위해서라면 촬영장비가 있는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부산대학병원으로 가보시라며 진료소견서를 써 주었다.
이래서 부산대학병원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예약을 하고 이비인후과 왕 모 교수의 진료실을 찾게 되었던 것이 진료의 시작인 셈이다.
사전 정보가 없으니 누가 잘 진료하는 의사인지도 모르고 그냥 교수 중에 제일 나이가 많다는 것만 믿고 그 분을 특진교수로 선택하여 예약했다.
첫날, 환자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돌아앉아 진료소견서를 읽고 컴퓨터영상을 이래저래 훑어보더니
“내가 보기엔 아무 이상 없으니 6개월 후에 다시 봅시다.”하면서 예약을 정해 주었다.
그렇게 진료를 끝내려는 과정에서
“혹시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병변이 있을지도 모르니 CT촬영을 좀 해주세요.”
순전히 내 요구였다.
찜찜한 부분을 완결시키고 싶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확실히 해 두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1주일 후 영상 판독 중 이비인후과 부분은 역시 이상이 없었으나 갑상선 쪽에 환부가 발견되어 내분비내과로 협진 한 결과 다시 초음파와 조직검사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와 같은 결과를 통보 받은 것이다.
조직검사 결과를 보러 가 걱정되는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들어서니 필자의 초음파 영상과 조직검사결과를 확인하며 의사는 그냥
“예, 검사 결과가 좋지 않네요.”
“그럼 안 좋다는 것은 혹시 암을 말합니까?”
직설적으로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예. 그렇습니다.”는 말이 떨어지자 안색을 살피던 의사는 이 부분에 대하여 위로하는 듯 설명을 해 주면서
“순한 암이라도 수술을 하여 전이를 막아 완치 확률을 높이는 쪽으로 합시다.”
이제부터 암환자가 된 것이다.
지즉병부지약知卽病不知藥이라.
‘알면 병이요, 모르면 약’이라는 말과 같이 확률 상 발병하기 어려운 곳에서 우연찮게 발견되었으니 이제부터 아는 게 병이 안 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비인후과 특진의사의 말대로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듣고 그냥 돌아 왔으면 환부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대로 지내왔으면 모르는 것이 약이 되어 무탈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직 치료의 과정이 남아 있지만, 100명 중 2, 3명만이 악성으로 발견된다는 비교적 확률이 낮은 그룹에 끼었으니 어떻게 보면 재수가 없는 것 같아도 한편 생각하면 적극적인 생각으로 조기에 발견한 것은 운이 또 좋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처음 발견 당시 의사의 말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총론에 뭐 별일이 있겠냐는 생각으로 진료를 다녔지만, 각론에 가서는 최악의 경우를 맞았으니 머릿속에 지나가는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현직에서 퇴임 후 12년 간, 리듬을 잃지 않으려고 신경 쓰며 살아 왔고, 또 남들보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 왔는데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린가?
건강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무슨 소용이 있더냐 하는 자괴감이 들면서 갑자기 맨붕 상태가 되어 무표정하게 담담히 의사 앞에 앉아 설명을 들었다.
“수술 자체는 간단합니다. 이 질환의 특성 상 다른 곳에 전이轉移만 없다는 보장만 있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비교적 예후가 좋지만, 암인 줄 알고서는 그냥 지낼 수 없잖아요?”
가능한 수술 일정을 빨리 잡아 치료하는 방향으로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얼떨결에 대답을 한 후 진료실을 나오기까지도 그냥 무덤덤했다.
치료 받으면 되는 걸 가지고 왜 암에 걸렸다고 모두 무서워하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병원을 나섰다.
자신에 대해서 너무 관대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도 자꾸만 2년 전 이맘 때, 후두암으로 세상을 버린 친구 N의 생각이 자꾸 떠오르니 40여 분 가량 걸리는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내내 이 생각 저 생각 착잡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다른 때 평소 같으면 카톡이나 스토리 같은 연결음도 성가실 정도로 많이 들리더니만 내 이런 심정을 텔러퍼시로 알고 있기나 한 듯 오늘은 이상 하리 만치 조용한 핸폰을 꺼내 자꾸만 만지작거렸다.
누군가로부터 위로 받고 싶은 심정에서였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많은 생각들이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머릴 스쳐 지나갔다.
이제부터는 나도 별 수 없이 암에 걸렸다고 말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가족들에겐 어떻게 말하여야 할까?
<내가 암에 걸렸다. ‘김형진, 너도 별 수 없지 않느냐?’>..........,
망칠望七까지의 많은 세월 중에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면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꾸준히 건강관리를 해 온 것만 믿고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너무 자만했나?
그 흔한 암보험 하나 안 들었으니 어쩌지?
머리가 정리되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이 수술은 요즘 맹장 떼어내듯 간단한 수술이고 예후도 좋다고 했다.
그렇지만, 남의 이야기니 쉽게 말한 것이라 이런 사실을 다 믿어야 하나 어쩌나 생각할 여지없이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아무래도 내일은 낚시터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소침한 생각으로 들어서는 나를 처다 보는 집사람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이럴 때 사랑했던 금비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아무 것도 모르고 반겨 달려들었을 텐데.
오늘 따라 휑한 거실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여보, 내가 암에 걸렸다네. 글쎄.”
“나 어떡하지?”
얼굴을 마주보며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도 입 안으로 빙빙 도는 이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아니, 입술이 안 떨어졌다.
무슨 죄진 사람처럼 얼굴을 푹 숙인 채 묵묵히 저녁을 먹으니 밥맛이 좋을 리 없었다.
어차피 수술동의를 받을 때 보호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함구하면서 지내다가 그 때 자연스럽게 이야길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튿날 새벽 운동은 40여 분 걷기만 하려고 작정했지만 평소보다 기분이 활달하지 못하게 느껴졌다.
아직 여명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각이었지만, 다른 사람보다 일찍 헬스장을 나오며 만난 동호인 한 분이 어떻게 알았는지 또 낚시 가냐고 묻는다.
얼른 샤워를 하고 집에 들어와 낚시가방을 차에 싣고 근교의 낚시터로 달려갔다.
사무실에 나가봐야 특별히 할 일도 없거니와 잡생각이 자꾸 나면 공연히 궁상맞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저수지는 산골짜기에 있어서 도심과 3, 4도 차이가 나 그런지 새벽 서리가 눈처럼 하얗게 내린 좌대 위는 적막할 정도로 한가하고 알싸한 공기가 얼굴에 와 닿는다.
평일이니 다른 꾼들은 거의 없고, 안면이 있는 젊은 꾼 K와 필자 두 사람뿐, 서로 인사를 하고 채비를 펴 찌를 처다 보고 있으니 마음만은 이렇게 평안할 수 없었다.
분위기에 취한 마음으로 떡밥을 개 미끼를 달아 가볍게 스윙하니 금세 입질이 들어 왔다.
필자의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 주기위해 대기하고 있듯이 큼직한 떡붕어가 순간의 첫 챔질에 활처럼 휜 낚싯대가 윙 윙 소리와 함께 묵직하게 끌려 나오며 요란을 떤다.
“힛트!”
앞에 먼저와 낚실 하고 있던 K의 축하음이다.
“감사 합니다.”
이날따라 입질이 자주 들어 왔다.
평일에 가두리 좌대를 단 둘이 독점하고 있어 붕어가 잘 낚일 수밖에 없는 물 밑 환경인지 모르겠으나 적당한 텀을 두고 심심찮게 낚여주는 씨알 굵은 떡붕어가 여간 사랑스럽지 않게 보였다.
울긋불긋 늦가을 단풍이 아직은 남아 있는 산 그림자가 가득한 계곡에 위치한 저수지 좌대에 앉아 열심지취悅心之趣로 낚시를 하다보면 그 분위기가 정말 아이들 말로 짱이다.
낚시꾼만이 향유하는 분위기의 즐거움이랄까?
낚신 그래서 다른 취미보다 좋은 점이다.
물속의 붕어들이 누가 암환자라고 약하게 보지도 않으며 누가 못 생겼다고 깔보지도 않고 그저 제 입맛에 맞는 환경이 되면 캐스팅하는 족족 여지없이 바늘에 꿰어 앙탈 대며 끌려 나온다.
그럴 때마다 조사는 손들고 벌서는 포즈로 낚싯대를 높이 쳐들고 엔도르핀이 팍팍 나오도록 열심히 당기니 힐링+α의 손맛이 그지없는 것이다.
필자 자신은 어디가 아픈 곳도, 불편함도 없는 나일론환자(?)였지만, 엄연한 암환자로서 처지를 잊은 채 오늘 그야말로 하루를 즐겁게 보냈으니 잠시 스트레스를 벗어났던 하루였다.
진료는 이비인후과와 내분비대사내과를 교차하면서 협진 체제로 운영하고 있어서 의사마다 요구하는 대로 검사예약과 진료실을 찾아다니는 일도 번거로웠다.
수술은 이비인후과에서 하는 가 보다.
예약한 날짜가 되자 다시 이비인후과에 들르니
“연간 약 1,000여 건의 수술을 한다.”고 전제한 후 왕 교수 자신은
“눈이 어두워 이제 수술은 안 하고 제일 실력 있는 수제자를 통해 가능한 빨리 치료하자”며 수술하기 전 해야 할 예비검사가 이루어지도록 조치해 주었다.
기본 검사인 채혈, 심폐기능 검사와 X선 촬영, 심전도, 심장초음파촬영 등 북적대는 검사실을 찾아다니는 일도 번거로웠지만, 수술과 직접 관련이 있는 건지 어쩐지도 모르고 환자는 그저 시키는 대로 거금을 내고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구러 몇 차례 수술 전 담당의사와 상담을 하는 동안
“이 암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며, 비교적 다른 곳으로 전이가 잘 안 되는 암이고, 수술 후 약물치료를 하는 과정으로 치료하겠다.”는 설명을 들으니 처음보다는 훨씬 평온한 마음으로 수술 날짜를 기다렸다.
불안한 마음으로 대학병원을 들락거리는 사이 두 대중 스타의 부음소식이 전해졌다.
10월 27일, 신해철(가수, 1968-2014. 46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의료사고 의혹이 풀려지지 않은 가운데, 11월 16일, 탤런트 김자옥(1951-2014. 63세) 씨의 부음 소식이 지상파 방송을 통해 전해지더니 매 시각 그들의 생전 활동과 삶에 대해 알리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준다.
가수 및 음악 프로듀서, 라디오 DJ, TV프로그램 MC, 사회운동가, 논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던 젊은 가수가 한창 대중의 사랑을 받을 나이에 병으로 요절한 것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꽃처럼 살다 별처럼 간 배우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는 가운데, 김자옥씨는 대중매체를 통해 그녀의 여러 활동 모습을 쭉 지켜보면서 한 세대를 함께 살아온 팬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소녀 같은 해맑은 웃음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다.
죽고 사는 일은 하늘의 저승사자가 하는 일이라 갑자기 맞은 죽음에 대해 인간으로서 어쩌지 못하는 현실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사랑하던 가족들을 뒤로 하고 타계他界로 떠나갔을 것이다.
인생은 나이의 순서 없이 운명대로 살다 죽게 되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도 모른 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각자도생各自圖生하다 생을 마치는 것이 인생행로다.
사생유명死生有命이요, 인명은 재천在天이라고 해서 죽고 사는 것은 다 팔자 소관이요 운명에 달려 있다고 하는데, 죽음을 가르는 것도 모두 하늘의 일이다.
그래서 내 몸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아프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하라고 했다.
죽을병이냐? 아니면 살 수 있는 병이냐의 두 가지다.
즉 죽을병이면 천당이냐 지옥이냐 만을 걱정하고 살 병이면 걱정을 말라.
전분세락轉糞世樂이라,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낫다했으니 지금 여기가 천당이라 걱정할 필요 없고, 지옥은 어차피 갈 곳이니 또 걱정 말란다.
어쩜 괴변 같지만 이해도 되는 말 같기도 하다.
이 갑상선 유두암은 이 부위에 생기는 암 중 가장 선한 종류라 당장 죽을병은 아니라 했으나 일단은 걱정 안 해도 되겠지만, 마음이 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제 필자도 비껴가지 못하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질환으로 득병得病한 처지가 되었으니 죽음은 운명에 맡기고 사는 동안 극병克病하면서 사는 길 밖에 어쩌겠는가?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백전백승이라 했으니 적을 아는 만큼 자신을 알기 위한 노력들이 번거롭고 귀찮을 것이지만, 극병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각오가 있어야 이 병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몸은 상처가 크면 그 흔적이 크게 남고, 마음의 상처는 아물면 더 단단해진다고 한다.
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라, 꽃이 많이 피는 시기는 비바람이 많은 것과 같이 꽃과 비바람이 서로 시기하는 것 같아도 아마 서로 꼭 필요한 존재다.
그동안 자신하며 막 살아온 데 대해 경각심을 주려고 나에게 이런 시련을 준 것이라 생각하고, 이참에 건강을 다짐하는 기회로 삼자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굳은 땅에 물 고인다.’고 했으니 이제부터는 현대의술을 믿고 치병治病하여 회복한다면 여생의 삶이 보다 단단해져 더욱 건강해 질 것으로 다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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