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수필,시

◇ 자신을 업데이트하라.

이원아 2013. 7. 5. 15:03

 

◇ 자신을 업데이트하라

 

 

               “극지 탐험이나 고산 등반 등 극한에서의 생존의 기술이나 군인이 전장戰場에서의 살아남기 위해 생존술을 익히는 것 등은 모두 정해진 소수의 사람만이 살아남기 위해 익혀야 할 특수한 일 일것이다. 그러나 너무 거창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생활 속에서 도구를 이용해 더 편리함을 추구하는 기술도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이 배워 익혀야 할 하나의 생존술이랄 수 있는 것이다.                                2013.0701

 

 

 <애견 금비가 내 눈치만 보고 있다> 

 

 한 사람만 태워 건널 수 있는 조그만 나룻배에 점잖은 노 선비를 태우고 강을 건너게 되었다.

 배가 어느 정도 강을 건너자 선비가 심심했던지 사공의 심기를 알아보고자 말을 건넨다.

 “사공은 문학을 아는가?”

 “아닙니다. 이렇게 빌어먹는 주제에 문학은요. 모릅니다.”

 선비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배가 강의 중간쯤에 이르자 다시 사공에게 물었다.

 “그러면, 사공은 철학을 아시요?” 그러자 사공은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더니,

 “아닙니다. 저는 문학은 물론 철학 같은 건 더더욱 모르는 일입니다. 할 줄 아는 건 오로지 사공질밖에 모르는 놈입니다.” 다시 노 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배가 강의 중간을 넘어서자 갑자기 강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사공도 선비도 위험할 지경에 이르렀다.이제는 사공이 선비에게 물었다.

 “저, 선비님. 선비님은 헤엄 칠 줄 아십니까?” 뜬금없는 물음에 “아니, 나는 그런 거 할 줄 모르네.”

 “선비님 저는 살아야겠으니 헤엄을 쳐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말을 남기고 강물에 뛰어들어 밖으로 나가 목숨을 건졌지만,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선비가 탔던 배는 풍랑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강물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선비의 모습을 보고 사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필자와 같은 층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모 사장이 내 사무실에 들어오더니 무슨 이야기 끝에 위와 같은 이야길 하면서 “많이 배우면 뭐하냐? 살고 죽는 문제에서는 배움이 무슨 소용이냐? 그러니 인생사는 것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는 일이다.”며 마치 도사 같은 말을 하면서 돌아갔다.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선비의 학덕學德도, 사공에 대한 무식함을 이야기함도, 그에 대한 선비의 거드름 피는 것도 아닌, 이 노 선비의 최소한의 자기 생존술生存術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다.

 

  이 선비는 철학과 문학을 이야기할 정도면 매우 학식이 높은 양반 집안의 노학자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평생을 그런 쪽에서 연구하고 공부해 사회적인 덕망을 쌓고 존경받으며 평생을 살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결정적으로 자신이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지 않았다는 데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많이 알고 있는 것하고는 현실은 냉철한 것이다.

 

 차라리 물어보지나 말지 뱃사공을 보고 이것저것 물었을 때 잠시 그보다 자신이 우월적 지위에 있어서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는 일이나 당장 살아나야 할 헤엄치는 기술. 즉 생존술을 익혀 두지 않았기 때문에 노선비는 모든 걸 잃고 사공으로부터 빈축을 사게 되었을 것이다.

많이 배워 가방 끈이 길면 무엇 하겠는가? 제 목숨 하나 구할 아무 방책도 없다는데서 머릿속에 든 내용물은 모두 허사가 되고 물거품이 되었으니 이 대목에서 선비의 배움과 사공의 수영기술을 비교해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가?

 

 노인정에서는 60세면 군대 계급으로 이등병이라고 한단다. 61세면 이등병 1호봉이다. 69세면 이등병 9호봉이라고 하니 나는 6학년 7반 즉 7호봉인 셈이다. 70은 일병.......,

 65세가 되어야 현행법상 노인으로 간주된다. 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할 수는 있어도 이때 노인정에 가 면 이등병 역할을 해야 한단다. 외곽청소는 물론 방 청소를 해야 한다. 문제는 60세에 노인정에 입대를 지원해도 받아주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러니 어디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다. 불편한 진실이다.

 

  또 서울대 출신 박사도 인기가 시들하다고 한다. 머릿속에 든 것이 많으니 대접받을 만도 한데 박사노인보다는 큼지막한 HD TV라도 한 대 기증한 노인이 좋은 앞자리에 앉아 우선 시청할 권리를 준다고 한다. 현실에서는 배움보다는 돈 있는 노인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배움이 쓰여야 할 곳에 있어야지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 무슨 쓰임이 있으랴?

 

  목욕탕에서 만난 노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아직까지 신용카드 쓰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자랑하듯 말하기에 얼른 말을 받았다.

  “뭐가 어려워서 아직도 사용법을 모른단 말이십니까? 한 번만 해 보면 누구나 다 알도록 되어 있으니 그리 해 보십시오.” 아무리 나이가 높다 해도 출신답지 않게 말을 하니 이해가 안가 약간 볼멘소리로 응했더니, 이번에는 또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노인들을 보면 저사람 무슨 멋으로 저 비싼 걸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교수님은 비싸서가 아니라 사용 방법이 서툴러 접근하기 두려워 그런 게 아닙니까? 아- 아이들 하모니카 하나 사주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며칠 안 돼서 지가 아는 노래를 곧잘 불어대는 걸 보세요. 갖고 있으면 용도에 맞게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얼른 신형 기기로 기변機變해 사용해 보세요.”

 

  위 노선비의 경우처럼 죽고 사는 문제를 다룬 생존술이라기보다는 현대를 사는 나이 든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여 그 타성에서 벗어나길 싫어한다. 편리한 도구나 기기의 사용은 그 사용법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지레짐작으로 겁부터 먹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모르겠으나, 사실 새로운 것을 알려고 하는 의지만 있다면 그 사용법에 있어서 스마트 폰 하나쯤은 하루 식전꺼리다.

필자가 꼭 고가의 폰을 사 사용해보라고 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반응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외손녀도 폰을 가지고 필자와 자주 소통하는데,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순진한 아이의 심성이 너무 아름답고 귀여운 생각이 들기 때문에 외손녀의 핸드폰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이 열린 것이다. 학생들은 거의 100% 폰과 함께 생활을 시작하고 폰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거의 중독처럼 떼어내려 해도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기기가 된지 오래 되었다.

  특히 지하철 내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손에 든 폰으로 나름대로의 이용은 물론 공원의 벤치, 휴게소, 시내버스 안, 어디서나 손에 하나씩 들고 다니며 메시지를 주고받고, 인터넷을 뒤져 동영상을 보는 것은 물론 심지어 걸어 다니면서까지 폰을 들고 이용하는 등 정보의 바다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많은 사람들을 도처에서 쉽게 볼 수 있다

.

  얼마 전까지 메시지를 보내면 읽고 쓸 줄을 몰라 금세 전화를 되걸어오는 모 친구를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이들한테 단 몇 분만 틈내 물어서라도 배워두면 편리하게 이용할 것을 이쪽에서 전화비 덜 들이려고 메시지로 보낸다고 오히려 볼멘소리를 했었다. 답답한 노릇이다.

정보화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의 생존술이랄 수도 있는 전자통신 기기의 사용은 익혀두면 일상생활에서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냥 그럭저럭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이용하지 않으면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실제 사실을 근거로 진리를 구한다는 옛말이다. 역기능이 있기는 해도 이제 피해갈 수 없는 정보화 시대에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편리한 기기를 멀리 해서는 현실에서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작은 핸드폰 하나에서 내 생활의 전부가 시작되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그 기능에 대하여 익혀 둘 필요가 있다. 단순히 통화만하고 메시지나 주고받는 초보적 순기능을 떠나 지금보다도 더 많은 정보가 함축되어 손안의 폰으로 들어올 것이니 이런 기능을 잘 이용해야 한다.

 

  즉 통신기능을 떠나 리모컨 기능이나 고화질의 CCTV기능까지 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TV, 냉장고, 에어컨, 보이라 등의 온 오프 등 가전제품 모두를 집 밖에서 폰 하나로 작동시켜 운용할 수 있고, 집 안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밖에서도 그들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날로 이용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 폰뱅킹만 해도 그렇다. 은행에 나갈 필요 없이 있는 곳에서 몇 번의 키 판 조작만으로 은행 간 이체와 입출금 사실의 확인이 가능한 시대가 곧 보편화 된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하면 점점 더 캄캄해진다.

 

  새로운 정보가 있으면 보고 배워두자. 언제까지 자식들이나 남이 해결해 주지도 도와주지도 않는다.

폰은 물론 가지고 있는 컴퓨터나 전자기기의 프로그램 등은 항상 업그레이드해 두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 이렇게 함으로서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어 생활이 편리해 진 삶을 맛볼 수 있다. 부수적으로 얻는 것도 있다. 무엇하나 배우려 들면 대뇌의 활동이 왕성해 지므로 치매예방에도 일조를 할 것이다.

 

  정보의 접근에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히 자판을 두들기든가 눌러보자. 그러면 무엇이건 열릴 것이다. 열린 정보는 내가 이용하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 아랫사람들에게 묻는 일은 수치가 아니다. 모르면 알 때까지 물어 익혀 배워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잘 묻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준다. 통하고자 하는 사람과는 정보를 서로 공유해 보라. 통하면 서로 최소한 관계는 유지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상대가 지구촌 어디에 살고 있어도 가능해 진다. 꼭 집에 찾아오고 찾아갈 필요가 없어도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소통이 가능한 시대이니 이 얼마나 편리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가?

  필자는 미국에 사는 며느리와 카카오 톡이나 영상전화를 통해서 거리나 국경을 초월하여 마치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면서 지낸다.

 

  극지 탐험이나 고산 등반 등 극한에서의 생존의 기술이나 군인이 전장戰場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소 생존술을 익히는 것 등은 모두 정해진 소수의 사람만이 살아남기 위해 익히는 특수한 기술이랄 수 있다.그러나 너무 거창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생활 속에서 편리한 도구를 이용해 더 편리함을 추구하는 기술도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이 배워 익혀야 할 하나의 생존술이랄 수 있는 것이다.

 

  애완견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개는 주인이 아무리 혼을 내도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자기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걸 볼 수 있다. 나무랐던 주인에게 원망은커녕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돌아서서 온갖 애교를 떠는 것은 물론, 애절한 눈빛으로 애걸 복걸하는 것도 모두 다 어찌하면 주인으로부터 더 많은 먹거릴 얻어먹을 수 있는가 하는 그의 생존술인 것이다. 단순한 것이다. 개는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 기술이 생명을 부지하는 개의 원초적 생존전략인 것이다.

 생살여탈生殺與奪할 수 있는 사람은 개가 그렇게 해야 그를 사랑하고 개는 그 대가로 인간에게 빌붙어 생명을 부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각에 달려있는 목숨을 살리기 위한 결정적 순간에서 생존기술을 어떻게 발휘하여 살아남느냐 하는 일은 고스란히 자신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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