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火)를 내다.
“여성들이 밖에서 활동하는 날이 많은 만큼 아내를 잘 관리해야하는 부담이 더 커진 요즘 남편들에게 화병이 옮겨가지 않을지 걱정되지만, 불내는 방법을 익혀 내 불은 내가 끄고, 아내에겐 조금만 포용해준다면 아내의 불도 꺼져 화병이 안 생길 것이니 가정의 불화不和는 현저히 줄어들 것임이 분명한 것이다.” 2011.08.25
우리가 흔히 ‘화를 낸다.’고 말할 때 여기서 화는 불(火)을 말하는 것 이기 때문에 불(火)내기 는 형상形象으로서의 불을 지르는 것이 아니고 몸 안의 화火(울화鬱火)를 푸는 의미와 같은 뜻이다.내 몸 안의 ‘불내기’라는 말이 잘 안 쓰는 말이라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화는 내야지 참고 있으면 독이 되어 병이 든다. 나는 뭐 한의학자도 아니요 정신과 의사도 아니라 의학적인 이야길 하자는 것이 아니고 화는 참지 말아야 한다는 평소 내 생각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런 성향은 내 성격과도 딱 맞는다.
B형이라 그런지 나는 젊은 시절엔 한 성질 하는 기질이었다. 불끈 하는 불이 일어나면 얼굴부터 붉어지고 눈앞에 뿌연 안개가 드리웠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즈음은 화를 잘 내지 않는 기질로 변했음을 자각할 때가 많다.
그 화를 받아드릴 정도로 무뎌진 것인지 수양이 잘 되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내 속마음이 평소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오감五感을 통해 몸으로 들어오는 웬만한 불은 발화점發火點이내서 꺼져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큰 스트레스가 머물 공간이 적은 것도 내 몸이 좋은 기질로 변한 것 중 하나가 되었다.
화를 참는다는 것은 몸 안 어디에 열 덩어리가 뭉쳐 있어서 스트레스가 쌓여진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금세 이해가 갈 것이다. 이 때 생겨난 병이 화병火病인데 우리나라 여성에게 특히 많이 발생하는 병이라고 하니 요즘 우리나라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그렇게 많이 받으며 산다는 것이 의아스럽기도 한 부분이다.
오버하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내 생각으론 한국의 요즘 여성들이 많이 배운데다가 기氣까지 세서 웬만한 남성들을 다 누르고 사는 것 같은데, 내 상식을 깨는 것 같아서 화병이 오히려 남성들에게 더 생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문愚問을 던져 본다.
‘화병 또는 울화병鬱火病은 화를 참는 일이 반복되어 스트레스성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미국 정신과 협회에서는 1996년 화병을 문화관련 증후군 중의 하나로 이 병명을 등록해 놓고 영어로 hwa-byung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만 있는 특유의 질환으로 쉽게 말하면 몸 안의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일. 즉 불(火)을 밖으로 발산發散하지 못하는 일로 인해 생기는 모든 정신적 질병을 말하는 것이다.
‘불(火)을 내다.’는 말은 불을 몸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화를 낸다.’는 것은 불을 내는 것이므로 몸속에서 타지 않고 밖에서 타도록 불을 내야 한다는 것이 내 이야기의 핵심이다.
불은 열에 의해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불이 나지 않게 하려면 몸 안의 열부터 다스려야 한다. 생리적으로 어린 아기들은 열이 오르면 설사를 하여 열을 내린다. 아기들이 몸에 열이 많으면 항문에다 관장을 시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열을 내리려고 하는 치료법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화가 나면 열이 생기는데 이때는 불(火)을 내서 열을 내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화를 푸는 것이 가장 빠른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노래를 하면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걸 보면서.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방법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것으로.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사람은 또 그것으로. 술 좋아하는 사람은 술을 마심으로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운동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등산으로. 명상을 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수다 떨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컴퓨터게임을 좋아하면 그걸로, 나와 같이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낚시터에서. 다른 취미가 있으면 그 쪽에서 등등. 개인의 취향에 따라, 소질에 따라 얼마든지 있다.
범위를 좁혀 부부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중의 하나인 부부싸움에서 불(火)내길 생각해 보자. 화병은 주로 부부사이의 갈등에서 생기는 병이므로 가정을 이루는 부부관계로 한정질 수밖에 없다. 여성이 그 병에 잘 걸린다고 했으니 가정에서는 남편이 그 화원火源 제공자임이 틀림없다. 같은 남자로서 부담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부부 사이에서도 불을 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어떻게 화를 내야 한다는 것은 차제差除하고서라도 몸 안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밖으로 발산發散시켜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가능한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이상적인 관계지만 싸움을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도 부부사이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어떻게 근본이 다른 사람끼리 맞나 함께 사는데 의견이 상충되는 일 없이 살겠는가?
싸워서라도 화를 풀지 않고 오래도록 그냥 꾹 참고 있으면 마음의 한이 되어 응어리가 되고 결국 약한 쪽. 즉 상대적으로 화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적은 여성 쪽에서 이 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이 병에 취약한 중요 원인이다. 화병이 도지면 병든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의 중심이 여성이므로 다른 가족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단 불을 내면 열이 가라앉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확실한 열 내리기이다. 열을 몸 안에 오래 넣고 지내는 사람이 손해임을 알아야 한다. 당장 불을 내서 열을 내리는 것이 좋은 일인가 아니면 꾹 참고 있다가 화병에 걸릴 것인가 하는 선택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불도 잘 내야 한다. 불을 끄는 방법은 위에 말한 것 이외에도 개인에 따라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작은 일이 크게 된다. 일단 크게 벌어지면 불을 낸 것이 아니고 불을 지르는 꼴이 되기 때문에 또 화가 생기고 화병이 다시 돋는 악순환이 되기 쉽다.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어떻게 불을 낼 것인가를 생각해서 불을 내야 한다. 불을 내는 과정도 중요하다.
어린 아이가 스케이트를 배울 때 얼음판 위에서 엉덩이에 멍이 들 정도로 수없이 넘어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오뚝한 스케이트 날을 딛고 서서 잘 탈 수 없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재미를 느끼며 즐긴다. 초보 운전자가 처음 자동차를 몰고 도로에 나오면 자동차가 오히려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다 익히는 과정에서 가끔 사고를 내다보면 점점 배짱이 늘고 알게 모르게 운전기술을 몸에 익혀 사고는 줄어들고 결국 베스트드라이버가 되어 자동차가 편리한 삶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자득自得하게 된다.
이와 같이 부부 관계에서도 처음 성적인 감정이 어느 정도 몸에 익어 시들해지면 서서히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작은 갈등들이 생기게 된다.
스케이트를 타는 어린이나 초보 운전자와 같이 이럴 때 생기는 싸움은 부부라고 하는 배가 순항하기 위한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반듯이 거처야 하는 과정이다.싸워서 이기고 진다고 하면 그것은 승부를 가르는 운동경기에서나 하는 것이지 부부 싸움에서는 승패가 있어서는 안 된다. 우열優劣이 가려지고 나면 상대 중 누구 하나는 화병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부관계는 이인삼각 경기와 같은 것이다. 둘이 한 다리씩 묶어 놓고 달리다 보면 내 마음 대로 잘 안 되는 것이 이 경기이다. 그러나 상대에게 잘 맞추어야 겠다는 생각만으로도 세 발로 목표에 꼴인 하기가 또 어려운 것도 아니다.
부부는 싸우면서 정이 드는 관계이다.
오죽했으면 ‘평생웬수’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겉으론 원만한 관계 같이 보이지만, 자신의 남편을 툭 터놓고 남에게 말 못할 고민이 있음을 함축含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한데, 평생을 함께 살면서 원수지간으로 지낸다는 것은 마음속에 응어리진 열 덩어리. 즉 불(火)이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평생 그 화를 참고 살아 왔으니 남편을 향해 걸핏하면 ‘평생웬수’ 소릴 하는 것이다.
처음은 성적인 부분이 마음이 끌리는 ‘사랑스런 관계’ 살다가 세월이 흘러 미운 정 고운 정 다 드는 때가 되면 사랑보다는 ‘정다운 관계’로 변해야 그 부부관계가 원만해 지는 것이다. 언제까지 사랑타령만 하고 있을 것인가? “오죽해야 그 놈의 정 때문이라”고 했던가? 세월이 지나면서 육정肉情이 서서히 식어들면 사랑도 점점 식어들게 마련이지만 정이란 것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돈독해지면서 끈끈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웬만해서 잘 안 떨어진다.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동반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같은 무덤에 묻히려면 얼마나 부부관계가 원만해야 할 것인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크게 작게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싸움이 오히려 불을 잡는 수단이 되어 고운 정이 되는 과정이 된다면 동혈洞穴까진 갈 수 없더라도 해로偕老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화병이 대한민국 여성들의 정신질환 중 하나라고 하는 것은 유교적 전통사회였던 구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병인지 잘 모르겠으나 요즘 같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불을 내 스트레스를 풀며 살 수 있게 모든 사회가 개방되어있어 여성들이 판치는 세상에 아마도 이 병은 옛 시대의 유물로 남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술집을 가도, 등산을 가도, 수영장을 가도, 해수욕장을 가도, 콘서트 장을 가도, 유명 관광지를 가도, 심야 극장을 가도, 골프장을 카도, 음식점을 가도, 백화점을 가도, 어느 축제장을 가도……,
어딜 가도 대부분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수적으로 더 많은 것을 보면 요즘 여성들이 이런 사실들을 너무 잘 알고 화내기를 하고 있는 행동처럼 보인다.
역으로 생각하면 여성들이 밖에서 활동하는 날이 많은 만큼 아내를 잘 관리해야하는 부담이 더 커진 요즘 남편들에게 화병이 옮겨가지 않을지 걱정되지만, 불내는 방법을 익혀 내 불은 내가 끄고, 아내에겐 조금만 포용해준다면 아내의 불도 꺼져 화병이 안 생길 것이니 가정의 불화不和는 현저히 줄어들 것임이 분명한 것이다.
아마도 내가 불은 내야 한다고 하면 소방서에서는 나를 방화放火 또는 실화失火 혐의자로 고발할지 모르겠으나 마음에서 생기는 불은 방화防火호스로 불을 꺼야 하는 그런 불이 아니다. 개인의 환경이나 수양修養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방화호스 같은 수단은 오롯이 자기만의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 여러 방면으로 화(火)내서 불을 잡는 기술을 익혀 원만한 삶을 사는 길을 모색하자.
내 안의 화를 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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