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수필,시

◇ 몽당연필

이원아 2011. 3. 22. 11:25

 

◇ 몽당연필

 

 

 

거안사위居安思危해야 한다. 편안하게 살 때 궁하여 위태로움을 생각한다면 몽당연필 하나라도 버릴 때는 낭비요소가 없는 지를 한 번쯤 생각하고 버려야 한다.”               2009.02.17

 

 

                                                  <60년대 우리들은 이정도까지 볼펜깍지에 끼워 썼다>

                   

 

▽볼펜 깍지에 끼워 쓴 몽당연필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내의 심한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하나, 둘 주워모은 몽당연필을 보고 지난 교직시절에 청춘을 불태워 가면서 열성적熱誠的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때, 조막손으로 그 연필을 잡고 열심히 글을 써가며 공부하던 여러 어린 제자들의 얼굴을 떠 올리며 회상回想에 젖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몽당 빗자루, 몽당 숟가락, 할머니의 몽당 머리빗 등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생활 주변에 늘 두고 쓰던 손 때 묻은 물건들......,

  몽당연필!

  닳아질 대로 닳아지고 상처 입고 망가진 키 작은 연필 토막! 글씨를 쓸 때마다 곱게 다듬어 낡은 볼펜 깍지에 끼워서 또박또박 써대는 눈빛이 맑은 예쁜 아이들이 생각나셨다는 걸 보니 아마도 정년停年을 맞으신 선생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찮게 여길지도 모르는 몽당연필을 필통 가득 모아놓고, 거기서 또 옛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다른 회상으로 승화하려는 별난 애정(?)을 가지신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가끔 그런 집이 보이기도 하건만, 앨범이 생활화 되지 않던 시절, 시골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마루에 올라 방으로 들어가는 안방 문지방 흙벽 위나 방안의 윗목 벽 위에 당신 부모의 영정사진影幀寫眞을 중심으로 자식들의 결혼사진부터 시작해 자손들의 백일, 돌 사진들까지 빛바랜 액자에 대충 넣어 걸어 놓고 그 방을 드나들 때마다 한 번씩 쳐다보며 사진 속의 주인공들을 그리워 하셨던 우리 조상부모님들 생각과 대상對象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어쩌면 그런 애잔한 마음에 가슴 뭉클해지면서 나도 덩달아 몽당연필에 대한 회상回想이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기억으로는 마룻바닥에 책걸상도 없이 엎드려서 공부를 했었다. 이 마룻바닥은 군데군데 관솔구멍이 나 있어서 겨울에는 이곳으로 그야말로 황소바람이 불어와 모두 그 곳을 피해 앉으려고 했지만, 반대로 여름에는 오히려 그 곳 바람이 시원하니 명당明堂자리였는데, 이 구멍으로 연필이나 지우개 등 학용품學用品을 빠뜨리는 일이 더러 있어서 캄캄한 마루 속을 들여다보며 애만 태우던 일이 많았었다.

  그런데, 이 마루는 밖으로 겨우 덩치 작은 사람 하나가 요령 있게 몸을 비틀어 기어서 들어갈 정도의 작은 환기換氣 구멍이 나 있는데, 이곳을 제집 안방 드나들 듯 그 속에 들어가 몽당연필을 비롯한 학용품을 손아귀 가득 주어 나오는 키 작은 친구가 있었다.

  습득한 물건에 따라 다행히 이름이 쓰여 있거나 특별한 표시를 해 임자가 밝혀지면 돌려주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주운 사람이 새로운 주인이 되어 부담없이 재사용 하거나 활용되었다.

  온갖 오물과 먼지투성인 마룻바닥 속에 한 번 들어갔다 툭툭 털고 나오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누구도 그런 모습을 보고 서로 웃기보다는 손에 들고 나온 제법 길이가 많이 남은 연필에 더 관심이 갔었다.

  나도 몇 번 그 먼지투성이인 캄캄한 통풍구通風口를 통해 마룻바닥 밑에 들어가 제법 쓸 만한 학용품들을 주워 모았다가 손에 안 잡힐 정도로 깎아 쓰고 그런 다음 헌 볼펜 깍지에 끼워 그야말로 손톱만큼 정도까지 알뜰히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당시의 연필이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그 품질이 말이 아니었다. 심의 재료인 흑연의 경도硬度가 약해 조금만 힘을 가해 눌러 쓰기만 하면 뚝 뚝 부러져 연필을 깎는 일이 신경 쓰였었음은 물론 부드럽지 못해 걸핏하면 마분지가 찢어 졌고 침을 발라 써도 그 검은 색이 진하지 못하여 애를 먹었다. 또 나뭇결을 잘 못 깎는 경우엔 칼질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뭇결이 떨어져 나갔었고 흑연 심까지 부러뜨리는 경우가 있어서 낭패 보기 일쑤였다.

  시커먼 무명책보 속 양철필통洋鐵筆筒에 넣고 뛰 다닐 때는 덜그럭 소리가 나도록 흔들거려 골병이 든 연필 하나를 다 깎아도 심이 부러져 쓰지 못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였으니 질 좋은 연필 한 자루 갖고 공부하는 것이 선망羨望의 대상이었다.

  당시 나와 같이 몽당연필을 사용하면서 공부했던 시대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궁핍한 생활을 하던 때였으므로 모두 알뜰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비단 연필이 아니더라도 모든 면에서 어려운 시대에 살았었으니 누가 시키지 않았더라도 새 것 사기보다는 어쩌든지 있는 것 아껴 쓰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궁상맞게 산다고 흉볼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소儉素한 생활을 하면서 일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이가 제법 연로年老한 댁의 살림살이는 마치 골동품骨董品 가게처럼 낡고 구식인 것들이 집안 어디에도 널려있다. 나도 그런 습성이 있어서 버리려고 내 놓았다가도 또 주워 입거나 다시 쓴다.

  버리려니 아깝고 쓰자니 구식이라도 언젠가 한 번 요긴하게 쓸 데를 염두에 두고 선뜻 버리지 못하고 다시 거둬들여 쌓인다. 언젠가 이야기 했지만, 정리整理라는 것은 먼저 버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잘 버리지 못하는 습성 때문에 집안이 복잡하긴 해도 정돈이 잘 안 되는 것은 그저 손에 들고 벌벌 떨며 몸에 깊숙이 배인 굶주리던 시대의 아픔을 잊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또 그러다 보면 가끔은 또 쓰일 때가 있어서 그때 버리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과감하지 못한 성격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이 한 때는 주인에게 사랑받으며 사용 되다가 나중엔 상처 입고 망가지고 닳아질 대로 닳아진 몽당연필 같은 물건들이지만, 볼펜 깍지를 끼워서라도 사용할 수 있는 데까지 사용했던 검약정신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겨울 여름을 상관하지 않고 이른 새벽에 애견의 운동을 위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돈 후에 헬스장으로 가서 새벽 운동하는 일이 습관화된 하루의 시작이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캄캄해 잘 보이지 않은 길이라도 길 위에 떨어진 연필을 줍는 때가 더러 있는데, 나는 절대로 그냥 놔두고 지나는 길이 없이 이것들을 주워 들고 집에 들어와 잘 손질해 쓰고 있다. 오늘 새벽 산책길에서도 몽당연필 한 자루를 주웠다. 머리에 예쁜 장식을 단 색연필이었는데, 아마 유치원 애기들이 쓰던 물건 같아 주어 들고 이 연필을 쥐고 그림 공부했던 귀여운 주인공 모습이 궁금해져 얼굴 한 번 올려다보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산책길을 마쳤다.

  다른 사람들이 궁상맞다고 생각할 일인지 몰라도 이런 쓸 만한 연필이나 물건을 보면 내 어린 시절 공부하던 때가 불현 듯 생각나 아까운 생각부터 들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주워 재사용여부를 살피는 것이다.

  단순히 길이만 짧아졌을 뿐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질 좋은 연필인데, 어디서 내던진 것인지 알려고 하듯 가물가물한 고층 베란다 쪽을 올려다보고는 부유한 집 어디에 살면서 몽당연필이라고 밖으로 내던졌을까를 좀스럽게 궁금해 한다. 모든 것이 흔한 시대에 공부하는 요즘 아이들한테 뭐라고 나무라지는 못하겠지만, 내 기준으로 볼 때는 한참을 더 사용해도 되는 그러니까 꼭 볼펜 깍지에 끼워 쓰지는 않더라도 조금 더 사용하고 버렸으면 하는 바람은 있는 것이다.

궁즉변窮則變이요, 궁즉통야窮則通也다. 궁하면 변하게 되고 그러면 통한다는 말이다. 궁했으니 볼펜 깍지에 끼워 더 사용하려고 애를 썼던 시대보다는 요즘 같이 모든 것이 통한다고 더 사용해도 그 기능이나 용도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들이 쓰레기로 분류되어 버려지는 작금昨今의 젊은 사람들의 생활태도를 보면 미운 생각부터 드는 것은 내가 너무 고루해서 일까?

  거안사위居安思危해야 한다. 편안하게 살 때 궁하여 위태로움을 생각한다면 몽당연필 하나라도 버릴 때는 낭비요소가 없는 지를 한 번쯤 생각하고 버려야 한다. 나름대로 쓸 만한 골동품을 주워 모으다 보니 집안 가득 채워져 잠자리도 비좁은 방에서 생활하는 어느 수집광收集狂이신 할아버지가 모은 온갖 종류의 중고물中古物들이지만, 그것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무료無料로 나눠주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할아버지의 미담을 TV로 보면서 그런 정도까지는 못하더라도 그 할아버지의 검약정신과 무엇이든지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성품의 그 할아버지에 대한 할머니의 이해심理解心은 요즘 사는 젊은 사람들이 귀감으로 삼아 그 정신을 높이 사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근검절약勤儉節約 정신은 아무리 흔한 것이라도 아껴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빈천보貧賤報를 받게 된다는 종교적 인과因果의 이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일이 없을 때 앞으로 있을 일의 기틀을 먼저 봄으로써 일을 당하여 군색함이 없게 하고 비록 폐물廢物이라도 그 사용할 데를 미리 생각하여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하여야 빈천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근검절약 정신인 것이며, 이 정신은 생활 속의 인과응보因果應報 차원에서 중생衆生들을 지도한 종교적인 높은 뜻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교복제도가 있는 중등학교에서 헌 옷을 체형에 맞도록 바꿔 입든가 선배들이 후배에게 자신이 입고 다니던 교복을 내려 주는 아름다운 운동과 일상생활 문화에서 상식화 된 생활쓰레기 분리수거 운동은 대표적인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무실에서 마구 버려지는 질 좋은 프린터 용지 한 장이라도 나는 그냥 버려지는 경우는 없다. 특별한 공문서 외에는 모두 이면지裏面地로 재활용하고 여백이 남는 곳에는 가능한 한문漢文 한 글자라도 연습해서 결국 폐지로 수거收去되어 재활용 시키는 것이 버릇처럼 일상화 되어 있다.

  이면지를 쓰면 토너Toner가 쉽게 고장 날 수 있다는 팩스 관리기사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조건 이면지만을 팩스용지로 쓰고 있으며, 이렇게 하는 것은 마구 버려지는 직원들의 용지 씀씀이가 모여지면 그것이 결국 적소성대積小成大가 되어 원가原價를 줄이는 작은 실천이 됨으로써 사무실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사무태도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단순히 몽당연필 단 한 자루일지라도 퇴임하신 선생님과 같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어 행복한 생각을 할 수 있고, 또 그 기능면機能面에도 한참을 더 사용해도 되는 질 좋은 연필을 단순히 짧아졌다고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것은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하더라도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내 생각인데, 그래서 내 집은 항상 정리정돈整理整頓을 잘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인가?

 

  두 영감, 할마이가 마주 앉아 서로 고물古物(?) 다 돼서 이제 어디다 쓰냐고 우수개소리도 할 수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라. 중고라도 상대가 있으니 외롭지 않고 말벗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서로에 대해 지청굴 해대는 때가 있을 지라도 그때가 둘이 있어 행복한 때인 것이다. 만약 어느 한 쪽이 유고有故라도 된다면 날개가 한 쪽 밖에 없어 날 수 없는 비익조比翼鳥처럼 외톨이 신세가 되는 때 어디다 외로움을 달래며 그 많은 세월을 보낼 것인가?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있다. 쓸데없는 것이 요긴하게 쓰인다는 말이다. 내겐 필요 없는 것이 다른 곳이나 사람에게 꼭 요긴하게 쓰일지 모르는 일이다. 빈곤하고 물자가 부족하던 시대에 나온 말인 것 같은 ‘그냥 안 되면 끈이라도 달아서 쓰라.’는 옛말이 있다. 다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최종적으로 그 방법이라도 해서 버리지 말고 재사용하는 방법을 강구해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서로가 상대에 대해 더 이상 쓸 수 없는 몽당연필 같다고 내 팽개치든가 푸대접하지 말고 보듬고 배려하면서 금슬지락琴瑟之樂하는 삶이야말로 해로동혈偕老同穴하는 길인 것이다.

 

  “나의 소중한 보물인 손자, 손녀들아!

  할아버지는 지금 너희들이 쓰고 있는 아름답고 질 좋은 연필로 공부하고 싶어 하던 시절이 있었어. 너희들은 이 할아버지의 몽당연필 정신을 이어 받아서 너희들에게 주어진 용품 하나라도 흔하다고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버리지 말고, 너희들처럼 어릴 때부터 습관화 되도록 ‘껴 쓰고 눠 쓰고 꿔 쓰고 시 쓰는 《아나바다》정신’으로 세상 살아가는 법을 익혀두고 실천하는 사람이 돼 주길 바란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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