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의 이심이체론
“내가 늘 주장하는 것이 ‘따로국밥이론’이다. 국과 밥이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서 독립되지 않으면 국과 밥이 섞여진 ‘국밥’은 전혀 다른 음식이 되는 것과 같이 부부라는 사회의 윤리적 틀 속에서라도 너는 너 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를 독립적으로 인정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이론이다. 2012.07.09
모 일간지에서 읽은 기사를 편집한 내용이다. 어떤사람이 비행기 사고로 부인과 아들을 잃고 시름에 빠져 죽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말 죽어도 되는가를 물어보기 위해 어느 유명한 구명시식救命施食전문 법사를 찾게 되었다.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열심히 살아줬던 아내를 위해 정말 큰마음 먹고 보내준 여행길이었는데 그만 그것이 마지막 생이별이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부인은 여행을 가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않아 그걸 타는 것 자체도 두려워했다고까지 했단다.
달가워하지 않은 이런 부인을 억지로 떼밀다시피 하여 여행을 보냈는데, 아들과 함께 부인을 한꺼번에 잃었으니 그 상황에 처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의 망연자실茫然自失한 마음을 누가 그 속마음을 알리 있을까? 꼭 죽이려고 일부러 보낸 것처럼 죄책감 때문에 도저히 세상 살 마음이 안 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고 싶은데 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대답이나 속 시원히 듣고서 결정하려고 그를 찾아 갔는데, 이야길 다 듣고 난 법사法師가 하는 말이 대뜸 죽으라는 말을 하더란다.
막상 그런 말을 면전에서 듣고 난 이 사람은 당황한 얼굴로 그 법사의 눈을 처다 보며 다시 물었다.
“정말로 죽어야 합니까?”
“P선생님, 세상을 다 품어 보셨습니까? 그러면 죽으십시오. 세상을 다 살아보지도 않고 어째서 생을 포기한단 말입니까? 어쨌거나 부인을 한 번 만나 보십시다.” 곧바로 시식施食 의식에 들어갔다. 본의 아니게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은 아내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아마 매우 낙담한 표정으로 울고 있을 것이란 예단을 했다. 그러나 막상 빙의憑依가 시작되자 부인이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다.
“여보, 너무 그렇게 슬퍼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 없는 이곳이 너무 행복해요. 당신이 껌 딱지처럼 달라붙어 나와 아들을 너무 간섭했기 때문에 당신과 함께 사는 동안 지옥 같은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여기가 너무 좋아요. 그러니 당신도 날 잊고 행복하게 잘 사세요.”
함께 죽은 아들도 제 엄마가 하는 이야길 곁에서 들으며 계속 싱글거리고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 말을 듣자 그 반대일거라고 생각한 이 사람은 죽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한 마디로 “너나 잘 사세요”라고 하는 식이니 기가 막혔다. 내가 아내에게 잘 해 준 것만 생각하고 아내도 좋아 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가 의외의 말을 듣고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황당한 생각에 순간적으로 머리가 혼미해졌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집착과 편협 된 생각, 즉 편견偏見은 엉뚱한 결과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예로 생각하면 된다.
내가 늘 주장하는 것이 ‘따로국밥이론’이다. 국과 밥이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서 독립되지 않으면 국과 밥이 섞여진 ‘국밥’은 전혀 다른 음식이 되는 것과 같이 부부라는 사회의 윤리적 틀 속에서라도 너는 너 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를 독립적으로 인정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이론이다.
부부가 서로 연을 맺고 한 집에 살고 있지만 함께 살뿐이지 내 인생을 살아 주지는 않기 때문에 부부는 이심이체二心二體라는 말이 맞는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내가 또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세상을 산만큼 산 사람에게 물어 보라.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 속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기 때문에 밖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속내는 이심이체가 맞다 고 말할 것이다.
부부가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말은 구시대의 가부장적家父長的인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여자가 무조건 남자의 말에 순종하니 남편 의견이 곧 부부의 의견이 되었기 때문에 착각을 한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무슨 일을 부부가 의논해서 목적을 이뤘다고 해서 일심동체를 뜻하진 않는다. 그냥 의견의 일치 일뿐이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생활하는 걸 알 수 있듯이 서로 다른 사람이 부부로 만나 한 집에 같이 산다고 해서 한사람의 몸과 마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생활과 인간적인 삶을 사는 것 하고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생각은 나와 다르니 항상 상대의견을 물어 보고 존중하고 맞춰가는 생활이 부부일심동체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 삶은 그렇지 않다. 매사에 어떻게 생각을 같이 할 수 있으며 어떤 일이던지 함께 행동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부부는 이심이체를 전제하고 생활해야 원만한 부부생활이라는 것이 나의 주장인 것이다. 이것이 진실한 속마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숭을 떨고 있는 것이다. 본래는 각자 자기 위주의 삶을 살려고 한다.
내 것은 물론 내 것이고 너도 또한 나의 것이라는 욕심과 편견이 깊어지면 집착執着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늙은이들은 잔소리가 는다.
다중지능이론의 창시자인 하워드 가드너(1943년생.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유아기幼兒期 때 생각의 틀이 가장 유연하며, 나이가 들수록 굳어지기 때문에 바꾸기 힘들어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늙어 갈수록 고정관념이 늘어나는 탓이란다.
말하자면, 나이를 먹으면 그럴수록 기존의 경험이 굳게 뿌리를 내려 새 정보가 들어오는 것에 한사코 저항을 하기 때문에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나치면 앞뒤를 분간하는 사리판단의 능력이 흐려진다. 남의 이야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착각하면서 막무가내로 고집하려 든다.
위의 예와 같이 나의 편견으로 인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은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인 것이다. 생불여사生不如死라.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니 우리 속담에 ‘앓느니 죽는다.’는 말과 같다. 현재 몹시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음을 뜻한다. 망자亡者가 된 아내는 남편에게 간섭을 너무 받아 옥죄며 마지못한 현실을 그렇게 사느니 오히려 죽어 마음편한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했는데 입장을 바꿔 놓고 상대의 입장에서 나를 보면 남편이 아내인 자기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도록 집착하여 강요했으면 이승에서의 억울한 죽음을 전혀 슬퍼하는 내색 없이 저승에서 저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빙의 되었을까?
누가 착각하면서 살았을까? 이성과 감정, 생각과 실천, 예측과 결정 등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동기動機와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작은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상대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겉과 속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잘 알 것 같으면서도 잘 알 수 없는 것이 또한 부부지간인 것이다. 혼자 자기 속으로 착각하고 사는 걸 누가 말할 수 없는 것이니 그냥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착각하면서 맞춰 사는 것이 부부사이고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에게 잘 해 줄 땐 항상 그렇게 해 줄 것이다라는 착각에, 내가 이렇게 해도 저 사람은 다 이해할 것이다라는 지레짐작에 한 번 굳어진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살아온 삶이 돼버리면 남는 것은 외로움뿐이다.
착각은 단순한 지각상知覺上의 실수이기보다는 부정확한 인지능력을 유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착각은 외부의 지각 자극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환각과 구별된다고 하는데 뭐 그렇게 딱히 금을 그어 놓고 구별할 필요 없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부부사이라는 걸 서로 인정하면서 살면 마음 편하지 않을까?
따로국밥이론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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