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수필,시

◇ 어떤 시간을 살아갈 것인가?

이원아 2011. 2. 16. 13:47

 

                                ◇ 어떤 시간을 살아갈 것인가?

<시인 송 현선생의 강의를 듣고>

 

   

 

                          지금의 시각은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현재이니 현재를 사는데 있어서 ‘지금처럼, 여기에서, 처음 볼 때처럼, 다시 못 볼 것처럼’하는 정신으로 살아야지 지네처럼 어영부영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내가 대전으로 기차통학 하던 ‘60년대의 이야기다. 아랫집에는 나보다 한 살 적지만 집안의 아재 뻘 되는 초․중학교 동창친구가 살고 있었다. 아래윗집에 살아서 그런지 서로 그와는 자고 일어나면 늘 어울려 놀아 어릴 때부터 친하기로 소문이 있을 정도로 아주 절친하게 지내면서 유․소년기를 보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릴 적에도 싸움 한 번 해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늘 붙어 다니며 뛰 노는 아주 친한 사이였는데, 함께 중학굘 마치고 그는 대전에 있는 5년제 농업고등전문학교를 나는 공업고등전문학교를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때의 이야기다.

  당시 우리 집에는 시계가 없었어도 별 불편을 모르고 학교를 다녔었다. 그것은 이 친구의 집에는 조그만 구식 자명종自鳴鐘 시계가 하나 있어서 항상 통학시간에 맞춰 그 친구가 우리 집 앞 삽짝거리에 먼저 나와서 나를 불러내 함께 등교했기 때문에 별 지장이 없었다.

  나는 정확히 새벽 4시만 되면 건너 마을 예배당禮拜堂에서 새벽 기돌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는 때 맞춰 일어나 새벽 공부를 했고, 어머님께서도 그 때 일어나 나의 새벽밥을 지어 주셨기 때문에 그 당시 예배당의 종소리는 우리 집이나 나의 자명종시계처럼 이용한 매우 중요한 알람이었던 것이다.

  집을 나서는 등굣길에는 아랫집 그 친구가 자기 집 시계에 맞춰 먼저 집을 나와 나를 불러내 함께 학교 가는 일이 그야말로 시계처럼 정확했는데, 어쩌다 가끔 있는 일이지만, 그가 무슨 이유인지 늦으면 나도 덩달아 늦기 때문에 우리 둘은 책가방을 들고 달리기 시합하듯 자갈길을 숨차게 뛰어야 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해가 짧아지고 날씨가 추어지는 때가 되면 그 친구가 날 불러 주지 않기 때문에 항상 어머니께서는 새벽 밥 짓는 일이, 나는 등교하는 일이 여간 신경 쓰는 일이 아니었다. 장장 다섯 번의 겨울동안을 이렇게 시계 없는 불편함으로 공불해야 했기 때문에 나에게 시계는 갖고 싶은 제 일 순위임은 물론 추억어린 사연들이 많다.

  그 친구는 겨울 한 철 기차통학을 안 시켜도 될 만한 정도의 부자 집이라 대전에 하숙을 시키기 때문에 나 혼자 알아서 열차 도착시각에 늦지 않으려는 마음고생을 했었고, 또 어머님은 그대로 종소릴 듣지 못하고 주무시는 경우와 날이 흐려 새벽 별을 보지 못하는 경우 들락거리며 잠을 설치셨기 때문에 나의 통학을 위해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새벽마다 밥 짓는 일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셨을 것이란 짐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록 조금 늦어 가방을 들고 뛰는 일은 몇 번 있었을지라도 어머님이 시각을 잘못 짐작해 기차 시각에 못 대서 단 하루도 학굘 가지 못했던 기억은 없는 걸 보면 어머님은 시각을 알아보는 여러 수단을 동원해 나의 새벽밥을 거르지 않도록 애쓰셨던 것이다.

  남의 자식들은 하숙이나 자취를 하도록 형편이 닿는데, 그러지 못하는 어머님의 속마음은 항상 애가 타들어 가는 듯 자탄自嘆하셨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나대로 미안함 마음이 컸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취직이 되면 시계만이라도 집에 걸어두고 싶었던 것은 그때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깟 시계 하나 참 별것이 아니고 어찌하기로서니 자명종 하나 살 수도 없는 처지에 학교를 다닌다는 그 자체가 집안 형편상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세상의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위대하시겠지만 나에게 어머니는 정말 각별하신 분이시다. 공부 잘하는 아들이 미더워 당신의 불편함을 오히려 희망으로 여기시고 불평 한 말씀 없이 오직 이 자식하나 가르치시고 싶었을 것이다. 어머님 생시 어느 날, “니 통학 밥 해 줄 때를 생각하면 시방은 얼마나 부자냐? 앞앞이 손목시계며 벽에 걸린 시계만도 몇 개나 되느냐? 아이고! 어쩌다 예배당 종소릴 못 듣고 자다가 흐린 날은 별도 안보이고 그 때 참 너 밥 못 먹여 보내는 줄 알고 몇 번씩 잠을 깼었다.”시며 얼굴은 웃는 모습이셨지만 당시를 회고 하시던 어머님의 말씀에 나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손목시계를 처음 차고 뽐내 본 것은 약혼 때 예물禮物로 받은 금장손목시계였다. 당시로 봐도 처가妻家인 부잣집에서 마련해 준 것이라 고급 손목시계라고 할 정도로 제법 이름이 있다는 시계가 나의 것이라는 충만감에 가끔 시계를 처다 보는 일이 즐거웠었다.

  아니 그보다도 노란 금빛 손목시계를 남에게 뽐내 보이려고 자주 팔을 들어 소맬 걷어 올리며 시계를 보는 척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깟 시계 하날 가지고 그러냐고 할지 몰라도 손목시계는 당시도 없이 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을 때였는데, 나는 약혼으로 인해 통학시절 원도 한도 많은 시계에 대한 모든 것을 풀었으니 내 딴에는 자랑할 수 있는 개인 소지품所持品 중의 하나였으니 정말 귀하게 다루며 다녔던 기억이 난다.

   학교 졸업을 하고 대전의 유천동에서 군복무 생활을 하던 때, 지금의 아내와 약혼約婚을 하였는데, 그 시계를 노리는 고참병들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후 기억이 없어 잘 모르겠으나 무슨 사유인지 약혼녀인 지금의 아내 손에 돌아간 다음에 그 시계는 사라졌는데, 일생에 딱 한 번 받는 기념적인 약혼시계가 없어진 이유로 파혼의 절차가 있는 줄 알았으나 이에 대해 아내는 묵묵부답黙黙不答인 채 딱 잡아떼서 당신 매우 궁금했지만 지난 일이니 지금까지 모르고 지낸다.

  결혼식은 그렇게 소중했던 약혼예물은 원인 모르게 없어진 채 또 다른 시계를 받고 치러졌고 생활도 안정되었으므로 시계에 대한 생각은 이제 그냥 현재를 확인하는 수단으로서의 생활필수품 정도로 인식하면서 살아오게 된 것이다.

  ‘83년도 년 말 언젠가 직장동료와 함께 들뜬 마음으로 첫 해외 연수차 일본 오사카를 갔었을 때 시가市街의 어디 지하상가를 들러 일본 사람들의 생활상을 시장을 통해 직접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떠밀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걸어 다니며 쇼핑에 몰두하는 것을 보고 지상 시가지市街地에 사람들이 왜 안 보이는 이율을 알 것만 같아 처음 이국異國 여행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복잡한 사람들 다니는 틈을 비집고 수 십 명의 어린 학생들이 서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해대며 수 백 개나 됨직한 시계를 진열해 놓은 곳에 몰려 머릴 처박고 시계를 고르는 장면을 관심 깊게 보고는 잘 사는 나라는 시계도 참 많은지 우리나라는 어른들도 잘 못 차고 다니는 시계를 아이들까지 소유하고 다닐 정도로 잘 살고 있다는 점에서 부러운 느낌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시곌 봐두었다가 년 말 세일기간 중에 염가廉價로 사기위해 경쟁적으로 고르는 것이라며 벌떼같이 몰려들었던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지금 우리 생활에서 시계라는 존재는 어떤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청렴에 관하여는 하늘을 보고 한 점 부끄럼이 없다(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고 장담했던 사람이 뇌물로 받았다하여 그 진위에 대한 구설수口舌數로 곤혹을 치러야 했던 그런 고급 명품시계와 같은 것을 차고 다니며 뽐내려는 사람이 아직은 더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가끔 명품시계를 몰래 들여오다 세관당국에 적발됐다는 뉴스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 때문에 수요가 있어서일까?

  그러나 시간생활을 많이 하는 청소년들이 멋지게 디자인된 디지털시계를 차고 다니는 경우나 시계에 대한 무슨 잊지 못할 기념적인 의미가 있지 않고서는 요즘 많은 수의 성인들은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어지는 추세라 얼마 가지 않아서 시계라는 물건도 IT제품시대에 밀려 골동품骨董品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만큼 시각을 알아보는 수단의 시계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기 때문에 굳이 소지할 필요성이 적어졌기 때문이리라. 특히 도시에서는 일상의 용도로 쓰이는 시계는 도처에 서 볼 수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전철역 싸인 보드에도 있고 대합실待合室에도 있고 승․하물용 자동차는 물론 대중교통인 버스나 택시를 타도 시계는 있다.   어느 사무실이나 공공장소엘 가도 시계가 걸려 있어서 잘 알아보도록 시각적 효과를 더해 세련된 디자인으로 디지털화하여 반짝이며 잘 보여주고 있다.

  핸드폰이 대중화大衆化된 지금은 전화와 함께 시계도 들고 다닌다고도 말할 수 있을 만큼 시계는 주변 어디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몸에 차고 다니며 시계를 보지 안 해도 별 불편 없이 사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시계의 발전을 한 세대 전을 비교해 봐도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은 다 갖고 있겠지만, 나에게도 2002년 4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광양항의 부두건설 책임자로 있으면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포장産業襃章을 수상했을 때에 부상으로 받은 금빛 대통령휘장이 새겨진 손목시계가 있다.

  시계가 개인 필수 소지품所持品이었을 시절 같았으면 뽐내고 차고 다녔을 시계 아닌가? 명품은 아닐지라도 대통령의 하사품下賜品인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차보지 않고 집 어디 구석에 처박혀있을 그 시계는 여러 개의 고물시계들 속에서 세월이 흘러 가치와 쓰임새가 떨어진 골동품이 돼가고 있다.

나는 남보다 빨리 손목에서 시계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여름이면 땀이 나 알레르기도 생기고, 겨울에는 차가운 점도 싫었다. 무엇보다 손목에 뭣이 있다는 점이 늘 신경 쓰기 싫어서 이십여 년 전 휴대폰을 처음 장만하여 들고 다녔든 시점에 시계를 과감히 벗어 던진 후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다시 차고 다니지 않고 생활한다.

 

  시계는 언제나 현재를 가리킨다.

  지나간 시간은 현재의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 시계는 다가오는 미래를 가리키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 이 시각만을 가리킨다. 미래는 불확실不確實한 오늘이기 때문에 막연히 어떻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저버려야 한다. 대신 오늘이 내 삶이 마지막 날이라는 신념으로 현실 속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현재 엉뚱한 짓거리를 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어느 깊은 산골 곤충昆蟲나라에서 중요한 축구시합이 있었다. 한 팀은 메뚜기, 베짱이 들을 포함 한 팀을 이루고 또 다른 한 팀은 지네와 풍뎅이 등이 한 팀이 되어 경기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선수들의 입장이 있고 이어 경기를 시작하려고 출전선수를 확인하다가 보니까 지네 한 선수가 안 보였다. 잠시 경기가 지연되다가 하는 수없이 그가 빠진 채로 게임은 시작되었고 결과는 3:0으로 져버렸다. 주전선수主戰選手가 빠진 팀원들의 불평이 대단했다. 그렇지만 메뚜기 팀은 처음으로 지네가 빠진 기회를 이용해 그 팀을 이긴 것에 대해 자축하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 판을 보고 있자니 더욱 화가 난 지네 팀원들이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를 알아보려고 풍뎅이 주장을 앞세우고 지네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 집에 들어서자 모두 입을 딱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

  하! 하! 왜 일까요? 금세 답이 나왔다. 그때까지도 지네가 운동화 끈을 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네는 다리가 많으니 신발 끈 매는 시간이 많이 걸려 그만 중요한 경기에 져버리는 꼴이 되었다는 우화에서 때 맞춰 시간을 쓰는 일이야 말로 대단히 중요한 삶의 가치價値이자 기회機會임을 시사 하고 있고,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허접한 일로 시간을 낭비하거나 어영부영하며 살지 말라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새벽녘, 일찍 잠이 깨 TV채널을 돌리다 ‘지여처다(금, 기에서, 음 볼 때처럼, 시 못 볼 것처럼 사는 법)’의 저자 송 현(1947년생, 시인)선생의 명 강의를 시청한 내용인데, 자신이 직접 져 낸 우화寓話라고 소개하고는 웃으면서 강의를 마쳤다.

  결론은 지금의 시각은 다시 돌릴 수 없는 현재이니 현재를 사는데 있어서 ‘지금처럼, 여기에서, 처음 볼 때처럼, 다시 못 볼 것처럼’하는 정신으로 살아야지 지네처럼 어영부영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저서著書에도 있듯이 ‘그대 이 순간 행복할 줄 모르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는 명사의 말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강사가 어찌 그리 아는 것도 많고 책도 많이 읽었는지 존경스러웠고, 문학자답게 시종일관始終一貫 좋은 말로 나를 매료시키는 강의를 끝까지 경청하고 나니,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정신이 맑아졌는데, 지금까지 너무 시간에 대한 개념槪念 없이 살아 온 내 삶이 2% 부족한 점에 대해 자인自認해 보는 시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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