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수필,시

◇ 거기 있어서 아름답다

이원아 2011. 11. 14. 12:05

 

                                    거기 있어서 아름답다.  

 

                “사람이나 미물微物이나 제 각각 있어야 할 곳에서 제 할 일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고 거기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데, 의당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당연히 없어야 할 곳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직간접으로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심기心氣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2011.11.10

 

 

                                                     <무리지어 핀 구절초 꽃>                                 

                      

▽ 구절초 꽃 무리

  요사이 단풍 구경하느라 야산의 둘레길이나 들판길을 걷다 보면 구절초 같은 많은 야생화野生花들이 한창 피어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날 좀 봐 주십사!”하듯 함초롬히, 아님 무더기로 무리지어 피어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때마다 이 꽃들이 여기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면 이처럼 아름답게 보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 번 더 처다 보게 된다.

  대부분 허리를 구부리고 가까이 처다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은 이름 모를 다양한 들꽃들이 원래부터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어쩜 이런 척박한 곳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특색 있는 모습으로 사람을 반겨 줄까를 생각하면 자연의 조화에 대해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예쁘기로 말하자면 가장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자연적인 순수純粹함. 그 자체이고 누가 봐 주길 원하지도 않지만 그것들은 자연의 생태리듬에 맞춰 꽃을 피워 놓고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다가 번식을 하고 윤회輪廻의 법칙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들꽃들은 향기가 있든 없든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나름대로 역할을 묵묵히 행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거기 있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고향에 주요행사가 있어서 들르는 길에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달리다 보니 자동차 앞 유리 너머로 보이는 노란 순색의 이파리들이 온통 얼마나 곱게 물들었는지 내 얼굴조차 금세 노란색으로 물들이려는 듯해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나는 길이 평소 지날 때와 다르게 단풍으로 물든 고향의 정취가 매우 아름다웠다. 어디에 가도 은행나무는 있을 테지만, 이날따라 내 고향에 줄지어 서있는 은행나무 단풍 가로수는 달라 보였다. 그 은행나무가 한적한 지방도地方道 고향 거기 가로수로서 줄지어 서있기 때문에 나와 같이 고향을 찾기 위해 그 곳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고향길이라는 그 맛을 눈으로 보며 가슴으로 담아 가게 한 것이다.

  어디 그 은행나무뿐이랴! 비록 하찮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일망정 고향에 있는 그것들이 더 아름답게 느껴져 정감이 가는 것이다. 유년 시절이 생각난다. 고향마을에 들어서면 맨 먼저 반겨주는 늙은 둥구 나무가 우뚝 서있고, 학교 를 파하고 오는 때 “할머 이!-”하며 사립문에 들어 서자마자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가 어디 있는가를 찾아 따먹었고, 할머니께서 그런 나를 덥석 끌어안은 채 웃으시며 앞주머니 속에서 한 움큼 꺼내주시는 풋대추를 아삭 아삭 깨물어 먹는 맛도 그지없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고향을 생각하면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답게 보인다. 그래서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이 고향이라고 했다. 당장 눈을 감고 고향을 바라보면 내가 좋아하는 곳곳을 오르내리며 뛰 놀던 놀이터가 있고, 배고프면 캐먹던 풀뿌리나 나무 열매가 있어서 따먹던 것들이 항상 나를 반겨준다. 이런 추억어린 것들이 거기 있기 때문에 어릴 적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잠시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니 나이 들어 생각하는 고향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대체적으로 정리정돈을 잘 하는 편이다.

  집무하는 책상 위도 그렇고 내가 쓰는 가재도구도 그렇다. 주로 조구釣具들이 많지만 있어야 할 곳에 잘 정리해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곤 한다. 밤 새워 낚실 하다가 비라도 맞은 채 돌아오는 경우는 정말 할 일이 많다. 텐트 같은 큰 장비는 아파트 집안 어디 펴서 말려야 할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보통일이 아니지만 미루지 않고 물기를 잘 닦아 말려 정리한다.  자동차 안도 그렇다. 가능하면 깨끗이 청소하고 있어야 할 곳에 소품을 잘 정리하며 타고 다닌다. 보통 낚시꾼의 차 안은 지저분하기 일쑤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리 피곤해도 세차洗車부터 하고 쉬어야 직성이 풀린다.

결론적으로 정리정돈을 잘 한다는 것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아름답고 늘 있을 곳에 있어야 다음에 쓰기에 불편함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낚시터에 앉아 밤낚시를 하면서 밤의 조경釣景을 감상해 보라. 나는 낚시 마니아Mania이기 때문에 물가에서 낚시하며 지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아무리 고기의 입질이 없어도 지루함이 없이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

수면은 수면대로 가만있질 않고 바람 이는 대로 물결이 일고, 수생동물水生動物들이 뛰노는 대로 움직이면서 또 다른 모양으로 변하기 때문에 나의 시선을 빼앗는다. 밤 깊어 적막감이 흐르는 때 입질을 기다리며 조용히 앉아 사색하는 동안. 스산하기만 한 적막한 산 속이나 주변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르는 이름 모를 산새소리와 함께 울어대는 풀벌레 소릴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치 지휘자와 짜고 하는 교향곡처럼 하모니가 되어 아름답게 들리는데, 그들이 거기 있기 때문에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조사釣士들에게는 이런 소리조차도 정감어린 밤 조경釣景의 일부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아프리카 대평원에 갈기가 무성한 사자의 포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거나 황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없는 상황을 그려보라. 시쳇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요 물 없는 사막’이니 누가 그런 상황을 아름답다고 말할 것인가?

  사람과 함께 대자연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신이 점지點指해 준 자리에서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순응해 가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인가!

  가족이라는 것은 부모형제 무탈하게 구존具存해 있는 구경具慶의 처지에 있어야 축복받을 가정이라고 하는데, 나야 이제 부모님은 물론 형제도 몇 명 돌아가셔서 안 계시니 그런 처지는 되지 못하나 내 자식들 입장에서 보면 혈연들이 제 자리에 다 있으니 나름대로 행복한 시절임에 틀림없다.

  한 세상 살아가면서 내가 어느 곳에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잘 가고 있는지 어떤지를 한 번 체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고 편안한 길이라도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으면 그것은 아름답지 못한 일이다. 보기에는 쉽고 아름다운 길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더라도 달콤한 유혹에 빠져 그 길로 접어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처럼 자기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손자가 병법에서 도유소불유塗有所不由라는 말로 군대가 가야할 길을 가르치고 있다. 즉 길에도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다는 말인데, 군대를 행군함에 있어서 절대로 가서는 안 될 길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쉽고 편안한 길처럼 보여도 그 길로 들어서는 순간 적의 복병伏兵이 기다리고 있거나 예상치 못할 곤경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잘못된 판단에 의해 그런 길을 선택하였다가는 병사들의 목숨을 잃게 되고, 패배의 쓰라림을 맞보아야 한다. 장수將帥는 이럴 때 신중을 기하여 가야할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멀어도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해법일 수 있다는 우직지계迂直之計의 교훈을 손자병법에서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우회迂回하는 것이 곧장 가는 것보다 오히려 빨리 갈 수 있다는 전략인데, 비록 돌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결국 그것이 이익이 되고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병법으로서의 가야할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지금 어디 가야할 길에 서있다면 바로 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를 판단하여 옳게 가는 길을 택하여야 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사람이나 미물微物이나 제 각각 있어야 할 곳에서 제 할 일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고 거기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데, 의당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당연히 없어야 할 곳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직간접으로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심기心氣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업역業域까지 침범하는 기업행위나, 받아서는 안 될 부정한 돈을 받는 공무원들. 본인의 처지도 모르고 가서는 안 될 정치의 길로 들어선다거나, 해서는 안 될 사업을 무리하게 시작하는 것. 교편敎鞭을 잡고 있는 선생이 가르치는 일은 소홀히 하면서 걸핏하면 시국선언時局宣言이나 하고, 학생들은 교실에 있지 않고 게임장에서 빠져있는 것. 요행을 바라고 사행성 도박장을 드나드는 중독성 도박자. 보편적 진리의 삶을 살지 않고 혼자 가족과 사회를 떠나 깊은 산 속에서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면서 색은행괴索隱行怪하는 자칭 도사.  부지런만 하면 먹고 사는 일이 가능한데도 아무렇게나 득과차과得過且過하면서 지내는 노숙인들. 몸은 자유민주주의 지역에 살면서 사상은 북을 찬양하는 종북從北 세력들. 자신이 몸담고 다니는 회사야 망하든 말든 툭하면 떼를 지어 거리로 뛰쳐나와 제 밥그릇만 챙기려 드는 근로자들. 국고보조를 받아 운영하면서 현실정치에 가담하여 세력을 키우려 하는 시민단체들. 국가의 중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등장하는 괴담항설怪談巷說을 거르지 않고 믿으려는 2040세대들...........,

  비록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지만, 아무리 궁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아무리 가난해도 취해서는 안 될 것이 있는 법이다. 이 분별을 잃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아 지탄의 대상이 된다. 비록 당장 오감五感이 즐거워 재미가 있다거나, 금전적으로 이익이 되거나, 명예와 권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제 자리에 있지 않아 생길 수밖에 없는 부작용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고 후회만 남는 것이다.

  사람이 눈앞에 놓인 화려한 길을 보게 되면 금세 눈이 멀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사리事理가 분명하던 사람도 판단이 흐릴 때가 있는 모양이다.  정말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가지 않는 지혜가 아쉬운 때인데, 내 짧은 식견으로 보기에는 요즘 모라는 사람을 정치판政治板에 끼어들도록 판을 짜려는 모양새는 이 사람을 뭔가 잘못 가는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서울대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장 자리에 있기 전에 안철수연구소에서 V3백신을 개발 보급하여 컴퓨터기술의 보안부분에서 두각頭角을 나타낸 공로는 인정할 수 있지만, 그가 꼭 정치판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느냐하는 부분에 가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원래 그런 사람은 거기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명한 처사處事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꼭 온갖 비리로 혼탁한 집단의 무리에 끼어들지 않더라도 국가나 사회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 원래부터 하던 대로 교수로서 학자로서 후학後學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름다운 길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내가 노파심老婆心에서 하는 이야긴지 모르나 바닷물에서 헤엄을 치다 보면 제 아무리 그걸 마시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어느 정도의 짠물이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피할 수 없음을 누구나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염된 정치판에 젊고 신선한 한 사람의 피가 수혈되면 무언가 새 바람이 일기도 하겠지만, 반면에 우리사회는 또 한사람의 학자가 일부러 오염된 탁수濁水를 마시러 들어가는 것 같이 보여 염려가 되는 것이다.

누가 좀 말려 줄 사람 없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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