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이크 없는 인생열차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인생열차를 타고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여행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기억들을 남겨줘야 한다. 남들에게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절대로 남을 해하지 말고 오히려 용서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2015.10.29
지구상의 생명체는 모두 이 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법칙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고칠 수도 없고, 불평도 할 수도 없는 확고부동한 하늘이 만들어 지구상의 생물들에게 내린 천칙天則이다. 생로병사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궁금해 하는 의문점이기도 하다.
‘사람은 왜 태어나 늙고 병들며 결국 죽음에 이르는가?’하는 문제를 풀어 준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종교라는 분야에서 영적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어느 한 부분도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것은 하늘의 영역이지 인간의 한계점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즉, 신이 영역이지 인간의 범주가 아니란 것이다.
필자는 카친(카카오톡 친구)들이 많은 편이다.
어디서 그런 좋은 글들을 퍼 나르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름답고 좋은 내용의 글들을 퍼다 카톡으로 전해주기 때문에 문학공부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 오늘은 ‘인생은 기차여행’이라는 제목의 글이 흥미롭다. 인생 열차는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행로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 기차의 목적지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지만 인간들은 이를 간과하려 든다.
이 기차는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명제를 완수하기 위해 승객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싣고 가면서 생로병사 중 마지막 종착역인 ‘죽음’이라는 역驛까지 군말 없이 태워다 주도록 설정되어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 부모님이 쥐어준 차표 한 장을 들고 무작정 인생 열차에 올라 자신의 인생길을 개척하면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기차에 올라타 한 참을 지나왔을 때는 부모님은 나와 함께 타고 갈 줄 알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간다는 말도 없이 나를 두고 내리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남아 있는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는 허무와 인생무상을 배운다.
어떤 땐 정말 보고 싶으나 꿈속에서조차 보이질 않으니 외롭고 고독할 때가 있다.
내가 타고 싶어 타는 기차도 아니고 그야말로 멋모르고 타고 가는 여행길엔 역이 있어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길을 향해 달려간다. 인생 기차는 운명대로, 정해진 차례대로 한 번 내리면 두 번 타는 법을 용납하지 않는다. 왕복표를 팔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걸복걸하여도 들은 체 만체하며 달린다.
지구상의 어느 것을 주고라도 다시 탈 수 없고 내릴 역을 선택해 내릴 수도 없다.
승객으로서 기차 내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관계하고 있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 친구, 이웃이요, 동료들인데, 그들 중 누구라도 먼저 내리면 다시는 영영 볼 수 없는 불귀不歸의 객이 되고 만다. 경우에 따라서는 먼저 내린 하객下客이 누구인지 알고는 있지만, 내리지 말라고 만류 할 수는 없다. 누가 어느 역에서 언제 무슨 사연을 갖고 먼저 내릴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필자의 승객 중 확실 한 것은 부모님들은 먼저 내리신지가 꽤 오래되었고, 형님과 누님도 먼저 내리셨는가 하면, 몇 년 전 친한 친구 몇도 이미 내렸다. 필자도 이제 망칠望七의 나이라 살만큼 살아 오랫동안 이 기차를 타고 왔으니 장거리 여행을 할수록 함께 타고 가던 승객들이 먼저 내려 그 수가 점 점 줄어드는 걸 본다.
필자가 ‘인생, 너 뭐냐?’고 묻는다면 그리 쉽게 대답할 질문이 아니지만 필자는 ‘그거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인생 그렇게 훌쩍 내려버리면 부와 명예, 사랑과 미움, 유식과 무식함이 다 무슨 소용이랴 싶을 것이다. 그렇다. 정말 인생 아무 것도 아니다.
필자도 작년 이맘때 악병惡病에 걸려 병상에 누워있어 보니 세상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나만 병에 걸려야 하는 지가 야속했고, 원망 섞인 자조自嘲도 하며 고독과 운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 보아서 중환자들의 심리상태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은 아마 그도 혼자 삶의 종착역에 이르기 전이니 생명줄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낮이나 밤이나 불안과 공포 그리고 고독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사이후기死而後己라. 결국 고독은 죽어야 낫는 병일 것이니 그 고통과 고독마저도 자신이 풀어야 할 몫이지만, 생의 애착이 얼마나 클까를 우리가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의 운명대로 내려야 할 정거장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내려야겠지만, 타고 있는 다른 승객들만 단지 대안 없이 슬퍼만 할 것이다.
죽음에 이르면 돈이 많고 적음이 문제되지 않을 뿐더러 명예나 귀천을 구별하지도 않고 운명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
인생을 알 만큼 나이가 들면 무거운 짐 진 사람이나 가벼운 짐 진 사람이나 다 결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자득自得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공空인 것이다.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
내 하나 먼저 내린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뭐 달라질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참으로 슬픈 일이다.
단지 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함께 타고 있던 가족들이나 친구 몇 몇이나 슬퍼할 것이고 그를 통해서 또 다른 인생무상의 허무함을 느낄 것이다.
내 곁에서 먼저 내린 사람도 거자일소去者日疎이니 세월이 가면 그의 죽음마저도 잊고 살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먼저 내린 그를 두고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왕 중도에 내린 사람은 그렇더라도 아직 먼 길을 가야하는 승객의 입장에서는 남은 여행, 즉 자신의 삶을 위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TV매체마다 생로병사에 관한 많은 의학이나 건강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뭣이 좋다고 그대로 따라할 사람이 몇이나 되며, 어느 정도는 긍정적으로 이해는 되는 일이지만, 그런다고 자신이 내려야 할 정거장을 스쳐 지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 나이가 들면 느느니 약봉지’라는 말이 필자와 같은 세대들에게도 적용되는 소리이니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늙어가기 위해서 약을 먹지만, 약봉지를 보고 한심한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결국에 가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운명대로 정해진 역에서 홀로 내려야 할 숙명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 참 허무한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는 말. 참 많은 걸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나이 든 세대는 인생 허무가 너무 크게 와 닿음을 알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충고를 해도 듣지 않고 오히려 늙어보지 않은 젊은이 자신은 늙지 않을 것 같이 어른들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태도가 불만스러워 일갈한 말일게다.
인생열차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그 속도가 더 빨라지니 나만 짧게 살아 온 것처럼 후딱 지난 세월에 대해 허무가 느껴지더라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가는 세월이 짧게 느껴지는 사람은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란다.
‘세월은 고장 나지도 않냐?’고 원망해봐야 소용이 없다.
내 인생열차는 브레이크 없이 달리다가 딱 한 번 멈추면 그것으로 끝이다.
브레이크장치 없는 자동차는 한 발짝도 길 위를 달릴 수 없지만, 세월에는 그 장치조차 없으니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것이 참으로 한이다.세월은 쉬지 않고 달려도 고장 나지 않는다. 속도도 줄어들지 않는다. 한 해가 잘 가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젊은이이고, 한 해가 후딱 간다고 느껴지면 늙은이다. 세월을 느끼는 속도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달려온 세월에 비례해서 탄력 붙은 내리막을 달리는 자동차처럼 오히려 더 빨라짐을 자주 느끼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나이 듬을 인정해야 마음 편해진다.
그러니 내 사정 안 봐주고 달리는 세월 잡으려 들지 말고, 오늘까지 잘 태워다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행하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과 나눈 희로애락을 공유하며 오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누구는 오늘 하루를 더 살기 원하던 사람도 있지 않던가?
“나는 숨쉬기 운동밖에 할 수 없지만 그거라도 열심히 하면서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겠다.”는 카친의 우수개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려야할 때가 되면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그 의욕만은 좋다고 댓글을 달아줬다.
자신이 내려야 할 정거장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같은 인생길에서 만난 다른 승객의 말을 경청하되 이견이 있으면 조정하고, 용서하며,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최상의 것들을 승객들에게 남겨 주어야 한다.
나와 동행하는 승객들과 함께하는 좋은 여행이란, 모두와 호연관계를 유지하면서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편안하고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배려해 줄때 내 인생여행도 즐거운 것이다.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인생열차를 타고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여행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기억들을 남겨줘야 한다.
남들에게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절대로 남을 해하지 말고 오히려 용서하고 포용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인생열차를 타고 출발할 때나 종착역에서 내릴 때, 결국 가지고 온 것이나 가져갈 것이 아무 것도 없더라도 마지막까지 타고 가는 내 인생열차에 동승同乘해준 소중한 한 명이 되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카톡에서,
“내가 내려야 할 역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를 전하려고 합니다.”라는 종장終章의 말이 길게 여운을 남긴다.
거듭되는 말이지만, 생로병사는 인생열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 모두에게 반드시 적용되는 천칙이기 때문에 종착역에 내릴 때까지는 한 인생으로서 후회 없도록 매사진선每事盡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인생 삼여三餘라. 즉 인간은 한 평생을 살면서 행복하려면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 년은 겨울이 여유로워야 하며,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행복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늙는 과정을 거처 병이 들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종착역이 가까워 오는 나이가 되면 단지 노년이 여유롭기는 해도 사후 세계를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섭다는 생각을 먼저 갖게 되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단지 그냥 종착역에서 내려서서 뒤 돌아볼 수 없는 다른 세상, 즉 저승의 어디 영가靈家에서 살게 된다고 막연히 여기고 있을 뿐이다.
시사여귀視死如歸라. 누가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불가에서는 그냥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듯 편하게 여기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중생들은 그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회고하건대 필자의 인생기차 여행 중 다행인 것은 어려운 여건을 불구하고 부단히 노력하여 어느 정도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명예도 얻어 평범하게 잘 살아 왔다는 점이다.
특히 자식들을 제 할 일하며 살 수 있도록 내 인생기차에 태워 함께 달리고 있는 부분은 보람이었으며, 지금은 행복한 노년의 여유로운 여행 중이라고 자족自足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도 생로병사의 천칙에 따라 내 인생열차에서 내리고 나서도 그때까지 승객이 되어 준 그들이 무병, 무탈하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잘 살아 가길 소망하면서 가능한 즐거운 여생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다.♣
'자전적 수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세인생 (0) | 2016.04.01 |
---|---|
◇낚시-그냥 즐기면 된다. (0) | 2016.02.01 |
◇ 일본(시모노세키)문학기행 (0) | 2016.01.18 |
◇ 제너레이터 같은 사람 (0) | 2015.12.21 |
◇ 배신背信 (0) | 2015.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