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인생
<절친의 쾌차를 기도하며>
“다 죽은 것 같이 보이던 나뭇가지에 생명이 움트는 저 기적 같은 순환에서 신비한 생명의 힘이 보이지 않는가! 친구야! 훌쩍 일어나라. 이제 예전같이 낚시터에 앉아 정담 나누며 밤을 지새우지는 못할 지라도 어서 일어나 우리 옛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나 실컷 할 정도라도 쾌차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16.03.20
참 요즘 ‘백세인생’이 라는 노래가 유행하는 것은 아마도 그 나이까지 살고파 하는 우리 인간들의 욕망이 상식을 넘는다고 주장하는 노랫말 같지만, 필자 생각도 지금 같이 100세 노인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로 보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해서 70세 나이 든 노인이 보기 드물다고 하였지만, 어디 요즘 현실은 그 나이의 동안童顔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보면 100세시대가 멀지 않은 것 같다.
필자도 그래봤자 얼마 남지 않은 행로지만, 여든 살을 목표로 했다가 구순까지 살겠다고 장담했더니 대부분 친구들이
“그래, 우리 그러자.”며 100세도 가능할 것 같다고 합창하듯 응수해 줬다.
우리 인간들에게 불로불사不老不死가 희망사항이라면,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영원히 늙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니 죽지 않는 사람도 역시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은 다 늙고 병들어도 나만은 그렇게 되지 않겠지 하는 착각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다가 어느 때 덜컥 득병하게 되는 날에는 현실에 실망하면서 한 편으로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어디 나는 병 안 들겠다고 마음먹은 대로 되랴? 그야말로 그냥 희망사항 일뿐이다.
젊었을 때 느끼는 죽음에 대한 사유思惟는 남의 일처럼 먼 곳에 있다고 치부하는 데,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그 죽음의 저승사자가 머리 꼭대기에 바짝 다가와 있음을 직시하게 될 때는 허무한 감정이 쌓인 채 은근히 겁도 난다. 왜냐하면 젊었을 때는 주로 나와 관계없이 나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게 되지만, 나이가 들만큼 차게 되면 곁에 친구나 동 시대의 사람들의 부고를 자주 듣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각 급 학교 동창회를 제외하고라도 한국항만협회, 해항회는 물론 건축사협회나 학회. 두 곳의 문학단체에서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경조사 등은 주로 스마트시대답게 폰 문자메시지로 전해 온다. 물론 회원이라 해서 다 알고 있는 지인은 아니지만 웬만한 사람들의 부고訃告나 병고病告의 소식들이 연초부터 문자메시지나 카톡 등 SNS를 통하여 날아들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편치 않는 기분이 들곤 한다.
특히 요즘처럼 환절기가 되면 노인들의 부음이 자주 들린다. 면역력이 약해져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 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평소 지병을 갖고 있어 신체의 기능이 원만하지 못하지 못해 갑자기 세상을 버리는 일이 생기기 쉽다.
‘안녕’이라고 아침 인사를 하는 것은 밤사이 건강에 이상 없이 잘 잤느냐는 뜻의 인사다. 그러니 오늘 이런 인사를 받거나 주는 사람이 있어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자체가 감사해야 할 일이다.
결국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게 될 때는 이미 세상을 버렸거나 병실에서 목숨을 예측할 수 없는 처지가 되면 누구 하나 찾아와 인사하는 사람 없으니 외롭기 그지없을 것이다. 문병을 하는 사람도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 지 그냥 안타까운 마음만 들 것이고, 병석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다시 못 볼 것 같은 마음에 가슴만 멍해질 것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중환자라면 어찌하던 자신의 생명 부지를 위해 사투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왔다가는 지 신경 쓸 기력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건강한 사람은 그걸 보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며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는 것이다. 세상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크게 잘못한 것도 없고 그저 내 인생 열심히 살아온 것 밖에 없는데,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시련을 겪게 하는가 하는 마음도 속상한 일이고 남보다 먼저 세상을 버려야 하는 일도 참 아쉬움이 큰 것이다.
얼마 전 40여 년을 우정 깊게 지내던 필자의 낚시친구 K가 입원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니 사실은 부산대학병원에 입원 중 운명했다는 카톡 부고를 먼저 받았었다. 필자는 늘 아침 하던 대로 아침인산 줄 알고 무심코 열어보다 뜻밖의 소식에 한동안 가슴이 쿵 내려앉아 폰을 내려놓고 하늘을 멍하니 처다 보고만 있었다. TV내용은 물론 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그냥 윙윙거리는 소리로만 들렸다.
그와는 그동안 3년이 넘는 날밤을 한 텐트 속에서 함께 잠자며 낚시를 즐겨온 아주 막역지우莫逆之友로 지내왔으며 특히 낚시에 관한 한 서로 배짱이 꼭 들어맞는 복심지우腹心之友이다. 순간 그와 지낸 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생생하게 머리를 스치며 곁에 앉아 낚실 하며 해맑은 웃음으로 농담 잘하던 그의 모습이 생생히 지나갔다. 내 곁에 바짝 붙어 애교를 떨던 은비 강아지도 이런 내 마음을 아는 듯 슬쩍 자리를 피하며 눈치를 봤다.
어찌 할 바를 몰라 넋을 놓고 있는 데, 전화벨이 울렸다.
낚시 3인방 중 한 친구 C였다. 같은 소식을 듣고 나한테 전화를 한 모양이라 황당히 말을 건네는데, “어이, K 그 친구 안 죽었단다. 한 고비를 넘기고 지금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하네. 황당하지?”
이 무슨 씨츄에이션인가?
그로부터 자초지종自初至終의 말을 듣고는 하여튼 안 죽었다고 하니 우선은 반가웠고, 먼저 하늘의 누구에게 감사의 주문을 했다.
그 후, 문병을 가볼 때마다 살려고 하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망가진 여러 군데의 병소가 호전되지 않고 있음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되었다. 이제 이 친구도 누구의 어떤 말도 잘 들리지 않을 뿐 자신만이 연명을 위한 사투를 하다 병마를 이기지 못하면 결국 그 다음 마지막 단계인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몸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나이만큼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 왔겠지만, 결국 병이 들면 자신의 몸을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너무 혹사시키지 않았겠나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겠지만, 이 친구도 생활 속 삶에서 과음하기 일쑤여서 함께 낚시 하는 중에도 좀 줄이기를 권유했지만 득병得病하기 전까지 계속된 섭생이 문제를 일으킨 이유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다.
의식은 돌아 왔지만, 심장 폐, 신장 등을 위한 의료장비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있는 모습에서 무슨 말로 위로를 해 줄 수 없다는 점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시 건강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지는 의문이지만 일어나 다시 예전을 추억하면서 낚시이야길 하면 그도 좋아할 것 같아 그의 쾌유를 바라는 멍한 가슴으로 돌아왔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대부분 악환이라는 것이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살아 온 결과대로 나타난다고 할 때 평소의 생활 습관이나 양질의 영양섭취, 꾸준한 운동 등 개인의 섭생에 따라 결과는 크게 차이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개인 각자마다 생활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을 다스린다면 몸은 거짓말하지 않고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로 건강을 지켜 주는 것이다.
무리를 하면 몸에 먼저 신호가 온다. 그럴 땐 가능한 범위 내에서 먼저 몸부터 돌보고 추스르려야 한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골라 선택해가며 자신의 몸부터 챙겨야 하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마음의 행복을 느끼면서 살다 최소한 평균나이 이상이 되는 그때까지 9988하게 잘 살아 온 것에 대해 감사해 하면서 살면 즐거운 인생 여행길이 될 것이다.
TV카피 중, ‘아프니까 노년이다.’라는 말은 공감하지만, 어르신들 보험 들라고 광고하는 팔순의 노 탤런트의 모습이 저승사자처럼 보인다.
필자도 악환을 앓고 나니 보험 하나 들고 싶어도 가입할 수 없는 처지라 그런지 주는 것 없이 밉게 보인다. 누구든 안 아프고 살기는 어렵지만, 100세까진 무리더라도 장수하신 노인들의 섭생으로부터 장수비결을 배워야 한다.
대부분 비결이라야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지금 사람이 옛 방식을 따라 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한 세상이 되어 그도 어렵고 귀찮은 일이 되었다. 근간 건강정보가 너무 많이 떠도는 것이 오히려 부담되긴 하지만, 아무리 해도 늙은 나이가 되면 병으로부터 그 굴레를 벗어나기는 참 힘든 일이라 느느니 약봉지만 는다.
잠자리 들기 전, 오후가 즐거우면 하루를 행복하게 보낸 것이고 노후를 건강히 잘 보내면 그 인생 행복한 것이다. 내 한 몸 병으로 누워 버리면 함께하는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는 일도 참 부담되는 일이다. 병석에 누워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고독한 병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물론 지켜보는 가족들도 안타깝다.누군들 아프기 원하는 사람이 있으랴마는 참 병이라는 것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치료야 의사가 하는 일이지만 그들도 한계가 있기 마련, 그냥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대책도 대안도 없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고 인간의 무력함이 들어나는 부분이다.
요즘 매일 카친으로 부터 보내오는 아침인사를 보면 대부분 즐겁고 활기차고 웃으면서 행복한 하루를 보내라는 멘트가 대부분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누가 나보고 그렇게 보내라면서 매일 축원을 해 주겠는가? 필자도 아침에 하는 일은 이들에게 ‘좋은 아침! 건강한 하루 되세요’로 댓글 달아 인사해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난 해 모진 추윌 이겨내고 여기 저기 봄의 기운을 얻은 봄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즈음에 세월이 가는지 어떤지조차 관심 없이 병고와 싸우고 있는 친구의 얼굴만 눈에 아른거리는 오후다. 다 죽은 것 같이 보이던 나뭇가지에 생명이 움트는 저 기적 같은 순환에서 신비한 생명의 힘이 보이지 않는가!
친구야! 훌쩍 일어나라.
이제 예전같이 낚시터에 앉아 정담 나누며 밤을 지새우지는 못할 지라도 어서 일어나 우리 옛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나 실컷 할 정도라도 쾌차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제 겨우 고희古稀니 ‘70세에 저 세상에서 널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그리고 ‘백세에 저 세상에서 우릴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함께 간다고 전해라.’ 가슴이 멍한 채 가사를 읊고 있으니 간절함이 절절해 온다.
하늘에 계신 신이시여!
제발 제 친구 좀 어떻게 해 주이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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