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수필,시

[스크랩] ◇ 잘 가라, 이 년年아!

이원아 2013. 12. 30. 16:36

◇ 잘 가라, 이 년年아!

 

 

                  “‘세월 앞에 이기는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다. 야속하게도 이 세월은 나이가 들수록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필자처럼 나이가 든 노인층이라면 그 속도는 가히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휙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2013.12.30

 

  <계사년 뱀띠해. 잘 가라 이년아! 

 

 

계사년 한 해도 저물어 간다. 무얼 하면서 한 해를 보냈는지도 생각이 나질 않는데, 낚시하느라 보낸 세월만 생각이 난다.이 맘 때가 되니 만나는 사람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로 인사를 건네 온다. 그 실은 세월은 빠르지도 늦지도 않고 변함없는데도 유독 인간들만 세월 탓을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나이의 속도로 세월을 까먹고 있으니 나이가 든 사람은 그 속도 면에서 빠르기를 실감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거자막추去者莫追요 래자물거來者勿拒라 했으니, 참 옛 선인先人들이 인생살이를 하면서 가고 오는 사람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은 그 깊이가 있어 우릴 감동케 한다.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거절하지 말라는 말인데, 사람은 그렇게 할 수는 있으나 세월은 그렇게 인력으로는 할 수 없다는데서 고민이 생긴다.

 

<세월아, 너도 가자.>

김형진

세월아 네월아! 너 혼자 가거라.

네 힘에 겨워 내 딸려 가는구나.

나만 홀로 두고 가면 서럽겠지만

함께 가면 벗이 되려니,

 

지나 온 정 그리워도 다시 못 올 청춘이라네.

세월아 네월아! 너 혼자 가거라.

너 이기는 장사 없어 내 혼자 늙어가니

세월, 너도 늙어 함께 가자꾸나.♤<2012>

 

  그런 의미에서 떠나보낸 사람에 대해서는 미련을 거두고 오는 사람에게 반겨하라는 이야길 지라도 한 세상을 함께 살다가 불시에 떠나간 가족이나 친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하여 누구를 막론하고 꼭 죽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만, 나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하나 둘 곁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확실히 슬픈 일이고 죽음을 다시 생각하는 때이기도 한 것이다.

이 해의 세모歲暮가 며칠 남지 않은 때 친인척 형님 두 분과 중학교 친구 하나가 유명을 달리 했다.

 

 휴대폰에서 이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지우다 보니 당장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한 생각이 들면서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모습들에 대하여 연민의 정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세모가 되니 더욱 마음이 쿨 해진다. 꼭 죽어야 한다는 절대절명絶對絶命의 명제 속에서 언제 어떻게 죽어야 한다는 문제는 남더라도 나이에 상관없이 한 세상 살다 뜬 구름처럼 사라지게 되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그래서 인생여부운人生如浮雲이라 하지 않던가?

 

  어떤 인연으로든 나와 직간접으로 만났거나 스쳐간 다른 사람들의 부음訃音을 들으면서 한 때나마 그들과 연했던 나 자신은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좋게 보아 주었던 나쁘게 보아 주었던 이승을 떠나간 사람은 말이 없으니 지레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지 않았어야 하는 사람과 죽음이 아까운 사람의 영면을 보면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이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때가 있다. 슬퍼해야 할 문상問喪자리에 가서도 내 인생 비추어보면서 한 가지 배우며 사는 것이 인생이고 또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글 속의 주인공이 되어 그 사람을 예로 들기도 한다.

 

  한 해가 잘 저물어 갔다는 것은 내 인생 잘 살아 왔다는 의미도 된다. 단순히 명을 이어왔다는 것을 차제하고라도 이 한 해를 다 보내지 못하고 먼저 유명을 달리한 사람에 비해 그렇다는 이야기다. 과거는 어떤 형태로든 내가 뒤돌아 볼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다. 이 한해가 다 갈 무렵 자신을 뒤 돌아 보라. 어떤 형태로 과거가 남아있는지를. 내가 생각하는 거년去年은 개인적으로는 큰 걱정 없이 지낸 한 해였지만 국가나 사회적으로는 다난多難의 해라고 말하고 싶다.

 

  오랜만에 미국에 이민 가 살고 있는 아들가족을 보기 위해 한 달여를 여행하면서 혈육지정血肉之情을 함께 나누고 돌아 왔던 일이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아 있어 뜻 깊었던 해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아직 1년도 다 안 되었는데, 당동벌이黨同伐異하려는 정치권의 대선불복에 대한 진흙탕 싸움, 전 대통령의 NLL공방과 대화록 실종, 철밥통을 지키려는 철도노조의 장기간 불법파업, 등 일 년 내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어 다가오는 새해가 암울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대라 하지만,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처럼 무책임하게 마구 지껄여 대는 인사들을 제발 새해에는 좀 어디다 몽땅 내다 버렸으면 하는 바람인데, 내 뜻대로 될는지 모르겠다.

 

  아직까지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부에 내 이름 석 자가 남아 있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선 영광이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여야 한다. 그러나 미래는 어떤가?  비관적인 말이긴 해도 삶과 죽음만을 생각한다면 미래는 죽음을 기다리는 세월일 뿐이다. 누굴 탓하거나 말할 것도 없이 세월은 흘러가고 오는 세월 어느 시점에 가서는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이 지구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고, 나이가 들수록 나와 인연의 끈이 매어져 있는 사람들과 자주 소통하면서 지내야 노후가 외롭지 않다.

 

  혹자는 저승을 평하길 “그곳이 너무 좋아서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지만, 그곳은 인간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말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 사파세계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전분세락轉糞世樂이라는 말과 같이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더 즐겁다는 말이 맞는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 희로애락이 있는 인간들의 삶 속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찾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 것이다.

 

  인생여곡선人生如曲線이라.

  인생사를 선으로 표시한다면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라 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마냥 평탄하게 사는 직선이 아니고, 갖은 굽이굽이를 돌아가면서 사는 곡선과 같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 듯한 수식修飾이 아닌가?

  돌아 볼 때는 뒤 돌아보고 곧장 갈 때는 바로 가고 하면서 인생의 쓴맛 단맛은 물론 산전수전 공중전을 치르며 구불구불 부단不斷히 사는 것이 인생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살이는 정답이 없는 것이다.

 

 ‘세월 앞에 이기는 장사 없다’라는 말도 있다. 야속하게도 이 세월은 나이가 들수록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필자처럼 나이가 든 노인층이라면 그 속도는 가히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휙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니 몸도 마음도 세월 앞에 모든 걸 빠르게 내 놓아야 한다. 세월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이제 별 수 없는 노인이구나!’하는 자격지심이 느껴진다.

 

  우선 얼굴부터 쭈글쭈글하다. 나이가 들면 사진 속의 내 얼굴은 더욱 늙어 보여 사진 찍기가 싫다. 체력도 모자란다. 운동은커녕 될 수 있으면 방안에서 뒹굴며 지내려 한다. 뜨끈한 아랫목을 더 좋아한다. 뭘 하고 푼 마음도 내키지 않는다. 누가 어딜 가자해도 선 듯 따라 나서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도 그저 그렇다. 좋은 걸 봐도 시큰둥 한다.

  개그프로를 보면서 다 웃는 데도 나는 웃을 기분이 안 생긴다. 별로 웃기지도 않는데 웃고 있다고 생각한다. 발가벗은 팔등신의 여체를 봐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여행을 가도 걷기 힘들어 항상 뒤처진다. 의욕을 상실한다. 앞에서 어른거리며 재롱떠는 어린 손자들만 귀여워한다...........,

  이 모두 다 세월이 이겨 나를 할퀴고 간 생채기들이다.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것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 세월 앞에 져야 한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안 했던가? 욕심을 버리는 일이 지는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말자. ‘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가 있나요?’하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하듯 묻기보다는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며 당당하게 내 나일 내세우며 사는 일이 훨씬 적극적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괄호 속에 무엇이던 하고 푼 말을 집어 놓고 내 나이가 어떠냐고 반문해 보라. 무슨 일이던 다 등식等式이 통하는 말이 될 것이다.

 

  나이에 정년은 없다. 무엇이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 내 역량에 맞게 실천한다면 그게 내 나이가 그걸 하기에 딱 좋은 나이가 되기 때문이다. 가는 년年은 그냥 내 버려두고 오는 년年 반기라 했으니 내 년엔 자신의 나이에 걸 맞는 무슨 짓이던 해보라. 계획 같은 건 필요 없다. 언제 계획을 수립하고 언제 어쩌고 할 시간이 없다.   내년에도 세월은 덧없이 흘러 갈 것인데 하고 푼 것이 있다면 당장 행동에 옮겨보라. 그러면 내 나이가 딱 그거, 거시기 하기 참 존 나이가 되는 것이다.

 

  멀리 가려면 누구와 함께 가란 말이 있다. 친구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존재다. 친구 간에 이것저것 너무 따지지 말고 살자. 따지는 사람처럼 맛없는 사람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친구가 멀어져 간다. 친구가 없으면 나만 외롭게 살게 된다. 여생餘生 같은 거 생각지도 말자. 닥치는 대로 마음 편히 살다 그냥 죽는 것이다.

 

  세월이 가니까 따라서 부모가 먼저 돌아가시고, 위로부터 형제자매가 세상을 버리고, 그 다음 친구가 하나 둘 곁에서 사라지는 걸 보면서 나도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내 주변에 맴도는 것이 느껴진다. 오는 년年은 내가 오라고 안 해도 가만히 있으면 오게 되어 있다.

  더구나 거년去年은 생각하지도 말자.  다 지나간 일이다. 내 삶 어떻게 살아 왔던 이 한 해는 지나갈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제 발로 오는 년 잘 맞아 내 인생의 배를 띄어 놓고 얼씨구나 좋구나 좋다고 노래하며 살자. 지난 계사년에 유명幽冥을 달리 하신 분들께 삼가 명복을 빕니다.

  가는 년 잡지 말고 오는 년 반겨 맞자!

  아듀! 계사년. 환영, 갑오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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