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수필,시

◇ 건축학개론

이원아 2012. 5. 21. 11:56

 

◇ 건축학개론

 

 

 

 

                                  완성된 집은 추억으로 기념될 것이고, 새로운 집은 설레는 내일을 꿈꾸게 할 것이므로 건축학개론은 공학적工學的인 딱딱함이 아니라 옛 추억을 되 살려 현재를 승화 시키려는 두 남녀의 달콤한 첫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에 건축학을 전공하여 세상을 살아 온 나에게 더욱 건축학개론이라는 전문과목이 매력을 갖게 한다.”                                                                                                  2012.05.16

 

 

 <포스터>                                                                                               

 

     요즈음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13일 현재 400만 관중을 훌쩍 뛰어 넘도록 인기 폭발하고 있다고 한다. 생기 넘치지만 숫기 없던 스무 살, 건축학과 승민은 ‘건축학개론’ 수업 에서 처음 만난 음대생 서연에게 반 한다. 함께 숙제를 하게 되면서 차 츰 마음을 열고 친해지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순진한 승민은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고백을 마음속에 품은 채 작은 오해로 인해 서연과 멀어지게 된다. 15년 만에 서른다섯 나이의 건축사建築士가 된 승민 앞에 불쑥 나타난 서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승민에게 서연은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첫 사랑이었을 서연의 집을 짓게 된 승민. 함께 집을 완성해 가는 동안 어쩌면 사랑이었을지 모를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감정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나는 건축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축학개론이 내 전공과목 중 한 과목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先入見을 완전히 뒤 엎은 새로운 발상의 영화라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집을 짓는 과정과 사랑을 엮어가는 과정은 닮아있다고 보는 감독의 생각이 ‘건축’과 ‘사랑’의 흥미로운 상관관계를 담은 색다른 로맨틱 멜로물이라는 점인데, 이 영화의 남성 관객수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지금까지 여성 위주의 사랑에 관한 영화를 남성 멜로물로 역발상逆發想한 작품이라서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처럼 감정이 무뎌진 이 나이에 나도 누군가에게 첫사랑이었음을 반추反芻해 보는 것만으로도 젊은 날의 초상肖像 같은 생각들이 오랫동안 긴 여운을 남기며 옛날을 회상하게 만든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일은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라고 해서 쉽게 첫사랑을 간직한 채 한결 같은 사랑을 지켜나가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누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세상에는 모래밭의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 중 누가 나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 온다면 그야말로 그 사람에게 선택된 단 한 사람일 것이니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사랑은 장난이 아니라는 노랫말처럼 그것이 장난이어서는 진솔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사에서 사랑이라는 범주는 너무 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이것이 참사랑이고 저것이 거짓사랑이라고 단정해 말하기는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속마음이 참이지 않으면 모두 다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많은 것이다.

수심가지水深可知요 인심난지人心難知라.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남녀 간의 사랑만을 좁혀서 이야기만을 해도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다. 내가 너를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했어도 속마음을 계량적計量的으로 세가면서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고 거짓말을 해도 그 말을 믿어야만 사랑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말이 거짓인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별을 따 준다는 말이 진실인 줄 믿고 내 마음을 내 주는 것이 또한 남녀 간의 사랑이다. 이와 같이 진실은 자기가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 전부를 믿기까지 진실은 나와 상대가 같은 처지에 있어야 비로소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것인데도 어느 한 점만 보고 무작정 홀딱 반하는 사랑도 있다. 처음엔 그저 눈에 뭐가 씌어서 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세월이 흘러 감정이 무뎌진 후에나 그런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좌뇌가 발달한 동물이라서 감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함에 따라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바뀌면 마음도 함께 변한다. 또한 세월과 상대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이 사랑의 감정인데 첫사랑의 감정은 이런 것을 초월하여 죽을 때까지 잊혀 지지 않으니 그 또한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놓친 고기가 애착이 가듯이 첫사랑이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이성에 대한 애틋한 미련이 많이 남아서 일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기찻길 옆 소녀> 김 형 진

 

별빛 가득한 새벽 신작로新作路 따라

발길 재촉하는 통학시절의 바쁜 걸음은

온통 기차 도착시각에 맞춰져있다.

먼 산 너머서 기적汽笛소리 들려오면

신호음 되어 모두 잰걸음이다.

오르막 길 오르느라 지친 듯이

칙칙 거리며 들어오는 시커먼 쇳덩이는

정거장停車場을 온통 독차지하고

길게 서서 푹~ 한숨을 내 쉰다.

 

오늘도 나를 태운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기찻길 옆 그 소녀가

오늘은 어떤 모습을 하고 서있을까?

혹시라도 안 나오면 하는 가슴조림을 일축하고

하얀 원피스 입고 사립문 밖 감나무 밑에 나와

어여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하루도 어김없이 손 흔들어 주던

긴 머리 그 소녀가 그리워진다.

 

그녀를 지나 산모롱이 돌아가는 통학열차는

아득히 서서 지켜보던 그 소녀를 위해

기적소리 기일게 안녕을 고한 채

멀어지는 아쉬움으로 손들어 답례答禮하던

긴 머리 내린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그냥 보고 싶다.

 

세월은 망각妄覺과 함께 흐르고

통학열차는 추억追憶을 싣고 떠나니

옥수수 포기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하던

기찻길 옆 그 여인이 아련한데

세월 따라 곱게 늙어가는 그 얼굴 그대로

잘 있는지 이번엔 속내를 내 보이고 싶다. ♣<‘09.08.30>

 

 

   위 시는 약 40여 년 전 내가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통학하던 시절. 같은 동네서 함께 자란 초등학교 여자 친구가 옥천으로 이사 간 후 살면서 내가 탄 열차가 지나가는 새벽시간에 맞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립문 밖에 나와 서서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던 L 여인을 추억하면서 쓴 시다. 서로 사춘기思春期를 지나고부터는 그녀와 만나는 것은 물론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지내왔지만 서로 속마음은 사랑하는 감정이 싹터있었던 모양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얀 원피스 옷에 긴 머리를 하고 서서 손을 흔들고 서 있는 그녀를 보지 않고는 하루 종일 공부가 잘 안 되었던 학창시절 첫사랑의 여인이 문득 생각나서였다.

  영화 속 주인공인 승민처럼 숫기가 없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오로지 나에게 냉가슴을 앓게 했던 그 여인. 그렇게 헤어진 후 여러 번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 흘러갔어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 모습 그대로 그냥 곱게 늙어 주길 바라는 내 마음 같이 그 녀도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십 년만 젊었어도, 내 청춘 돌려달라고 해 본들 지난 세월 어쩔 수 없고, 고장 난 벽시계가 멈춰 시각을 가  리키지 않아도 세월은 그냥 흘러가는데, 이제 다시 만나도 ‘너를 사랑했었다’고 그 때의 속내를 들어 내 보이고 싶은 용기는 더욱 없다. 다 부질없는 지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노심老心에 첫사랑의 여인을 생각나게 하는 이 영화처럼 어쩌지 못하고 그것이 첫사랑이었음을 오롯이 가슴에 묻어둔 채 추억할 뿐이니 아름다웠던 기억들, 색 바래지 않는 청순한 첫사랑의 흔적들은 그래서 더욱 잊혀 지지 않는가 보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뿔을 맞대며 싸우는 사슴은 단순히 그 싸움에서 이기기만 하면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 암컷은 그저 수놈끼리 싸움을 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싸움만 시켜 놓고 풀이나 뜯어 먹고 있다가 힘센 놈이 다가오면 그냥 몸만 내 주면 제 할일 다 한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 그와 같이 힘으로 사랑을 얻도록 했다면 나와 같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여자 한 번 안아 보지도 못할 비운의 남자가 분명한데, 다행이 인간들은 힘이 아닌 감정으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창조주의 배려가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일설하고, 복잡한 애무과정이나 감정의 표현이 필요 없는 것이 대부분 동물들 세계의 사랑행위이다. 그러나 인간들의 사랑.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은 워낙 복잡다양複雜多樣하기 때문에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간단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상대의 감성을 자극해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내 감정이 전해져야 하기 때문에 한 층 복잡한 사랑의 방정식方程式을 갖고 있다. 창조주가 인간들에게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허락을 한 것이 단순하게 종족번식을 위한 다른 동물들보다 사랑에 관한한 특권으로 자리함으로서 좋은 점도 있겠지만 반면 복잡하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다.

  요즘 대중가요는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으면 인기가 없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다.

일편단심一片丹心 민들레처럼 죽을 때까지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도 있지만, 사랑 하다 떠난 얄미운 나비나 화살을 쏘고 간 남자도 있다. 이 남자가 상대에게 깊은 상처만를 주고 아무 생각 없이 떠난 전형적典型的인 남자의 모습 같지만 실상은 여자보다 더 사랑의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여자는 남자와 헤어진 후 곧 다른 상대를 생각하지만 남자는 헤어진 여자에 대해 미련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해 오래오래 그 흔적痕迹으로 자리하기 때문이란다.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총 맞은 것처럼 상처가 깊게 패이고 그러면서 또 사랑을 찾고, 아쉬워하고, 미련을 두고, 미워하고, 이별을 후회하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속 태우고 참사랑을 갈망하는 노랫말들이 대중가요에 흔히 나도는 사랑타령이다.

  아픈 만큼 다른 쪽에서 성숙해지는 사랑도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은 여성이 자식 사랑에 대해 또는 엄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배가 아파봐야 아이에 대한 소중함과 참사랑을 이해하고 더불어 남의 자식도 사랑할 줄 아는 박애정신博愛精神이 생기는 것처럼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나면 정신적으로 보다 성숙해 진다. 몸살 나도록 누굴 사랑해 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사랑을 깊이 이해하며 상대를 보는 시야도 한 층 더 넓어진다.

그들이 건축주와 건축사로 다시 만나 집을 짓는 과정은 사랑과는 거리가 먼 순수 건축설계建築設計의 과정이지만, 서연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를 승민은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은 건축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생각이다. 설계를 하기 전에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잘 알아야만 좋은 집을 계획하고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꽤나 사사私事롭고 개인적인 취향이어서 소통이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지만 건축사는 건축주의 의도를 100%이해하고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건축사의 고뇌가 있어야 좋은 집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햇볕이 집안으로 얼마나 들게 할 것이냐 창문을 가슴높이로 낼 것이냐 배꼽 높이로 할 것이냐 하는 등 둘에게는 꽤나 어려운 선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둘은 벽돌을 한 장씩 쌓아 올리듯 옛 기억을 되살려 낸다. 건축을 하는 과정과 개념이 같은 것이다.

  이 영화에서 시사 하는 바와 같이 정겹고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기억들. 잊혔던 순간들과 장소들이 불현듯 생생해져 손에 닿을 듯하지만 현실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기억들이다. 완성된 집은 추억으로 다시 기념될 것이고, 새로운 집은 설레는 내일을 꿈꾸게 할 것이므로 건축학개론은 공학적工學的인 딱딱함이 아니라 옛 추억을 되 살려 현재를 승화 시키려는 두 남녀의 달콤한 첫사랑이야기이기 때문에 건축학을 전공하여 세상을 살아 온 나에게 더욱 건축학개론이라는 전문과목이 매력을 갖게 한다.♣

'자전적 수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 낚시터의 오후  (0) 2012.06.19
◇ 여수의 두 얼굴  (0) 2012.05.31
◇ 만져야 제 맛  (0) 2012.05.07
◇ 하면 할수록 또 하고 싶다.  (0) 2012.04.17
◇ 시조始釣하던 날  (0) 2012.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