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 어버이날에
"부모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도 넓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래전에 부모님을 여인 지금, 그 말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요동치듯 밀려오는데, 꽃다발을 받아들고 자식과 손자를 그리워하고 있는 속마음은 꼭 기쁘지만은 아니하니 영가靈家에 계신 부모님께 송구스런 마음뿐이다."
2015.5.10
어버일 모시고 있든 돌아 가셨던 간에 부모님을 잘 봉양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날인데, 언제부터인지 필자는 뭐 이런 날을 부담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님 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날이 되면 당시 나의 마음을 지금의 자식들이 그럴 것이란 지레짐작으로 그들에게서 뭘 바라는 것 같아 마음 편치 않게 생각되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며칠 전 아내도 허리 수술을 하여 입원 치료 중이라 이런 저런 핑계로 마음이 편치 않아 근교 낚시터에 앉아 있는데, 이곳에서 자주 만나는 젊은 아버지들도 가슴에 꽃이나 리본을 달고 낚실 하는 모습들이 예전같이 안 느껴진다. 낚실 하는 중에도 어버이날의 생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서로들 이야길 하고 있는데 전화음이 들려왔다.
이 시각에 전화 올 데가 없는데 혹시 집사람 전화인가 싶어 떡밥이 잔뜩 묻은 손가락으로 얼른 전화길 들어 보니 잘 모르는 전화번호가 팝업 창에 떴다.
요즘 보이스 피싱이 흔해 잘 모르는 전화번호는 전화 받기가 두려울 정도라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연결을 하였더니 택배기사라고 했다.
웬 택배물품인가 싶어 확인한 바,
“보니까 김영태, 최영남님이 보낸 꽃다발인데요. 댁에 아무도 안 계시네요. 어떻게 할까요?”
“네,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가세요. 고맙습니다.”
어!, 어버이날이 이틀이나 남았는데, 벌써?
생각을 하며 낚시에 집중하고 있으니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듯이 계속 입질을 해대는 씨알 좋은 떡붕어가 낚여 손맛을 전달해주니 마냥 예쁘기까지 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카친들로부터 ‘꽃다발로 퉁칠 생각마라. 2015.5.8.―우리엄마’라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는 사진이 배달되어 웃었던 적이 있었는데,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꾼들도 이 카카오 톡의 내용을 봤다고 하면서 일갈했다.
즉 꾼들도 이 어머니의 의중意中과 같이 ‘꽃다발로 때우지 말고 현금으로 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Door to Door라는 신개념의 물류운송수단은 70년 대 까지만 해도 낯설게 느껴졌었는데, 요즘은 글로벌시대가 되어 세계 어디에서건 국내처럼 물건을 택배라는 빠른 수단을 이용하여 바로 문 앞에서 주고받는 일이 보편화 된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여러 방면에서 세상 사람들의 삶조차 업그레이드된 듯하다.
해가 기울은지 한참이나 지난 오후 늦게까지 다른 날보다 손맛을 많이 봐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현관 앞에 덩그마니 놓여 진 꽃다발을 들고 인기척이 없는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휑한 집안 분위기이기도 하거니와 뜬금없이 생전의 부모님 생각이 나 먼저 가슴이 아려왔다.
생 카네이션 꽃과 생 장미꽃이 반반 섞인 꽃다발엔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아들과 며느리의 이름이 적힌 리본이 나란히 달려 있었다.
우선 낚시장비를 챙겨 놓고 잘 받았다는 말을 전하여야 하겠기에 화환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 카카오 톡으로 보냈더니 얼마 있다가 며느리로부터 답신이 왔다.
“리본에다 아들, 며느리라고 써서 보낼 걸 그랬어요, 후회돼요. 아버님!”
“그래, 그래도 괜찮다.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기분은 좀 거시기 했다.
꽃다발이야 국내 어느 꽃집에서 보내왔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국적은 달라도 몸속에 흐르는 피는 어쩔 수 없으니 그래도 제 부모라고 머나 먼 타국에서까지 신경 써주니 부모로서는 고맙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한 편 나는 내 부모에게 꽃다발을 한 번도 보내 본 적 없고 이젠 또 그럴 수도 없으니 이런 상황에서 마냥 기뻐해야할지 어떨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거자일소去者日疎라더니 돌아 가신지도 오래되었지만, 자꾸만 부모님 생각도 멀어지는 것 같아 이런 날 부모님 생각이 일 때마다 불경스런 마음만 먼저 난다.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이니 안 계신 부모님을 위해 지금 와서 뭘 어쩔 수 없어서 그런지 그냥 추억으로 굳어진 지난날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눈을 감으니 이 맘 때 벗 삼아 기르던 강아지가 처다 보는 가운데 행여 자식들 중 누구라도 오지 않을까 기다리며 마당 한 구석 텃밭을 일구시던 생전의 어머님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 올해도 상추가 어머님 사랑 먹고 잘 자랐네요, 보리밥에 고추장 넣고 싹싹 비벼 먹고 싶어요.” 생전, 물론 나름으로 먼 길 찾아뵙고 능력껏 도와 드리는 등 하노라고 했었지만, 그건 내 방식대로 행하였을 뿐 부모님 마음을 어떻게 다 알리요.
평소 필자의 생각은 가효국충家孝國忠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지론인데, 家孝하는 길이 그 때와 지금이 다른 시대이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해마다 특히 이 맘 때가 돌아오면 참으로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어머니, 아버지!”
고개를 들어 보이지 않는 허공에 대고 조용히 불러 본다.
꿈속에서라도 한 번 뵈었으면, 그래서 다 못 드린 말씀이라도 나눠봤으면..........,
공허한 메아리만 집안 가득한 느낌이다.
부모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도 넓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래 전에 부모님을 여인 지금, 그 말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요동치듯 밀려오는데, 꽃다발을 받아들고 자식과 손자를 그리워하고 있는 속마음이 꼭 기쁘지만은 아니하고, 영가靈家에 계신 부모님께 송구스런 마음뿐이다.
자식은 부모의 울타리라고 하는데,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잘 못한 점만 생각이 나니 송구스러운 생각이 그리워하는 만큼이나 끊임없이 인다.
아내도 허리 수술을 하여 며칠째 불편한 몸으로 몸 저 병상에 혼자 누워 있는 때, 탁자위에 덩그마니 놓여 진 카네이션 꽃다발이 낯설게 보이니 오늘따라 그 향기만큼이나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게 느껴지는 어버이날이다.
고려장高麗葬할 어머니를 꽃구경 가자며 등에 업고 길을 나서는데, 이를 눈치 챈 어머니가 숲길에 들어서자 말을 잃고선 자식이 돌아갈 때 길 잃지 않도록 가는 걸음에 솔잎을 뿌린다는 내용의 가수 장사익 씨의 노랫말처럼 부모는 죽는 날까지 그저 자식들의 안녕을 바랄뿐이다.
“그래. 아들아, 딸아! 이제 너희들 세상이니 가족들과 함께 보람 있게 잘 살아보렴.”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께도 삼가 큰 절 올립니다.♣
'자전적 수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배신背信 (0) | 2015.12.15 |
---|---|
2015 영호남(수필)문인회 행사ㅡ의장 표창장수상 (0) | 2015.09.16 |
◇ 자화상 (0) | 2015.04.27 |
◇ 새만금 방조제 (0) | 2015.04.21 |
◇ 부산, 부산생활 40년. (0) | 2015.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