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수필,시

◇ 큰 지도자가 그립다.

이원아 2010. 12. 16. 14:36

 큰 지도자가 그립다.

  

 

 

                           정말 승두지리升斗之利할 것인가 대의직분大義職分에 충실할 것인가 하는 사리판단은 결과를 예견하는 원인제공자가 풀어야 할 것이며 빙공영사憑公營私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작금의 작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심기일전하여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2010.12.15 

 

                                                                      <소실 되기 전의 천왕문>

                                                                             <소실 된 후의 모습>

 

   수도승 두 사람이 불법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 어느 사막을 걷고 있었다.

▲ 15일 범어사 천왕문이 소실되기 전의 모습.

 

 

 

그런데 그 때는 오 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라서 모든 강물이 마르고 거기에 사는 식물들은 다 메말라 비틀어졌고, 모든 동물들이 물을 먹지 못해 탈수증세로 막 쓰러지며 죽어 가고 있는 극한상황極限狀況이었다.

  그랬으니 사람이야 별 수 있었겠나?

  정말 이제는 물을 먹지 않으면 곧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바로 눈앞에 아주 물이 조그만 남아 있는 작은 물웅덩이가 눈에 뜨였다.  이 두 사람은 이제 그 물만 마시면 살수 있겠구나하고 힘겹게 다가가 보니 그 곳엔 이미 물고기들이 꽉 들어차 숨 가쁘게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러자 당황했다.

  물을 마시고 내가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죽고 물고기가 먹게 놔두어 살게 할 것인가? 물을 마시면 그나마 연명延命하고 있는 물고기들은 다 죽게 될 것이니 두 사람은 물을 마시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한 사람은 “하여튼 물을 빨리 먹자.”고 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은 “아니네. 내가 물을 먹으면 살생을 하는 형국이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불법을 어기지 않는 참 도리인 것 같으니 자네라도 살아서 불법을 구해 오시게.”

  그래서 물을 마신 사람과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나눠지게 되었는데, 결국 마신 사람이나 마시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 얼마가지 못하고 갈증을 이기지 못해 사막에서 죽어 저승길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저승문턱에 들어서자 떡 버티고 서서 문을 지키고 있던 저승사자가 바로 웅덩이에서 죽어 가던 물고기가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저승사자가 누굴 들여보냈을까요?

  연생연멸緣生緣滅이라는 불교의 연기법緣起法을 가르치는 내용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낳고 죽는 것은 모두 그 어떤 연에 의한다는 말이고 연기라는 말은 인연생기因에 근원하여 줄여 쓰는 말이다. 물고기는 보시를 잘해 저승에 가니 사람의 사후를 관장하는 저승사자가 되어 물을 먹은 인간을 심판하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에서 보면 사후세계가 없다고도 말할 수 없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중생들이나 무신론자들에게는 눈으로 보이는 것에만 실체實體를 인정하기 때문에 현실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불교 교전敎典 어디에 있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중생인 나라도 내가 살아야 남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는 물을 마시는 일도 옳은 것 같고 마시지 않고 그냥 죽는 일도 의롭다는 생각인데 원인에 의해 결과가 나와 그런 마음이 생멸하는 것도 다 연생연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세來世를 믿지 않는 사람이니 물론 내가 그 지경에 처해 있었더라면 얼른 물부터 마시고 다음을 생각했을 것이다.

  원래근정遠來近井이라. 다음은 멀고 샘은 가까이 있으니 다가 올 미래나 물고기의 처지를 생각할 겨를 없이 목부터 추기고 보았을 것이 틀림없다. 연구를 안 해봐서 잘은 모르겠는데, 들은풍월로 창조론創造論에서는 태초엔 신이 있다고 하고 진화론進化論에서는 물질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부처는 둘 다를 부정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부처는 태어남은 그 이전에 무엇인가 있어야 태어남이지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남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태어남의 원인, 즉 인연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그 인연대로 태어나 살다가 멸한다는 것이 연생연멸의 연기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부처에 관한 법 한 구절도 잘 모르는 주제에 불법이 어떻고 연기법이 어떻고 할 오지랖이 좁음에도 오늘 연기법 운운하는 것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살이 모두가 그 어떤 원인에 의해 결과가 나타나는 이른바 인과응보因果應報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를 깨닫게 된다면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지금 내 사정이 왜 이렇게 된데 대한 해답이 있지 않나해서이다.

 

  요즈음 대한민국 대표적인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너무 세상일에 깊이 관여하여 물의를 빚고 있는 것 같아서 속이 부글거린다. 식자識者라면 아니 세상의 사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종교인은 그가 속하여 믿는 한 종교의 교리를 열심히 공부하여 일반 대중들에게 설교하고 전파하여 그 목적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걸핏하면 정치사회의 현안에 대해 왈가왈부曰可曰否하며 기본을 지키지 않는 모습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데 대해 동의할 것이다. 물론 그들도 사람들이니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의견을 남한테 피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집단의 의견도 아닌 걸 가지고 옳으니 그르니 해 가면서 집단 내에서도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키고 있으니 아무리 존경하고 싶은 종교 지도자라해도 등 돌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추기경樞機卿이라는 직함은 가톨릭계의 대부이다. 이른바 그 종단宗團의 최고 어른 격인데 자신들의 의견과 상충한다고 정의를 내세워 그를 사퇴하라고 들이대는 사제司祭들은 무엇을 믿는 사람들의 집단인가 묻고 싶다.

  사제가 되면 추기경에게 순명順命하겠다고 서약해 놓고 비판의 도를 넘어 주교에겐 사퇴하라하고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세계도 최고지위를 탐내려는 무리들이 있는 것일까? 사제집단이 추기경 자릴 내노라고 하면 그냥 내놓을 자린가? 속내를 잘 모르긴 해도 정의正義의 칼이라고 하는 도구로 선량한 신도들의 가슴에 들이대는 꼴이라 이해하기 곤란한 것이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지도 모르는 집단들이 국가정책에 맞서서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더니 급기야 사부師父의 자리도 내 놓으라고 하니 대중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아 판단이 안서니 내가 마치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생긴다.

 

  어제, 15일. 부산 금정산 기슭에 자리 잡은 천년사찰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선찰대본산 범어사梵魚寺의 천왕문이 방화 로 추정되는 화재로 어젯밤 완전히 불에 타 또 중요한 문화재하날 잃어버렸다. 오래된 목조건물인 사천왕문(전각)은 부처님과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守護神으로 특히 영남의 3대 사찰로 불리는 범어사에는 삼층석탑 등 많은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불을 질렀다 하니 부산사람인 나로서도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템플스테이Templestay 예산이 삭감된 시기에 맞춰 불이 나서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는데, 예산이 좀 줄었다고 청와대나 여당 등 관계 인사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말라고 한 것이나 불당佛堂이나 요사채에 그들의 발길까지 막으라는 원로 종정宗正 지도자의 행태는 또 무엇 하는 짓거리인가? 이 화재사건과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근 사찰에서 숙박을 하는 템플스테이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각 사찰마다 원칙 없이 불당보다 큰 규모의 요사채가 들어서고 있다는데, 템플은 없고 스테이만 있는 것 같아 고건축古建築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보더라도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신경 쓰는 것 같아 비난 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한다.

  그래봐야 언제일지 몰라도 그야말로 응보應報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게 부처의 가르침인 것을 왜 모르고 염불보다는 요사채에 더 신경 쓰며, 걸핏하면 현실참여로 물의를 일으키고도 부족해 돈 더 달라고 윽박지르며 추한 모습을 보이니 누가 그들을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로 믿고 따를 것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2011년도 국가예산 심의과정에서 삭감예산에 대해 불교계가 발끈하자 변명에 급급한 정치 지도자를 보면서 정치인들이 아무리 표로 먹고사는 직업이라 해도 비굴하게 구는 것 같아 모양새가 좋지 않게 보인다. 워낙 많은 수의 신자들이 종단에 속해 있으니 그들의 비위를 건들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차기 아님 차차기에 득표得票하려는데 불리하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말 못하고 그들의 요구에 끌려다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정치인이라면 처다 보기도 싫은데 정치가 종교에 끌려 다닌다는 듯한 모양새는 더욱 추해 보인다.

  국민들이 내는 세금들이 언제부터 종교단체까지 쓰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어느 종교든 간에 자기가 원해서 믿고 그 교리敎理를 실천하면 되는 일이지 국가 예산을 드려서까지 종교집단이 운영되는 것에 대해서는 불쾌감마저 드는 것이다.  그럴 예산이 있으면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혜택을 주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는데 도와주면 그들은 얼마나 국가가 고맙겠으며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의 기본이념과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일이니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세상을 살면서 고통과 모진 삶을 이겨내는 힘이 부족할 때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정신적인 지도자를 찾아 위안 받고 싶은 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종교가 존립하는 당위성인지도 모른다.

보통사람들은 삶에 지쳐 찌든 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좋아하는 종교를 갖고 믿는 성인들의 말씀 한 마디에 희망을 갖고 삶의 의욕을 추스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방향을 정하고 정신적인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일어탁수一魚濁水라. 몇 사람의 생각이 전체일 수도 없겠지만,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몇 사람들이 본연에서 벗어나 있다면 그의 행동여하에 따라 우물 안의 한 마리 미꾸라지처럼 영역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누가 그런 무리들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것이며 응어릴 풀어주는 나의 영적지도자로 따를 것인가?  지도자는 무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키를 쥐고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미칠 영향은 그가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에 따라 응보應報로 나타날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성역聖域이라 해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경우는 없다. 아니 성역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먼저 비난받는 일에서 멀리 있어야 한다. 제발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고 정의와 사랑을 염두에 둔 행동을 하려거든 어느 누구에게 편향된 생각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이야기해야 한다. 무리의 힘을 이용해 나의 이익을 취하지 말고 견리사의見利思義해야 성직자가 아닌가?

  얼마 전, 장경동(1954년생. 목사) 목회자牧會者는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부족하니 거기에 진실을 보태서 말하라.”고 TV에서 설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일부 사제집단이 성역聖域과 현역現域을 넘나들며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이익만을 위해 걸핏하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서슴치 않는다면 그것이 정의正義요 사랑이며 공정한 종교지도자들의 참 모습이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이 몰라서 일까?

여차하면 당동벌이黨同伐異하여 편 가르는데 앞장서는 무리들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정치인들이나 종교인들이 있다면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이익집단일 수밖에 없다.

  정말 승두지리升斗之利할 것인가 대의직분大義職分에 충실할 것인가 하는 사리판단은 결과를 예견하는 원인제공자가 풀어야 할 것이며 빙공영사憑公營私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작금의 작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심기일전하여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성직자聖職者들은 기본에 충실하여야만 존경받는 영적지도자로서 추앙받게 된다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각에 귀 기울여 처신해 주길 바라고, 성직자답게 말 한 마디라도 순화된 언어로 해야 하며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면서 자신부터 수신修身하고 수도修道하는 모습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는 바가 크다.

  세밑이 곧 다가오는데, 지난 달 23일, 북한의 무력침공으로 피해를 입은 연평도 주민들에게 하느님의 가호加護와 부처님의 자빌 내리시도록 기도해 주지는 못할망정 내 밥그릇만 우선 챙기려는 종교집단의 작태가 미워지니 오늘따라 이미 열반涅槃에 드신 성철 큰 스님과 선종善終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큰 그림자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